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아솔에게 2년 반의 공백은 컸다.

권아솔에게 2년 반의 공백은 컸다. ⓒ 로드FC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위험이 높은 만큼 수익도 높다는 뜻으로 뭔가 모험이 필요할 때 혹은 승부수를 걸어야하는 시점에서 종종 쓰이는 말이다. 이에 어울리는 상황이 오면 긴장감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다보면 선택의 버튼을 눌러야 될 때가 있다. 잘 안됐을 때의 두려움을 감수할 만큼 잘됐을 때의 달콤함이 크기 때문이다.

18일 제주 한라체육관서 펼쳐진 '로드FC 053' 메인이벤트에 나섰던 라이트급 챔피언 권아솔(33·팀강남/압구정짐)이 딱 그랬다. 권아솔은 해당 대회에서 체급벨트와 더불어 '100만불 토너먼트 파이널' 최후 승리자 자격을 놓고 '타잔' 만수르 바르나위(27·프랑스)와 한판승부를 벌였다.

만수르는 강한 상대였다. 100만불 토너먼트에서 맞붙은 기원빈, 김창현, 난딘 에르덴, 시모이시 코타 등을 줄줄이 서브미션으로 잡아냈다. 조금의 빈틈만 보여도 벼락같이 서브미션을 작렬하는 놀라운 결정력을 과시했다. 결승전에서는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다게스탄의 사자' 샤밀 자브로프(34·러시아)를 무시무시한 니킥으로 무너뜨렸다.

UFC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의 사촌형으로도 유명한 자브로프는 장기인 레슬링을 앞세워 거칠게 압박했으나 주짓수와 타격으로 무장한 만수르를 당해내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 대회를 앞두고 많은 이들이 만수르의 압승을 예상한 것이 사실이다.

만수르같은 경우 컨디션과 기세가 최고조에 올라있던 반면 권아솔은 2년 5개월 만에 복귀전에 나서는지라 실전 감각마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객관적 전력에서도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이길 경우는 그러한 부분이 모두 플러스로 돌아설 수 있었다. 아쉽게도 그는 1라운드 3분 44초 만에 리어네이키드초크에 탭을 치며 '혹시나'하는 반전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단체의 흥행을 책임지고 있는 외로운 홍보부장
 
결과적으로 권아솔은 높은 위험을 감수한 만큼 소득이 거의 없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큰 손해만 봤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거액의 상금은 물론 라이트급 챔피언벨트까지 잃었다. 무엇보다 그렇지 않아도 밉상으로 낙인찍인 가운데 엄청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듯해 굉장히 안타깝다. 당분간은 좋지 않은 팬심을 혹독하게 감내해야 되는 상황이다.

물론 선수가 경기를 하다 보면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단순히 경기에서 졌다고 악플에 시달린다는 것은 다소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아솔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는 비난을 즐긴다. 마음껏 비웃어라. 결과로 보여 주겠다'는 식으로 판을 깔아놓은 상태에서 완패를 당한 것인지라 입장이 난감하게 됐다.

로드FC 홍보부장, 로드FC 공식 욕받이(?)로 통하는 권아솔은 단체의 흥행을 이끌어가는 최고 스타다. '권아솔이 있었기에 로드FC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간 권아솔의 역할은 매우 컸다. 특유의 건방진 악동콘셉트를 통해 격투기 선수로는 드물게 포털사이트 검색어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보여주며 로드FC의 이름을 알렸다.

어찌 보면 로드FC에서는 단체의 얼굴인 권아솔을 조금 아껴줘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100만불 토너먼트'를 통해 또다시 권아솔을 전쟁터 한복판으로 내몰았다. 100만불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놓고 국내외 쟁쟁한 파이터들이 경쟁을 해서 최종 승자를 가리고, 거기서 살아남은 1인이 미리 기다리고 있던 권아솔과 파이널매치를 벌이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로드 투 아솔(ROAD TO A-SOL)'로 불리던 해당 이벤트를 두고 국내 격투 팬들의 반응은 매우 좋지 않았다. '권아솔이 뭔데, 미리 왕좌에서 기다리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차라리 권아솔도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토너먼트에 참가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주최측에서는 한술 더 떠 권아솔을 '끝판왕'으로 홍보하며 성난 팬심에 기름을 부었다.
 
 권아솔이 안티팬이 많은 이유는 지나친 '입담'에 있다.

