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

지난 6일에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약산 김원봉'을 소개하면서 언급한 이 한 마디에 또 다시 철 지난 '이념 논쟁'이 시작됐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정당과 언론들은 김원봉의 월북 후 행적을 들어 문 대통령의 언급이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한다.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한국광복군을 이끌면서 조국 독립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설적인 독립운동가 김원봉. 그는 지금 해방된 조국에서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조리돌림 당하는 중이다. 그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처음 찍은 친일 경찰 '노덕술'의 망령이 2019년 대한민국에서 부활하기라도 한 것일까?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관련 후손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왼쪽 네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관련 후손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왼쪽 네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김원봉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그 시각, 국회에서는 노덕술에 의해 '빨갱이'가 된 또 다른 이들의 후손들이 모였다. 1948년 친일파들을 처벌하기 위해 설립된 특별기구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관계자들의 후손들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한 지 꼭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회에 모인 반민특위 후손들은 70년 전 경찰이 자신의 조상들에게 저질렀던 과오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반민특위는 왜 해체됐나

1949년 6월 6일 오전 8시 30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윤기병 서울중부경찰서장의 지휘 아래 각 경찰서에서 차출된 경찰관 80여 명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다. 이들은 요원들을 폭행한 뒤, 관련 서류들을 강탈하고 파기하는 행동을 저질렀다. 중부서로 납치당하다시피 끌려간 특위 요원 35명은 빨갱이로 몰려 가혹한 고문까지 받았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들을 추적하는 특별경찰이 경찰에게 고문을 받아야만 했던 기막힌 사건이었다.

그날 오후에는 서울특별시청 경찰국 사찰과 소속 440명의 경찰관들이 '반민특위 간부 교체', '특별경찰대 해산' 등을 요구하면서 집단 사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대통령 이승만은 "민심이 소요되어 부득이하게 특경대를 해산한다"는 요지의 담화를 발표하며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반민특위는 사실상 이날로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민특위 해체는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경찰의 '쿠데타'가 결정적 원인이었던 셈이다.

"이승만 정권과 친일 경찰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아 평생 음지에 숨어 살아왔는데 반민특위를 파괴한 경찰이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속죄하면 위로가 될 것이다."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냈던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의 아들 김정륙씨의 말이다.

올해로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였지만 '과거사 청산'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다. 넘어야 할 문제가 첩첩산중이다. 김원봉 논란에서 볼 수 있다시피 친일 경찰이 애국지사들과 반민특위를 탄압할 때 썼던 빨갱이라는 프레임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다.

"역사 성찰하겠다" 그 약속이 헛되지 않으려면 
 
민갑룡 경찰청장이 작성한 방명록 민갑룡 경찰청장이 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해 방명록을 남겼다. 경찰총수가 4.3 추념 행사에 참석한 것은 민 청장이 처음이다. 민 청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역사를 깊이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 민갑룡 경찰청장이 작성한 방명록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4월 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해 방명록을 남겼다. 경찰총수가 4.3 추념 행사에 참석한 것은 민 청장이 처음이다. 민 청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역사를 깊이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우리 사회의 케케묵은 이념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애국지사들에게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덧씌우고, 그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주체인 경찰이 먼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과거사 청산에 대해 경찰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한 민갑룡 경찰청장은 경찰을 대표해 과거 경찰이 저질렀던 제주 양민학살에 대해 반성과 사과의 뜻을 표한 바 있다. 현직 경찰 수장이 4.3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4.3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분들의 영전에 머리 숙여 애도의 뜻을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하루 빨리 비극적 역사의 상처가 진실에 따라 치유되고 화해와 상생의 희망이 반성에 따라 돋아나기를 기원합니다. 이를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경찰도 이에 동참하여 지난 역사를 더욱 깊이 성찰하면서 오로지 국민을 위한 민주, 인권, 민생경찰이 되겠습니다." - 민갑룡 경찰청장이 제71주년 제주 4.3 추념식 방명록에 남긴 글

더 나아가 민갑룡 청장은 갓 임용된 경찰 교육생들과 함께 '경찰역사 순례길'을 걸었다. 경찰역사 순례길은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백범김구기념관과 의열단 나석주 의사 의거 터부터 4.19 민주묘지와 남영동 대공분실(민주인권기념관) 등 경찰의 과오와 관련된 곳들로 조성되어 있다. 이처럼 부끄러운 자신들의 과거사를 뼈에 새기며 반성하겠다는 경찰의 실천적 행보는 무척이나 반갑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민특위 사건 당시 경찰의 과오에 대해서만큼은 침묵하고 있다는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몰랐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더 큰 문제다. "지난 역사를 더욱 깊이 성찰하겠다"는 민갑룡 청장의 말이 헛된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여전히 빨갱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채 신음하고 있는 김원봉, 반민특위 요원들과 그 후손들 앞에 경찰은 진심 어린 사과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2019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노덕술의 망령을 걷어내는 첫 번째 수순일 것이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애국선열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학도 / 以茶靜心 以武健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