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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파행

19일로서 국회 파행 50일째, 본회의가 열린 지 76일째가 되었다. 여전히 국회는 열리지 않고 있으며, 추경안을 비롯해 많은 법들이 쌓여만 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와 관련하여 국회 복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나 시점을 포함해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다.

일부 언론들은 이 전대미문의 상황에 대해서 여야 정치권 모두 문제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이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조장하는 비겁한 양비론일 뿐이다. 나머지 여야 4당이 모여 임시국회를 소집한 데에서 알 수 있듯 누가 뭐래도 이번 국회 공전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유한국당에게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예전 MB나 박근혜 정권 때 야당이 이런 식으로 국회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언론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아마도 그들은 야당이 민생을 팽개치고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며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추경 관련 참고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추경 관련 참고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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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국회 파행과 관련하여 나름의 이유를 대고 있다. 지난 4월 있었던 선거법과 관련한 패스트트랙 폐기를 등원의 조건으로 내걸었으며, 그와 함께 최근에는 경제청문회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자신들도 하루빨리 국회로 들어가고 싶지만 여당이 명분을 주지 않는다며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자유한국당의 조건들이 하나같이 정부여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여야 4당이 모두 합의한 선거법은 작년 말부터 시작해서 함께 논의를 할 수 있었음에도 자유한국당이 입장을 번복하고 참여하지 않아 생긴 문제다. 또 경제위기와 관련해서도 현재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혀 달라진다. 

과연 자유한국당은 진짜로 정부여당이 패스트트랙을 폐기할 수 있고, 그들이 요구하면 경제청문회가 쉽게 열릴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물론 아닐 것이다. 그들도 정부여당이 자신들의 조건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지지자들의 시선과 기존 입장 때문에 쉽게 등원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대놓고 당 지도부를 비판하면서 등원을 주장했던 장제원 의원은 바로 그와 같은 당내 분위기를 보여준다.

말로는 끝없이 협상을 이야기하지만 협상의 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자유한국당. 마침 이와 관련하여 자유한국당에게 추천할 책 한 권이 있으니 바로 <대통령의 협상>이다.

원칙 중심의 협상
 
<대통령의 협상>, 위즈덤하우스
 <대통령의 협상>, 위즈덤하우스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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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당시 홍보수석비서관이었던 조기숙 교수가 쓴 <대통령의 협상>은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특히 두 대통령의 협상 방법에 주목한다. 그것이 그가 전공했던 로저 피셔의 원칙 중심 협상 이론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원칙 중심의 협상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협상하면 최대한 많은 양보를 얻어냈는지, 상대방의 마지노선을 깨뜨렸는지, 마지막 한 푼까지 가져왔는지, 자신만큼 상대방도 불만족하게 만들었는지, 강등을 피했는지, 무엇이든 결과를 얻었는지 등등을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 자체와 상대방에 대한 태도라는 것이다.
 
피셔는 협상의 상대는 동반자이지 반드시 내가 이겨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협상의 당사자 모두가 이익을 얻는 상호 윈윈을 목표로 하라고 강조한다. – 41p

협상의 목표는 협상의 3요소(목표, 전략, 전술) 중 가장 중요하다. 협상이 샛길로 빠질 때마다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로 되돌아오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목표 달성의 길이 꼭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상대와 협력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가 나의 목표 달성을 도와줄 파트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 97p
 
저자는 이 원칙을 가장 잘 지킨 인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는다. 사람들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적 삶을 기억하며 그가 야당을 투쟁의 대상으로 봤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착각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참여정부 말기 대연정 제시에서 알 수 있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야당을 협상의 상대로 바라봤으며, 선거구제 타협 등을 통해서 세상을 조금씩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자유한국당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은 현 정부가 실패해야만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것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지만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어쨌든 현 정부는 국민의 50% 이상이 지지하는 정권인 만큼, 현 정부의 실패가 그들에 대한 지지로 100%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입장이 아닌 이익을 중심으로 한 협상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8일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회동을 하고 있다.
▲ 악수하는 이인영-나경원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8일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회동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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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자는 협상에 있어서 꼭 지켜야 할 네 가지 원칙을 제기한다. 사람과 문제의 분리, 협상 목적으로서 이익의 강조, 상호이익이 되는 옵션의 개발, 최선의 대안을 통한 협상력 제고다. 이중 가장 눈여겨 볼 만한 것은 협상의 목적이 되는 이익으로서 저자는 왜 우리 사회에서 협상이 어려운지 지적한다.
 
서로의 입장을 정해 놓고 차이를 좁혀가는 것을 '입장 중심의 협상'이라 칭한다. 그에 대비되는 것이 '이익 중심의 협상'이다. 이는 근거와 기준에 기초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뤄지는 협상을 말한다. – 54p

흑백논리가 우세한 사회에서는 서로 타협하는 게 이익이 되는데도 이익을 위해 입장을 바꾸는 것이 변절이나 배신으로 비치고 불명예로 인식된다. – 190p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진영논리가 매우 세다. 분단 이후 질곡의 역사가 거듭되면서 피아식별이 생존의 기본 조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상의 문화가 안착되기 어려웠다. 상대방의 의견이 옳더라도, 내가 속한 조직의 의견이 다르다면 개인은 진영논리를 택했던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것만이 나의 안위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자유한국당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기도 하다. 오로지 적대적 공생관계로만 존재의 의미를 찾아왔던 그들에게 현 시국은 매우 낯설다. 절대선 미국과 절대악 북한이 한 테이블에 앉는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철저한 진영논리에 맞춰 입장을 정해왔는데 갑자기 이익에 따라 합종연횡을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니 이번 국회 파행처럼 스텝이 꼬이는 수밖에.

그러나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더 이상 레드컴플렉스와 지역감정 그리고 흘러간 개발신화만을 붙들고 생존할 수는 없다. 그것이 현재 자유한국당이 국회로 들어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정부여당과 협상할 이유이다. 부디 야당이 이 책을 읽고 여당과 협상의 파트너가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현재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제기도 서술되어 있으니 정부여당에서도 일독해 보시길.

대통령의 협상 - 노무현과 문재인, 무엇으로 마음을 움직이는가

조기숙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19)


태그:#대통령의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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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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