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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100일 만에 감자는 얼치기 농부 내외에게 왔다.
 꼭 100일 만에 감자는 얼치기 농부 내외에게 왔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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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감자를 심었다. 빈 고향 집 손바닥만 한 텃밭에 소꿉장난처럼 지어내니 굳이 '농사'라 하기가 민망한 이 '텃밭 농사'도 햇수로 10년이 훨씬 넘었다. 늘 남의 밭 한 귀퉁이를 빌려서 봄여름 두 계절을 가로지르는 이 농사로 얼치기 농부는 얻은 게 적지 않다. 

우리 내외의 첫 감자 농사

그게 고추나 호박, 가지 따위의 수확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아실 거다. 오가는 길이 한 시간 남짓이어서 아내는 늘 '기름값도 안 나오는 농사'라고 타박을 해대고, 내가 그게 기름값으로 환산할 일이냐고 퉁 주듯 위로하는 일도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감자를 심자는 제안은 아내가 했다. 연작이 해롭다며 지난해 고추를 심지 않은 밭에 무얼 심을까 고민하던 아내는 유튜브를 들락거리더니 거기 심은 작물로 감자를 정한 모양이었다. 좋지! 감자로 만든 반찬은 무엇이든 잘 먹는 나는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감자채볶음은 내 중고교 시절 누나들이 자주 싸 주었던 도시락 반찬이었다. 아내는 수확 다음날 이 감자채볶음을 식탁에 올렸다.
 감자채볶음은 내 중고교 시절 누나들이 자주 싸 주었던 도시락 반찬이었다. 아내는 수확 다음날 이 감자채볶음을 식탁에 올렸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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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에 큰누나와 작은누나 사이를 오가며 기숙할 때, 감자를 채로 썰고 양파와 같이 볶은 반찬이 내 도시락의 단골 반찬이었다. 거기다 풋고추 채까지 곁들이면 그건 시골뜨기에겐 최고의 요리였다. 나는 당원이나 소금을 넣어 찐 감자도 즐겨 먹었다. 그런데 그 감자 농사를 짓자는 거 아닌가!

1960년대의 보릿고개를 넘으며 자랐던 내 동무들에게 감자는 친숙한 먹을거리였다. 그러나 배곯을 일이 없는 '방앗간 집 애'였던 나는 밥 대신 동무들의 도시락에 든 찐 감자를 부러워하며 자랐을 뿐이었다. 감자는 그 시절 대표적인 구황(救荒)작물이었다. 

감자를 심자고 해놓고 아내는 부지런히 인터넷을 검색하여 '감자 농사' 공부를 했던 모양이었다. 우리 내외가 인근 선산 장에서 씨감자를 산 것은 3월 12일이었다. 시장 들머리에 좌판을 벌여놓은 할머니한테서 우리는 씨감자를 샀다. 
 
 선산장에서 산 씨감자를 3월 13일에 밭에 심었다. 재에 묻어 놓아  생기를 잃고 곯은 것처럼 보이는 씨감자가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우리는 궁금했다.
 선산장에서 산 씨감자를 3월 13일에 밭에 심었다. 재에 묻어 놓아 생기를 잃고 곯은 것처럼 보이는 씨감자가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우리는 궁금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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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씨감자는 싹이 날 눈이 붙은 감자를 잘라서 재에 버무려 놓은 것이었다. 언제 마련한 것인지 씨감자는 생기를 잃고 조금 곯아 있는 듯했다. 재가 병충해를 막는 효과가 있다고 들었지만, 시들어 생기를 잃은 씨감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자, 심은 지 33일 만에 싹을 틔우다

다음 날, 우리는 서둘러 한 달쯤 전에 거름을 해 둔 텃밭에다 예전처럼 검정 비닐로 멀칭 작업부터 했다. 그다음, 할머니의 조언대로 씨가 난 면을 위로 가게, 좀 넉넉한 간격으로 씨감자를 심었다. 3m 남짓한 이랑 셋이 고작이니 씨감자가 많이 남아비닐을 덮지 않은 데다 서너 군데 더 심었다.

고추나 가지처럼 일정하게 키운 모종을 심은 게 아니다. 검은 비닐 안에 시든 감자 조각을 심어놓고 우리는 좀 허무했다. 무엇보다도 과연 심어놓은 데서 싹이 제대로 날지 어떨지 의심스러웠다. 감자의 싹이 나는 것은 한 달을 족히 기다려야 한다. 

느긋하게 기다리지를 못하고 나는 한 보름쯤 지나 밭에 들렀다가 싹이 텄다고 흥분해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가 지청구를 들었다. 아이고, 여보. 그건 풀이우, 풀. 풀하고 싹도 구분이 안 되우?

한 달쯤 뒤에 싹이 올라온다고 하더니 정확히 33일 만에 우리 밭 감자는 싹을 내밀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서둘러 밭으로 시선을 돌렸고, 거기서 검은 비닐 위로 나란히 싹을 내민 3열 종대 감자 포기를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우리 감자는 나날이 푸르러지고 무성해졌다. 싹이 올라와 잎이 벌어지면 두세 줄기만 남기고 솎아주어야 하는데 엽렵한 아내도 이걸 놓쳤다. 그게 뭐라고, 우리는 흙 속에서 여물어가고 있는 덩이줄기를 상상하며 조바심을 냈다. 

