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논픽션>의 포스터

영화 <논픽션>의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논-픽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식당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가 있다. 잠시 뒤 턱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자가 들어오고 두 사람은 함께 앉아 식사를 주문한다. 오랫동안 아는 사이로 보이는 두 남자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때 턱수염의 남자가 자신의 원고에 대해 물어보자 남자는 말을 돌린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함께 사무실로 향하고 헤어지기 전 턱수염의 남자는 다시 한번 자신의 원고 얘기와 함께 출판 스케줄에 대해 묻는다. 이에 남자는 '난 알아 들었을 줄 알았는데'라고 말하며 차갑게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 남자의 이름은 알랭(기욤 까네), 잘 나가는 출판사 편집장인 알랭은 여배우인 아내 셀레나(줄리엣 비노쉬)와 살고 있지만 나이 어린 직장 부하인 로르(크리스타 테렛)와 불륜 관계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기간 자신과 함께 작업해 왔던 친구이자 작가인 레오나드(빈센트 맥케인)가 새로운 원고를 들고 오지만 알랭은 레오나드의 사생활을 잘 알기에 자신의 사생활을 짜깁기한 그의 소설을 거절한다.

한편 레오나드는 작가로, 정치인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아내 발레리(노라 함자오위)와 살고 있다. 아내의 불임으로 인해 과거 두 사람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로 인해 레오나드는 6년째 알랭의 아내 셀레나와 '비밀연애'를 하고 있다. 이에 레오나드는 셀레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셀레나는 남편 알랭에게 레오나드의 새 원고에 대해 두둔을 하게 된다.

이때 알랭의 출판사 대주주가 레오나드의 책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레오나드의 새 책은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된다. 이와 함께 셀레나는 레오나드와의 비밀연애를 끝내고 알랭 또한 직장 부하인 로르와 헤어진다.

얼마 뒤 알랭 부부와 함께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가게 된 레오나드는 그곳에서 아내 발레리의 임신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 이처럼 이 영화는 직장 부하와 바람을 피우는 주인공 알랭, 남편의 친구 레오나드와 바람이 난 알랭의 아내 셀레나, 그리고 셀레나와 바람이 난 알랭의 친구 레오나드, 세 사람의 관계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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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이야기를 바탕에 두고 출판업계의 변화 이야기하다
 
 영화 <논픽션> 스틸컷

영화 <논픽션>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영화 <논픽션> 스틸컷

영화 <논픽션>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겉보기엔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한국의 '막장드라마'를 연상하게 만든다. 맞바람이 난 부부와 친구의 아내와 바람이 난 남자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한국의 아침드라마 속 설정보다 더한 막장드라마로 느껴진다. 하지만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세 사람의 불륜 이야기는 배경에 두고 여기에 책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를 영화 속에 녹여 놓았다.

첫 번째는 출판 산업의 디지털화다. 극 중 출판사 편집장인 알랭은 고급 수제 양장본으로 만든 책을 좋아하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아마존 킨들 같은 휴대하기 간편한 전자책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고민하게 된다.

이때 그의 불륜 대상이자 디지털 사업부에서 일하는 로르는 적극적으로 전자책에 대한 확대를 주장한다. 이에 알랭은 출판계 주변 사람들을 만나 출판산업의 디지털화에 대해 토론한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주된 소재는 불륜이지만 아사야스 감독은 불륜보다는 오히려 이런 사람들의 토론 장면을 더 중점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영화에 투영한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출판 산업의 디지털화라는 조금은 딱딱한 소재를 세 남녀의 엇갈린 불륜이란 코미디적인 요소와 함께 보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접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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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논픽션> 스틸컷

영화 <논픽션>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과거 엽서와 편지를 써서 서로의 안부를 묻던 시대에서 E메일을 지나 이제는 실시간으로 채팅을 하며 서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듯 출판업 또한 이런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게 됐다.

이는 영화 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나 다 고급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로 인해 과거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아주 어린 나이에 영화를 만드는 천재 감독이 나올 수 있는 시대다. 또한 이런 영상들을 유튜브라는 공간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동시간대에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대해 64세의 아사야스 감독은 책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를 보여주려 한다.

픽션과 논픽션, 이미지와 실제 모습의 사이
 
 영화 <논픽션> 스틸컷

영화 <논픽션>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그리고 두 번째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다. 영화 속 작가 레오나드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소설 속 인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유명 작가인 레오나드는 그의 사생활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욕을 먹게 된다. 헤어진 전 여자친구와 비슷한 캐릭터가 소설 속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출판 기념식에 모인 사람들은 그가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돈벌이에 이용했다며 그를 비난한다. 또한 그와 6년째 불륜을 이어가던 셀레나는 이런 레오나드에게 다음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넣으면 가만 안 두겠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드는 자신의 차기작 속에 셀레나를 등장시킨다.

이처럼 이 영화는 작가의 창작이란 부분과 실제 경험이란 부분에 대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와 함께 레오나드의 아내 발레리는 자신이 지지했던 정치인의 이미지와는 다른 실제 모습을 보고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감독은 이를 통해 '실제 이미지와 만들어진 허구의 이미지, 서로 다른 두 가지 이미지 중 실제는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우리는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소설과 영화에 빠진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보고 그 배우를 좋아하게 되고, 또한 대중에 비치는 이미지를 보고 정치인들을 지지한다. 이는 실제 그 사람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일지라도 대중은 만들어진 그 이미지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사생활이 폭로되거나 정치인의 비리가 보도되면 우린 그 실제와 허구의 이미지를 동일시하며 그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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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중 한 장면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중 한 장면 ⓒ (주) 영화제작전원사

 
이 부분에서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홍상수 감독이다. 김민희와의 스캔들이 터지기 이전, 관객들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캐릭터들을 보며 허구의 캐릭터라 생각해 웃으며 재미있게 그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찌질한 캐릭터들 속에 인간의 내면을 담아낸 그의 영화를 보며 많은 영화팬들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민희와의 스캔들이 터진 이후엔 그의 영화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180도 바뀐 듯하다. 그의 영화 속 많은 캐릭터들이 실제 홍상수 감독과 겹쳐 보이고, 그로 인해 영화 속 모든 이야기가 마치 그의 변명처럼 들려 많은 관객들이 그를 외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많은 감독들이 그러하듯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는 늘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만이 달라졌을 뿐일 수도 있다. 모든 작가의 작품은 당시의 시대상과 자신의 경험, 그리고 주변 사람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100%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일부일 뿐 수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야 더 사실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단 한 번도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이 사랑 이야기를 쓴다면 아마도 그 이야기는 누구도 공감하기 힘든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픽션과 논픽션이란 경계에 대한 부분을 소설이나 영화 문화가 아닌 인간의 본질로 확장시켜보면 영화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의 모습 중 과연 어떤 게 진짜 그 사람일까'라는 질문으로도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질문이 진짜 아사야스 감독이 관객들에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현택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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