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드라마계의 전설이 된 <응답하라> 시리즈 신드롬의 시작은 <응답하라 1997>이었다. 1970년대에 태어나 첫 수능(1975년생, 94학번)을 치르며 '교육 과도기'에서 괴로움을 감내해야 했던 세대, 군대 가기 전엔 분명 카세트 테이프로 노래를 들었건만, 제대 하니 MP3 플레이어로 노래 듣는 세상을 만난 세대, 그들은 바로 'X세대'다.
 
과거 그들은 도무지 어디로 튈지 몰라서 정의내릴 수 없다는 이유로 'X세대'로 불린 당돌한 '아이들'이었다. 1987년 6월 항쟁과 88 서울올림픽을 지나며 한층 자유롭고 풍요로워진 한국 사회에서 스타를 향한 팬덤 문화와 소비 열풍에 앞장 서고 '문화 자본주의'를 만끽했던 그들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제 40대가 되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X세대의 처지가 몹시 난처하다. 한때 당돌한 세대였던 이들은 '윗분'들이라는 보수적 세대와 자신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내세우는 '아랫것들'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은 어느덧 사회의 '허리'가 되어버린 X세대의 고충을 다뤘다. 

임원에 혼나고, 사원들 설득하려 애쓰고... '낀 세대' 40대 팀장의 고뇌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 SBS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 SBS

 
아침부터 전무님의 호출로 하루를 시작하는 44살 이현승씨는 가구 회사의 디자인 팀장이다. 백화점 매장 중심으로 상품을 판매하던 그의 직장은 최근 2030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신규 브랜드를 런칭했다. 이제 런칭한 지 두 달 정도 지났는데, 매출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아 윗선의 불만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 팀장은 그 이후부터 더 큰 산을 마주하며 고뇌한다. 팀원들에게 '매출이 곧 회사의 인격'이라는 기성세대 관점의 임원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업무 방향을 세워야 하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매출을 위한 업무방향을 놓고 세대간 다른 의견이 오가고, 이 팀장은 그 사이에 끼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팀장은 아랫 세대의 주장 또한 완곡하게 임원에게 전달해야 하는 '동시 통역'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피하지 못하면 즐겨라'라는 말이 이 팀장까지의 세대가 일을 대하는 시각이었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피하지 못할 일이 오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세대간 달라진 입장 사이에서 '낀 세대' 팀장은 이쪽 설득하랴, 저쪽 의견 전달하랴 고충이 많다. 그러다 퇴근하고 돌아가면 '나는 누가 위로해 주지' 하며 외로움을 느낀다.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 SBS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 SBS

 
또 다른 40대, 온라인 영업 팀장인 이규훈씨는 아침 일찍 출근하여 하루의 업무를 시작한다. 팀원은 팀장인 그보다 늦게 출근했다. 팀장은 '팀원도 회사에 일찍 오고 싶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팀원의 의견은 다르다. 팀원은 출근 시간도 되기 전에 일찍 사무실에 나와 업무를 시작하는 팀장님이 멋지고 존경스럽지만,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한 회사에 근무하지만 말 그대로 '동상이몽'인 상황이다. 

IT분야 회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수평 문화를 내세우는 다큐 속 어느 배달앱 회사는 직제를 없애고 모두 '~님'으로 호칭을 통일했다. 40대 팀장급의 김성회씨도 '김성회님'으로 불리고, 부사장인 박기웅씨도 사무실에서는 '박기웅님'이다. 하지만 수평적 호칭을 도입하며 사내 문화도 수평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회사 한쪽에 나란히 앉은 김성회님과 박기웅님, 두 사람 사이에 비어있는 한 자리처럼 두 사람 사이의 '여백'보다 더 큰 '여백'이 젊은 사원들과의 사이에 놓여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버거운 X세대 

19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의 자유분방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른바 X세대들이 어느덧 한국 사회의 중견 세대가 되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그들은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하며 '나중에 저 선배처럼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꼰대 상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강하고, 후배 직원들의 눈치도 많이 본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는 일이 쉽지 않다. '꼰대'와 '선배' 사이를 오가는 이들의 고뇌가 오늘도 그들의 주름을 더한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X세대 팀장님들을 좌절시키는 이들은 이른바 밀레니엄 세대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나 자라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은 세대. 이들은 조직에 헌신하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야근이 곧 애사심의 표현'이라는 발상 또한 이해하지 못한다.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 SBS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 SBS

 
물론 젊은 사원들도 필요에 따라 야근을 한다.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남았다면 일터에서 조금 더 하고 퇴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윗선의 지시 때문에 억지로 하는 야근은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일 뿐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밀레니얼 세대의 태도를 보면서 40대 팀장님들은 '왜 저 정도도 안 할까' 싶은 생각에 속이 탄다. 

다큐는 두 세대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간극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라고 말한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시대를 맞이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몸 바쳐 직장에 헌신하는 선배 직장인들의 자세가 고스란히 받아들여질 리 없다. 밀레니얼 세대로서는 오히려 나만의 경계를, 나만의 시간을 회사가 침범하는 게 달갑지 않다. 일과 삶의 균형을 조율하며 살아가고 싶은 이들의 취향을 존중해주길 바라기도 한다. 

소속감과 함께 달라진 문화의 차이도 크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 잘 하는 사람'이라는 윗 세대의 사고방식은 젊은 세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다. 점심 시간에 팀장과 같이 식사하는 것도 젊은 팀원들은 부담스럽다. 화합을 위해 시작된 식사자리가 대부분은 결국 '근황 토크'의 딱딱한 분위기로 변모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내세운 대화가 결국은 선배의 '나 때는 이러지 않았다' 혹은 '나는 이렇게 했다'는 식의 훈계조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후배는 듣고만 있게 된다.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 SBS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 SBS

 
직장 내 세대 차이, 그저 나이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었다

다큐에선 프랜차이즈 식당업체의 새로운 메뉴 개발을 두고 세대간 간극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신제품 아이디어를 두고 '막걸리 위에 생크림이 웬말이냐'는 기성 세대 팀장의 반응과 달리, 비주얼을 중시하며 SNS 인증샷을 겨냥한 제품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대박 아이템'이 되었다. '맛을 파는 게 아니라 유행을 파는 것'이라는 사원의 말처럼, 젊은 세대의 달라진 입맛 나아가 가치관이 판매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결국 한때 X세대였던 40대 중견 간부들은 이와 같은 변화 속도를 따라가는 걸 버거워한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세상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낀 세대'들은 고군분투한다.

40대 팀장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간의 전쟁과도 같은 조직 갈등을 야심차게 다룬 < SBS스페셜 >은 '초밀착 리얼 오피스 스토리'를 콘셉트로 내세운 만큼 생생한 조직 내의 목소리들을 담아 전했다. 방송 내용을 종합하면,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한 회사에 몸 담은 이들 간의 세대 차이는 그저 나이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었다. 서로 다른 사회적 성장 배경과 다른 경제적 환경을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대해 다큐는 생생한 사례를 바탕으로 그려냈다.

무엇보다 < SBS스페셜 >은 이제 기성 세대가 되어가는 586 세대와, 기성 세대와는 다른 사회·경제적 환경으로 인해 한층 개인주의화되고 보수적 시각을 가진 젊은 세대의 전선을 잘 담아냈다. 여기에 더해, 그 사이에 끼인 '한때 X세대였던' 40대 중견 세대를 부각시키고자 한 점은 충분히 신선한 시도로 보인다.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3일 방송된 < SBS스페셜 > 오피스 다큐멘터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편 중 한 장면 ⓒ SB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SBS스페셜 기성세대 세대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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