조바심의 기다림, 감자는 백일 만에 우리에게로 왔다

그러나 두어 차례 물을 주고 고랑에 한 번 비료를 주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없었다. 우리는 무성해지는 잎과 줄기만큼 땅속에 묻힌 덩이줄기가 쑥쑥 자라주기를 빌고 또 빌었다. 글쎄, 그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구마 농사도 지었지만, 그 수확을 가늠해 보며 가슴을 두근거리기는 또 처음이었다.

6월에 들면서부터 아내는 감자 캘 날을 받느라 노심초사했다. 하지 전후에서 '전'을 선택하기는 쉬웠지만, 며칠 전쯤에 수확하는 게 좋은지를 두고 찧고 까불어댔다. 정작 나는 심드렁하게 초를 쳤다. 마지막 일주일은 감자가 씨알이 굵어지는 시간이래, 뭘 그래. 하짓날 캐면 되겠구먼.

아내는 마침내 이틀 전인 20일로 날을 받았다. 큰 비닐봉지 몇 개를 준비해서 텃밭을 찾은 것은 오후 4시가 넘어서였다. 그날따라 기온이 30도를 넘어서 모자를 썼는데도 햇볕이 따가워서 우린 땀깨나 흘려야 했다. 3m가 채 안 되는 이랑 셋, 캐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호미 날을 조심스럽게 박아 뒤적이니 이내 허연 몸빛의, 크고 작은 감자가 그 모습을 수줍게 드러냈다. 지난 석 달 동안 우리 감자는 무럭무럭 자랐고, 마침내 햇빛을 본 것이었다. 씨감자를 심은 3월 13일부터 꼭 100일째였다. 

새알만 한, 잔 씨알이 쏟아지지 않기를 바랐는데, 씨알은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게 실했다. 감자는 이게 싹이 트기나 할까, 하고 감자를 못 미더워한 얼치기 농군 내외에게 크고 작은 종이상자 하나씩을 가득 채운 수확을 안겨주었다. 미안하다, 감자야!
 
 3m가 채 안 되는 이랑 셋, 캐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감자는 우리 앞에 온몸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씨알도 작지 않았다.
 3m가 채 안 되는 이랑 셋, 캐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감자는 우리 앞에 온몸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씨알도 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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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한 감자는 크고 작은 종이상자 하나씩과 씨알 작은 놈 한 바가지였다.
 수확한 감자는 크고 작은 종이상자 하나씩과 씨알 작은 놈 한 바가지였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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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매의 눈으로 감자를 살피더니, 수확이 늦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주일 전에 캐는 게 딱이었는데……. 아내는 마치 전문가처럼 감자의 겉이 튼 것처럼 보이는 것은 수확 시기를 놓쳐서라고 했고, 몇몇 썩은 감자가 나온 것은 미련하게 감자 포기에다 바로 물을 준 탓이라면서 자책했다. 

비닐봉지에 담으니 무게 때문에 봉지가 늘어나며 찢어져 우리는 조심스레 감자 자루를 다루어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펼쳐놓으니, 마치 우리가 부자가 된 듯했다. 아내는 흙을 닦으며 크기대로 두 개의 종이상자에 나눠 담고, 씨알 잔 놈들은 쪄 먹는다며 플라스틱 그릇에 담았다. 

밤에 아내는 흠이 있어 칼로 다듬은 감자 몇 개를 쪄서 내놓았다. 나는 조금은 아린 맛이 남은 감자를 입에 넣고 씹으며 반세기 전 유년 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렸다. 다음 날 아침 밥상에는 푸짐하게 감자채볶음이 올라왔다. 

'소비'이기도 한 노동, 흙 앞에선 겸허해져야

이상이 우리 내외의 텃밭 감자 농사의 전말(顚末)이다. 누구나 하는 텃밭 농사를 지어 놓고 웬 설레발이냐고 나무라면 할 말이 없다. 고작 감자 몇 이랑 거두고 행복해하기는 내 마음이되, 그걸 자랑삼을 일은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마치 어른의 소꿉장난 같은 내 텃밭 농사는 가장 작은 단위의 '생산'이면서 그 절반은 '소비'다. 생업으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일상의 여유, 그 유한(有閑)을 즐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텃밭을 일구면서 '시간'을 소비하고 '노동'을 소비한다. 그리고 단기 노동으로 얻어지는 산출물을 '건강'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다.  

손바닥만 한 텃밭은, 더러 내가 그 산출과 풍흉까지도 능히 지배·통제할 수 있겠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땅도, 노동도, 농사도 그리 간단치 않다. 텃밭 농사꾼이 농민들의 고단한 삶과 노동 앞에서, 요컨대 흙 앞에서 호미를 들면 모름지기 겸허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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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