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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똑'

몇 년간 연락이 없던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열정과 냉정, 두 가지 마음이 회오리를 친다. 오래간만에 뜬 그녀의 이름에 반가움과 함께, 또 그건가 싶은 싸함.

오랜만에 연락이 올 때는 딱 2가지 경우이다. "갑자기 생각나서 연락했어." 아니면 "나 결혼해." 100%다. 연륜의 힘인지, 경험의 무서움인지. 이제는 깨똑에 이름이 뜨는 순간의 분위기만으로도 무슨 연유의 연락인지 촉이 오는 경지에 이르렀다.

축의금을 보내고도 연락이 끊겨 받지 못할 돈만 모아도 해외여행 몇 번 갈 정도다. 이쯤되니 결혼식 참석 '가'와 '부'를 한 방에 판가름하는 냉정함을 장착했다고 자부하는 나임에도 이번엔 좀 달랐다.

결혼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자 사이트라도 있는지, 결혼식에 초대할 때면 누구나 사용한다는 그 멘트, "선배한테는 꼭 연락하고 싶었어요"라는 아주 뻔한 문자에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녀는 전의 전 회사, 그러니까 지금 다니는 회사의 '전'하고도, '한 번 더 전'에 다니던,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한,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였다. 함께했던 시간은 고작 2년 남짓이었지만 힘든 시간을 같이 견뎌낸 전우애인지, 내가 유독 마음이 주던 후배여서인지, 살다가 문득문득 생각이 나던 후배였다. 잘 지내려나, 행복하려나.

그런 그녀에게 무려 8년 만에 결혼한다는 연락이 온 거다. 8년의 공백과 한 통의 문자. 반가움과 황당함 어딘가에서 마음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축하해주고는 싶은데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니 십중팔구는 결혼식 끝나면 어차피 연락 안 할 사이라며 결혼식에 가는 건커녕 축의금도 보낼 필요 없단다. 자기 일도 아닌데 자기가 결혼 연락을 받은 양 대신 화를 내어주는 친구를 보자니 "맞아 그럴 거야"라는 수긍의 마음이 커지다가도, "그래도 얘는 다를 거야"라는 마음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5만 원. 축의금으로 보내게 될 내 금쪽같은 돈. 큰돈은 아니지만 작은 돈도 결코 아닌 피땀눈물 흘려가며 번 나의 돈. 보내야하나, 말아야하나. 내 인생에 결혼이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 이 시점에 내가 축의금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치면.... 산수에 빵점인 내가 얼핏 계산해도 100% 밑지는 장사다. 에잇, 보내지 말까?

그러다 퍼뜩 옛 생각이 떠올랐다. 회사를 떠나던 마지막 날 지금껏 고마웠다며 그녀가 건네줬던 작은 거울지갑, 어느 추운 날 선배 몸 녹이라며 타주던 따뜻한 커피 한 잔, 정신없이 바쁠 때 일 하나 던져주면 군말 없이 척척 해내며 생글거리던 그 얼굴. 아, 그래서 정신없이 살다가도 문득 생각나고 궁금했구나.

우리 인연은 회사를 나오던 그 순간 끊어졌는지 몰라도, 내 마음 어딘가에 그녀의 자국이 계속 남아있었나 보다. 나와 그녀가 함께 만든 자국도, 결국은 내 인생에 흔적으로 남는다. 얼굴의 흉터도 평소에는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띄는 날이 있는 것처럼,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었지만 나조차도 눈치 채지 못했던 그녀의 자국이 깨똑과 함께 선명해졌다. 나보고 알아채라는 듯이.

결국, 나의 소중한 5만 원은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축의금으로 보내졌다. 나를 대신 화를 내주던 그 친구의 말처럼 '5만 원짜리 헛짓거리'를 한 것일지,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와의 인연이 다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물론 축의금 고맙다는 문자 이후로 아직 연락은 없지만. 음.

그렇지만 다시 연락이 없다고 해도 괜찮을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나도, 그녀도 아직 어리던 8년 전,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추억의 보상쯤으로 생각하면 별로 마음이 쓰라릴 거 같지 않다.

축의금 안 보내고 5만 원어치 고기 사먹었음 어쩐지 더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은 아이러니. 내 돈 쓰고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하니 희한하다. 축의금은 그녀의 결혼 생활에 수저든, 샴푸든, 전구든 필요한 무언가가 되어 있겠지. 작더라도 그녀가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가 되었길 바래본다.

"행복하게 살아, 결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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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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