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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은 현충일이다.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며 이 날에는 조기를 게양한다, 10시에는 사이렌 소리에 국민들은 묵념을 하며 기린다. 추모대상범위는 한국전쟁에 전사한 국군만 대상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49년 6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이 사주한 친일경찰 40여 명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을 습격하여 반민특위 위원을 무차별 폭행 및 연행하였으며 집기 및 자료를 파손하였다. 이 일로 반민특위는 급격히 와해되어 1949년 9월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친일 인물을 반민특위 위원장에 임명하고 1949년 말에 활동을 종료하기에 이르렀다.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반민특위 요인 암살 사건을 주도했던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앞줄 왼쪽 첫번째)최난수 (앞줄 왼쪽 세번째)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반민특위 요인 암살 사건을 주도했던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앞줄 왼쪽 첫번째)최난수 (앞줄 왼쪽 세번째)
ⓒ 출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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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을 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 결정적인 날이 6월 6일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민특위가 해체된 사실은 알지만 그 과정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 친일파 청산을 못한 역사의 과정을 제대로 교육해야한다. 

한편, 지난 3월 14일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반민특위로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할 텐데 또 다시 이러한 전쟁(6.25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라는 발언을 했다. 후에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문특위'라고 말을 바꾸었지만, 이렇듯 반민특위활동을 국론분열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현충일 기념사에는 순국순열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나아가 "1949년 6월 6일은 불행의 역사가 있었다. 친일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이다. 순국선열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것 못지 않게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단죄를 못한 것도 순국선열에게 죄송한 일이다"라는 연설을 기대하고 상상해 본다. 

6월 6일이면 현충일보다 친일경찰의 습격이 연상되는 필자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친일파 청산을 논하는 것은 국론분열이 아니며 정의로 가는 길이다. 6월 6일을 기억하는 두 시선을 안고 조기를 게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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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나누며 지식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을 쑥쑥 자라게 물을 뿌려 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또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학생으로 성장하는데 오늘도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