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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열기에 다소 강한 렌즈의 안경
 주방 열기에 다소 강한 렌즈의 안경
ⓒ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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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안경쟁이다. 안경이 없으면 세상 보기가 어렵다. 거울 속 내 모습도 희미하니 어찌 세상을 제대로 보겠는가. 중2 때 안경 쓴 내 모습이 지적으로 보여 이 애 저 애 안경을 마구 껴보다가 시력을 버린 탓이다. 물론 세상 보기가 육안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때론 드러난 세상보다 드러나지 않은 세상에 집중해 혜안을 얻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형편없는 육안 때문에 난 안경이 세 개다. 워낙 덜렁대서 툭하면 어딘가에 안경테를 부딪히는 바람에 하나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다. 특히 안경테가 비뚤어지면 심리적 안정을 잃는다. 미세한 눈썹 하나가 얼굴에 떨어져도 그 느낌이 신경 쓰여 어떻게든 찾아 집어내야 한다. 그러니 안경테의 불균형은 만사무심을 일으킨다. 그러다 보니 여러 안경을 마련해 집에서도 뭘 하는지에 따라 달리 쓴다.

주방에서는 가스 열기 손상에 둔한 걸 쓰고, 서재에서는 활자 위주의 오피스 안경을 낀다. 외출할 때는 변색 기능이 있어 선글라스를 겸하는 안경을 착용한다. 그렇듯 다른 용도의 안경 셋을 지니려니 돈이 꽤 든다. 물론 그냥 원거리용은 싸다. 나처럼 집 여기저기에 컴퓨터와 폰과 책을 널려 놓고 수시로 가까이 하려면 렌즈에 이런저런 기능을 삽입해야 어디서나 장애 없이 볼 수 있다. 렌즈에 투자하는 게 마땅하다.
 
변색 기능이 있어 선글라스가 되는 안경
 변색 기능이 있어 선글라스가 되는 안경
ⓒ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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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경은 셋 다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이 있는 다초점렌즈다. 자외선과 청색광을 막아주니 웬만한 집 안팎 환경에서 시력 보호가 된다. 그러나 시야 확보는 렌즈 종류마다 다르다. 당연히 셋의 렌즈는 다 부류가 다르다. 오늘 주방용 안경 때문에 단골 안경사를 방문했다. 코걸이 높이에 따라 선명도가 다르기에 피팅이 필요해서다. 그런데 안경점에 들어서다 유리창에 머리 박는 새 꼴이 됐다. 외출용 안경도 손보게 된 거다.

내 단골 안경사는 김기봉씨다. 어느덧 10여 년 세월을 함께했다. 수시로 찾아가는 나를 언제나 웃음으로 맞아준다. 이런저런 서비스를 알아서 해주는 건 물론이다. 최근에는 렌즈갈이 하루 만에 테의 접착제가 모르는 사이 홀연 떨어졌다. 2주 이상 안경을 맡겨야 하는 난감한 상황인데, 당장 집에 쓰고 갈 원거리용 안경을 만들어줬다. 내 이미지에 맞춤한 새 안경테를 골라 주기까지 했다. 그냥 돌려주면 된다는 조건으로.

몇 년 전에는 산 지 몇 개월 지난 안경테에 문제가 생기자 아예 새 것으로 교환하게끔 본사와 중재해줬다. 고가의 수입테였는데, 내 입장에서 일을 처리해준 것이다. 이번에 수선에 들어간 게 바로 그 안경테다. 일을 겪을 때마다 난 인복 있음을 실감한다. 인복만큼 팍팍할 때 힘이 되는 게 또 있을까. 나도 누군가의 삶에 인복으로 스며들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전방 400m까지만 최적화된 독서용 안경
 전방 400m까지만 최적화된 독서용 안경
ⓒ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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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팅한 주방용 안경 덕에 식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요즘은 식탁을 책상보다 애용한다. 서재에 머물 틈이 별로 없어서다. 모든 식재료를 분쇄하거나 갈아 음식을 만들어야 하므로 주방에서 거의 산다. 설거지하다가도 음식을 만들다가도 틈틈이 신문을 보고, 채팅하고, 책읽기나 글쓰기도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만으로 살아야 하고, 물론 살 수 있다.

그러하니 내 안경은 셋이지만, 나는 무엇도 될 수 있다. 정해진 바 없어 언제든 무엇일 수 있다. 참 삶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어서 조건이 없으니까. 그저 무엇 됨이 자리이타행이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newcritic21


태그:#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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