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 Pixabay

 
"만약 '게임이용 장애'가 정말 문제라면, 어떤 게임을 어떤 상황에서 이용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면밀하게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는 없다." (심재연 한국게임학회 이사)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중독(게임이용 장애)을 질병으로 분류해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에 등록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 경희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한국e스포츠협회 등 90여 개의 학회·협회·대학·민간단체는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 반대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게임공대위)'를 꾸리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관련 기사 : 국회에 '근조 게임' 영정... "마녀가 된 게임문화·산업" http://omn.kr/1ji5k).

게임공대위에서 위원을 맡고 있는 심재연 한국게임학회 이사는 5월 3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게임이 질병이다, 아니다'라고 하기엔 아직 연구 결과가 미흡하다"라며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게임 이용 장애를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로 국내에 도입하는 건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심재연 이사와 나눈 일문일답. 

"시작부터 '게임은 질병'이라고 전제한 연구 많아"

- 최근 '게임중독 질병 분류'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게임중독에 관한 진단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WHO에서 결정됐다'는 것 이외에는 상세한 정보가 대중에 제공되고 있지 않다. '어떤 게임을 어떻게 했을 때 어떤 상황이 생기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아직 없다.

게임 과몰입에 대한 연구가 게임에 대한 이해 없이 진행되는 것도 문제다.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게임광고지 명부에 대한 메타 분석 연구'라는 학술자료가 있다. 이를 살펴보면, 게임 과몰입에 대한 연구들이 게임에 대해 이해도가 떨어진 상태로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번 사안을 두고 보건복지부에서 민간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게임공대위 및 게임계에서는 이에 반발하며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참여하지 않기로 한 이유가 뭔가.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게임에 관련된 모든 부처를 포함한 민간협의체 구성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국방부, 교육부, 여가부, 중소기업벤처부, 고용노동부 등 게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정부 부처들과 민간단체들이 모두 모여 제대로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게임공대위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주도하는 협의체 구성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게임중독은 질병이다'라는 입장을 깔고 시작하면 이미 기울어진 것 아닌가. 보건복지부의 방향에는 문화체육관광부도 다른 의견을 낸 상황이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관련 긴급토론회 한국게임산업협회 주관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가 2019년 5월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관련 긴급토론회 한국게임산업협회 주관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가 2019년 5월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 게임계에서는 세계보건기구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 결정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나.
"시작부터 '게임은 질병'이라고 전제를 놓고 진행한 연구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연구 내용을 봐도 '어떤 장르의 게임에서 어떤 문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 만약 그런 게 있다고 하면, 게임업계에서도 문제가 된 부분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일반적으로 중독이라고 하면, '금단 증상'을 떠올리지 않나. 그런데 게임에 대한 금단 증상은 명확하게 확인된 바 없다. WHO 판단 기준에서도 금단에 관한 부분은 빠져 있다."

- 현재 '셧다운제'(오후 10시 이후 청소년의 온라인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방식)가 이미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다. 또 많은 온라인게임에서 매시간 '접속 후 O시간이 지났습니다' 등 안내문구를 화면에 띄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것도 게임 과몰입을 막기 위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나?
"이번 사안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 중 하나는, '게임이용 장애' 중 청소년에 대한 부분이다. 청소년들이 게임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이슈가 불거지지 않았나 한다.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과한 규제가 이미 있다. 셧다운제라든지... 접속 경과 시간을 알려주는 것도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게임회사의 보조적 장치들이다.

게임회사들이라고 해서 게임 과몰입을 막기 위해 노력을 안 하는 게 아니다. 나름 자구책도 만들고 있다.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면 '(게임회사들이) 게임 몰입을 유도하는 쪽으로 게임을 만들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런 주장은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 나오는 것 같다."

"중독으로 인한 과세 추진된다면... 게임업계 양극화 심해질 수도"

- 이번 WHO의 결정이 국내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장은 아니고(오는 2022년 1월부터 효력 발생), 아직 국내 도입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도입이 결정된다고 가정하면 어떤 점들이 우려되는가. 
"공대위에서 가장 원하는 건 한국에 KCD 도입이 되지 않는 방향이기 때문에, 도입 반대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만약 KCD가 도입되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이 있을 것이다. 우선 '얼마나 게임을 해야 게임이용 장애인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혼란을 줄 수 있다. 또한 사용자가 게임을 할 때마다 '저건 병이야' 하고 지적을 받는 등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안 좋아질 것이 우려된다.

게임업계 매출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고, 게임 규제에 따라서 국내 대학의 게임 관련학과 신입생 충원률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게임이용 장애가 국내에서도 질병으로 규정된다면 신입생이 줄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또 2018년 콘텐츠진흥원 발표에 따르면 전체 콘텐츠 산업에서 게임이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핵심적인데, 성장 동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점도 문제다."

심재연 한국게임학회 이사는 이번 WHO 결정이 국내에 KCD로 도입될 경우, 2013~2014년 국내에서 거론됐던 '게임에 대한 과세'가 다시 추진될 수 있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게임중독 관련 법안들 중에서 2013~2014년도에 거론됐던 '게임에 대한 과세'나 '4대중독법안' 등에서 논의된 중독세 등이 다시 진행될 수도 있다고 본다. 대기업들은 지금의 인프라를 통해 어떻게든 버틸 수도 있겠지만, 신생 게임업체들과 중소기업에는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허리를 지탱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도 게임업계의 양극화가 문제로 지적되는데, 게임에 대한 과세 등이 진행되면 중소기업의 위축으로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 고용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콘텐츠 산업보다 게임산업의 고용률이 높은 편이다. 게임 콘텐츠 개발자들은 IT업계에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인데, 과세가 진행될 경우 고용 창출에 있어서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게임중독' 질병코도 도입 반대 공대위 발대식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이 향후 활동계획을 밝히고 있다.

▲ '게임중독' 질병코도 도입 반대 공대위 발대식 2019년 5월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이 향후 활동계획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 '게임이 마약이냐'라는 식으로 게임계에서 반발하는 것에 '감정적인 대응 아니냐'라거나 '더 현실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
"지난 게임공대위 기자회견(5월 29일)에서 향후 계획에 대해 발표한 바 있다. 구체적인 대응 방식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관련 범부처 민관협의체 구성과 더불어 국내외 공동연구를 추진하면서 국제 학술 논쟁의 장도 마련하려고 한다.

물론 게임공대위의 대응이 감정적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다만 그게 전부가 아니고, 공대위에서는 할 수 있는 방향을 모두 시도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 외에도 데이터 분석과 수집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기존에 나왔던 자료에 관해서 팩트체크도 같이 하고 있다."

심재연 이사는 이번 사안을 두고 "게임을 문화로 여기지 않는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게임을 게임으로 봐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면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에 찬성하는 측의 연구자료를 다시 검증하는 작업에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심 이사는 "시대가 변해가면서 기성 세대들이 문제로 삼아 타깃이 되는 문화 매체가 있었는데, 이번엔 게임이 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19세기에는 소설, 20세기에는 방송과 TV, 21세기에는 게임이 타깃"이라며 "최근 추세를 보면 스마트폰 이용의 경우 더 중독성이 강하다, 하지만 스마트폰 중독은 왜 질병 코드로 분류되지 않느냐 하면 게임에 비해 너무 이용자의 폭이 넓기 때문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다른 기사 보기]
한 게임개발자의 쓴소리 "게임 탄압? 논리적이지 않아" http://omn.kr/1jl5w
"'게임중독'이 근거 부족? 그러면 '알코올중독'도 불가능" http://omn.kr/1jk9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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