권아솔이 안티팬이 많은 이유는 지나친 '입담'에 있다. ⓒ 카툰공작소 케이비리포트 제공 (그림 최감자)

 
사실 권아솔은 이 정도로 비난을 받을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운동선수가 크게 비난받는 요소인 범죄, 약물복용, 팬서비스 불량 등 어느 것을 가져다놓아도 걸리는 게 없다. 외려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다. 배려심 깊고 팬들에게 친절하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등 실제 모습은 굿가이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로드FC 홍보를 책임져야 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권아솔은 날이 갈수록 장외와 SNS 등에서 무리수를 두며 엄청난 안티 팬을 양산하고 말았다. 로드FC 측에서 적당히 권아솔의 이미지를 조절해주면서 홍보를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예상보다 더 컸던 전력차, 2차전 기대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권아솔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감을 안고 만수르와 충돌했다. 오랜 공백 기간, 주최 측의 기울어진 홍보, 거기에 권아솔 개인의 꾸준한 무리수까지 더해지고 있던 터라 만약 경기에서 질 경우 어떠한 반응이 쏟아져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굳은 얼굴로 경기장에 들어서는 권아솔의 표정에서도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느껴질 정도였다.

권아솔은 더티복싱을 승부수로 들고나온 듯했다. 신장과 리치가 좋은 만수르를 맞아 스탭을 살린 인 앤 아웃 파이팅을 펼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근접거리로 붙어 끈적하게 싸우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만수르와 싸워 승리를 하거나 좋은 경기 내용을 펼친 선수들의 경기 영상 등도 참고자료가 됐을 것이 분명하다.

오랜 공백 기간, 권아솔의 파이팅 스타일 등을 봤을 때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권아솔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나쁜 시점에서 쿠메 타카스케, 사사키 신지 등 난적을 잡아내며 위기를 탈출한 바 있다.

하지만 그들과 만수르는 분명 달랐다. 다카스케, 신지 등은 그래플링에 특화된 유형이었으나 만수르는 사이즈를 앞세운 스탠딩 타격까지 위험했다. 테이크다운을 막아내면서 흐름을 잡아먹는 플레이에 능한 권아솔 입장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유형의 상대다. 공격 옵션도 다양한지라 그라운드를 경계한다고 어설프게 거리를 줄 경우 예상 밖 거리에서 융단폭격을 당할 우려도 컸다.

결국 이런저런 부분을 감안해 권아솔은 초반부터 거리를 바싹 좁히며 만수르를 몰아붙였다. 만약 만수르를 케이지 구석에 가둬놓고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했다면 승부의 흐름은 어찌됐을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만수르는 권아솔이 준비한 영역에서도 강력했다. 완력은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한 수 위 기량을 선보이며 클린치 공방전에서 권아솔을 압도해나갔다.

상대를 케이지 구석에 밀어붙여놓고 타격을 쏟아 붓는 쪽은 만수르였다. 권아솔을 상체싸움에서 꽉 밀어놓고 어깨치기로 연신 안면부위를 강타했다. 권아솔이 어렵사리 거리를 벌려놓고 펀치공격으로 맞대응하려 하자 이번에는 권아솔의 뒷목을 잡고 컨트롤하면서 짧고 묵직한 잔 펀치를 계속 맞췄다. 만수르는 유효타 싸움과 바디 컨트롤에서 일방적 우위를 가져갔다. 결국 빰클린치 후 니킥이 연거푸 들어가는 상황서 묵직한 펀치가 터졌고 권아솔은 다운을 허용했다.

그라운드 상황에서도 만수르는 차분하게 권아솔을 요리해나갔다. 파운딩을 피해 스윕을 시도하려는 권아솔의 움직임을 어렵지 않게 봉쇄해나가더니 백포지션을 점령하고 특기인 리어 네이키드 초크를 작렬시켰다. 완벽하게 들어간 기술에 권아솔은 견디지 못하고 탭을 칠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공백 기간 등이 경기력에 영향을 줬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부분을 감안한다 해도 승부는 심하게 일방적이었다. 권아솔은 "내가 다시 챔피언전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만수르가 계속 그 자리에 있길 바란다"고 재대결 의사를 피력했으나 다시 경기가 펼쳐진다 해도 리벤지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이번 대결에서 드러난 전력차는 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권아솔 패배 만수르 승리 권아솔 만수르 100만불 토너먼트 파이널 제주대회 결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