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컷 ⓒ 영화 <기생충>

 
기생충은 숙주(먹이)의 몸속에 사는 포식자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 대개 숙주는 모른 채 공생한다. 숙주를 먹되 생존을 위해 숙주를 살려야 하는 이상한 포식자가 기생충인 거다. 영화 <기생충>은 그 특성을 비틀어 관객을 놀라게 한다. 그 클라이맥스의 반전을 도발한 건 '냄새'다. 봉준호 감독은 특유의 끼를 흩뿌리며 공생의 아킬레스건을 예시한다.
 
그러니까 <기생충>은 냄새가 파국을 일으키는 드라마다. 첫 장면은 반지하의 꿉꿉한 공기를 디테일한 시각적 메타포로 보여준다. 기택(송강호 분)네 가족 수대로 네 짝을 매단 창가 양말걸이다. 햇볕이 쨍해서 바짝 마르지 않는 한 그걸 걸친 몸에서는 퀴퀴한 곰팡내가 나기 쉽다. 걸치는 게 어디 양말뿐이겠는가. 그 몸들이 한몫했을 지하철 냄새 운운에 말려들어 웃픈 삶마저 결딴낸 기택에게 난 공감한다.
 
그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자조한 기택의 대사, "무계획이 계획이다"가 삶의 통찰로 다가와서다. 그 통에 박사장(이선균 분)과 부인 연교(조여정 분)를 호구 삼은 기택네의 뻔뻔한 사기가 웃음 띤 블랙코미디로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기택의 비장한 표정과 음색은 사기꾼 가장의 아이러니를 나름 꾸민 송강호의 호연이다.
 
<기생충>은 기택의 내면적 불협화음을 계급 차별적 냄새와 교직하며 드라마틱하게 변주한다. 기택의 협연자는 "냄새가 선을 넘는다"고 손가락질하는 박사장이다. 그 설정에 대한 저쪽 꾼들의 공감이 지난 5월 한국 영화 최초로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게 했으리라. 그 수상은 기택과 박사장의 이중주가 선악의 잣대를 들이댈 사안은 아니라는 데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할 때 기택네가 일컬은 연교의 착함은 자기들을 무사통과시킨 어리석음을 에두른 것이다. 그 착함은 운전기사를 하인 부리듯 하고, 잘 지낸 가사도우미를 기택의 한마디에 그냥 내쫓는 쿨한 이기심에 닿아 있다. 정체성이 다른 계층의 냄새에 대해 반사적으로 코를 싸쥐는 박사장의 행위처럼 약자들에 대한 무관심이 몸에 밴 것일 뿐이다. 사기꾼의 먹고사니즘이 예사로운 기택네의 탐욕도 환경의 산물이긴 마찬가지다.

권선징악적 블랙코미디 
 
 기생충 이선균

기생충 이선균 ⓒ CJ엔터테인먼트


그렇다고 <기생충>의 세계관이 방임적인 건 아니다. 침수된 반지하 주거지에서 기우(최우식 분)가 건져낸 수석은 결과적으로 기우의 삶을 부린다. 기우는 친구 민혁(박서준 분)에게서 행운과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수석을 얻은 후 다혜(정지소 분)의 가정교사가 되지만, 김칫국부터 마시다가 히죽이게 된다. 결국 냇가로 돌아간 수석을 낀 그 권선징악적 블랙코미디는 먹고사니즘이 간과한 탐진치(욕심-성냄-어리석음)의 인과를 일깨운다.
 
애꿎은 다송(정현준 분)을 촉매 삼은 연교의 어리석음도 그러한 일깨움의 비극을 낳는다. 더군다나 <기생충>은 심한 궁기에도 찌들지 않은 기택네의 화목이 그러한 비극을 조장함을 역설한다. 모르스 부호로 어렵게 소통하는 상황에서도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가족애는, 보편적 가치는 아랑곳없는 막된 이해집단으로 장차 대체될 수 있어서다. 그 신종 가족 탄생 암시야말로 블랙코미디의 독설이다.
 
따라서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 즉 기우의 환한 몽상은 위협적이다. 지하벙커로 기어든 기택이 지상으로 나오는 건, 기생충이 죽은 숙주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경우와 같아서다. 사회 통합이 아쉬운 지금 여기에서, 코를 싸쥔 행위가 안전불감증에 해당된다는 걸 짚어 보인 봉 감독의 통찰이 의미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의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https://brunch.co.kr/@newcritic21/13
기생충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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