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추모 행사가 17일 오전 부산추모공원에서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추모 행사가 17일 오전 부산추모공원에서 열렸다. ⓒ 성하훈

 
"대만 출장을 다녀온 직후인 지난 7일, 부산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저희 사무실은 수영요트경기장 내에 있는 가건물을 쓰고 있는데요, 바다가 바로 보입니다. 마치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비는 바다의 표면을 세차게 내려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다 표면은 그렇게 요동을 치지만 저 깊은 바다 속은 잠잠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부산국제영화제는 저 깊은 바다 속을 닮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2009년 7월 부산영화제 뉴스레터 중)
 
지난 2009년 7월 이명박 정권이 부산영화제를 좌파로 몰아붙이며 한참 공세를 취하고 있을 때, 김지석 당시 수석프로그래머는 영화계 관계자들과 부산영화제 관객들을 이런 심정을 전했다. 아무리 요란하게 공격을 했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그의 각오와 다짐은 5년 뒤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2014년에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말라는 정권 차원 압박이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버텨냈고, 표현의 자유와 부산영화제를 지키기 위해 가장 앞장서서 싸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심적인 내상이 컸던 모양이었다. 작별인사 조차 없이 홀연히 영화제와 영화인들에 많은 슬픔을 안긴 채 떠나갔다.
 
아시아 표현의 자유 수호
 
부산국제영화제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의 2주기 추모 행사가 그의 기일인 18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부산 기장군에 있는 부산추모공원에서 열렸다. 부산영화제 이용관 이사장과 방추성 부산 영화의 전당 대표, 주유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 영화계 인사들과 사무국 직원들이 함께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을 기리며 고인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7년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출장 중 현지에서 급작스럽게 타계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은 '부산영화제 사태' 과정에서 한국영화가 치러야 했던 가장 안타까운 희생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탄압이 부산영화제의 주춧돌을 앗아간 셈으로 전 세계 영화인들의 상심이 컸다. 여전히 빈자리는 채울 수 없어 보인다.
 
 2016년 부산의 한 행사에 다이빙벨 상영 금지 압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생전의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2016년 부산의 한 행사에 다이빙벨 상영 금지 압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생전의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 모퉁이극장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은 생전 부산영화제의 기틀을 닦아 놓았고, 국내외에서 부산영화제 그 자체로 평가받았다. 부산 출신으로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인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과 함께 '부산영화의 대표'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진보적인 영화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행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시아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이었다. 정치와 종교적인 문제로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아시아 나라의 영화인들이 탄압을 받을 때 가장 앞장서 움직이면서 국제적인 연대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지역 영화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으로 대표되는 부산영화제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은 이들이 만드는 영화의 제작을 도왔고, 부산영화제에 초청해 이들의 창작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아시아영화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은 아시아 영화에서 표현의 자유의 수호자 역할을 했던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탄압을 받는 것에 대한 크게 분노했다. 그럴수록 이를 이겨내기 위한 각오도 단단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순간 그는 "마음 속 응어리가 하나 풀렸고 이제는 비로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뻐했다. 부산에서 그는 대표적인 '문재인 지지 영화인'이기도 했다.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은 "부산영화제 탄압 과정에서 쫓겨난 이용관 현 이사장과 전양준 집행위원장의 무죄만 받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블랙리스트 정권이 한국과 아시아영화에 준 피해
 
 17일 오전 부산추모공원에서 열린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2주기 추모행사

17일 오전 부산추모공원에서 열린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2주기 추모행사 ⓒ 성하훈

 
하지만 그는 끝내 부산영화제의 정상화를 보지 못하고 황망하게 그리운 사람들 곁을 떠나갔다. 블랙리스트 정권이 한국영화에 안긴 상흔이었고, 아시아영화에 준 피해였다. 세월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역사적 사회적 인식이 분명했던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의 빈자리를 여전히 커 보인다.
 
부산영화제는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을 기억하기 위해 2017년 지석상을 신설해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신인 감독의 발굴과 지원에 헌신해온 고인의 정신과 뜻을 잇고 있다. 지난해에는 김지석을 기념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영화 <지석> 제작에 들어갔다. 2020년 부산영화제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 <지석>을 제작하고 있는 김영조 감독은 이날 추모행사에 참석해 제작 상황을 알리면서 "영화에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시길 바란다"며 김지석에 대한 기억을 공유해주길 요청했다. 이용관 이사장은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 해외 출장을 다녀온 후 정리한 출장보고서가 매우 꼼꼼하다"며 "이를 정리해 올해 책을 만드는 것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지난 부산영화제 역사에서 제일 잊기 힘든 게 아무래도 김지석의 죽음이고 가장 슬픈 기억"이라며 "부산영화제에서 가장 출중했던 사람이고 그를 대체할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쌓아 놓은 공든 탑 덕분에,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압박을 받아 시달렸음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 타계한 프랑스 칸영화제는 전양준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들이 참석 중인데, 현지에서는 19일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하는 한국영화의 밤에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으로 알려졌다.
김지석 부산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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