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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처럼 여성들에게도 참정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올랭프 드 구주(1748년~1793년)'. 그녀가 살았던 시대 유럽은 무지에 대항하는 거대한 문화운동이 일어난 계몽주의 시대였다. 산업혁명 시대이기도 했다. 

당시 루소 등과 같은 여러 사상가 혹은 지식인들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성들은 이 평등한 권리에서 제외했다. 여성은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남성의 부속물 정도로 생각하고, 그에 맞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올랭프 드 구주가 그에 반하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고, 국가는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올랭프 드 구주의 죽음 이후 프랑스 여성들의 권리는 더욱 현격하게 떨어진다. 황제 나폴레옹이 '여성과, 여성의 몸은 남자의 소유다. 여자의 보호자는 연령 상관없이 남자'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한 여성의 권리 한계를 <나폴레옹 법전>에 아예 명시, 공식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로 여성들은 남자의 허락 없이는 이동도 할 수 없게 된다. 일을 하려고 해도 남자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다. 설령 일을 해도 임금은 보호자 혹은 소유주인 남자에게 지급됐다. 간통했을 경우 여자만 감옥에 3년, 그 상대자인 남자는 가벼운 벌금만 내게 했다. 그것도 '내연녀를 집안에 끌어 들여 음란한 짓을 하다가 들켜 신고 당했을 때'로 한정해. 

심지어 당시 보편적인 연락수단이었던 편지까지 남자가 먼저 읽은 후에야 받을 수 있게 되는 등 여성들의 권리는 더욱 추락하고 만다. 훨씬 더한 악습과 억압에 묶인 것이다. 그런데 이는 프랑스 여성들만의 사정이었을까.

이런 현실에 저항, 끊임없이 투쟁했던 여성들 덕분에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 여성들은 참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아직도 여성 참정권이 없는 나라들도 있지만 말이다.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책표지.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책표지.
ⓒ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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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자신이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낙태는 왜 죄가 됐을까? ▲'마녀사냥'은 왜 생겨났으며 어떻게 변질되었을까? ▲선사시대, 여성은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남성들은 자신의 무엇을 지키려 여성을 억압했을까? ▲그동안 여성들은 무엇과 싸워왔고, 무엇을 쟁취했을까?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한빛비즈 펴냄)는 성차별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어느 시대 어떤 유형의 성차별이 있었는가. 그와 같은 성차별에 당시 여성들은 어떻게 저항했는가? 등을 다룬다. 

책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30만년 지속되어 온 불합리하며 어이없는 성차별 역사를 18장으로 구분해 들려준다. 그중 인상 깊게 읽은 것은 세계 곳곳의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기까지의 투쟁을 다룬 18세기: 계몽주의 시대(8장), 서프러제트: 20세기 영국 여성들의 참정권을 위한 투쟁(11장), 미국 흑인 여성들의 삶(15장)이다.

여성의 목소리를 그나마 표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여성의 참정권에 대해 정리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참고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가장 먼저 준 나라는 뉴질랜드로 1893년. 그 뒤를 이어 미국은 1920년에, 영국은 1928년에, 올랭프 드 구주의 프랑스는 1946년에야 주어졌다. 그리고 스위스는 1971년에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헌법에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며 성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고 명시하는 것으로 남성과 대등한 권리를 인정했다. 이후 1958년 1월 25일에 '민의원 의원선거법'과 '참의원 의원선거법'을 공포, 여성에게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는(프랑스의) 출산장려정책을 펼쳤다. '낙태=범죄'를 바탕으로 하고서였다. 50만~ 100만 명의 여성들이 뜨개질바늘, 핀, 장식용 깃털 등이 사용되는 불법낙태수술을 받았다. 일부 여성들은 수술대에서 감염과 과다출혈로 숨지기도 했다. 매년 약 1만 명이 낙태 중 사망했다. 

1971년 4월 5일, 낙태 합법화와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343인 선언문>을 발표됐다. (중략)시몬 베유 장관은 공중 보건법으로서 낙태 합법화 법안을 제출, 투표 결과 284:189표로 낙태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채택되었다. 오늘날 프랑스의 낙태 비용은 국가가 전액 지원한다. - 123~126쪽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화라는 것. 그것도 보고 있는 동안 기분이 좋아지는 독특하고 귀여운 그림의 만화라는 것이다.  

사실 책의 주제인 성차별은 어떤 이유로든 유쾌하거나 가볍지 못한 그런 심각한 주제다. 성차별의 역사는 즉, 여성들의 억울하고 참혹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전히 진행 중인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게다가 첫 인류시대 성차별부터 현재의 상황까지를 다룬다. 결코 편안하지 못한 참 많은 이야기들을 한권으로 들려주는 것이다. 그러니 자칫 딱딱하거나 무거운 내용이 될 수 있다.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본문 일부.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본문 일부.
ⓒ 출판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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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야기들은 쉽게 와 닿고 인상 깊게 기억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화로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표현들과 그림으로 쓰고 있어서 내용이 깊진 않다. 그런데 성차별에 대해 이처럼 폭넓고 쉽게, 그리고 명확하게 알려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던가? 개인적으로 성차별 관련 가장 많은 이야기들을 쉽게 만난 책이다.

본문에 앞서 끼워 넣은 '여성 역사 연대표'도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여성 역사를 연대표에 추가해서 더욱 유용하게 와 닿는다. 너무나 적은 분량이라 아쉽긴 하지만.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솔르다드 브라비, 도로테 베르네르 (지은이), 맹슬기 (옮긴이), 한빛비즈(2019)


태그:#성차별, #만화로 보는성차별의 역사, #여성 참정권, #서프러제트,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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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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