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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에 네모필라 꽃이 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없던 감수성까지 일으키는 꽃, 이 시기를 놓친다면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조금 있다 촬영해야지 하는 순간 꽃은 사라져 버리거나 절반 이상이 뭉그러져 버리기 일쑤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처럼 열흘 붉은 꽃은 없다.

우리나라 남도를 꽃 촬영 차 누비고 있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 제일 아쉬운 건 시간을 쪼개 가보면 이미 꽃이 져버렸을 때다. 꼬박 1년을 기다리거나 3년을 기다려 만난 꽃들이 어찌나 애틋한지.

네모필라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데, 이 녀석을 놓친다면 또 후회할 것 같았다. 스카이 블루의 융단을 보고 싶어 후쿠오카에 하루 더 머물렀다.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에 핀 네모필라 공원의 ‘꽃의 동산’ 지구에 하늘빛 네모필라 융단을 깔아놓았다. ⓒ 최정선
 
글이 비루해 사진으로 커버하고자 주야장천 꽃을 찍어 독자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나의 어휘 실력과 문장은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턱없이 짧다. 꽃에 대한 사실적 묘사도 이름 열거 이외에는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마냥 어렵다. 아무리 노력해도 꽃들의 형태와 색깔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건 불가능하다. 느낌 그대로 전달하고 싶은데... 음식의 맛처럼 눈맛을 말이다.
  
없던 감수성까지 불러일으키는 꽃 아무리 노력해도 꽃들의 형태와 색깔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최정선
  
엄마의 도시락
 
인증 셀카를 위한 디지털 여행이 아니라 꽃과 마주하는 아날로그 감성을 추구하고 싶다. 여행의 추억을 쌓기에 꽃만한 주제가 없다. 어여쁘고 아름다움 앞에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생명을 잉태하고자 최상의 아름다움을 틔우고 사라지는 꽃, 그 절정을 쫓아가는 여행은 깊은 앙금까지 지워주는 마법이다.

아빠를 먼저 보내고 홀로 10년을 지낸 엄마와 여행을 통해 그동안 쌓였던 앙금을 걷어내고 싶었다. 종종 해외 가는 걸 좋아하시는 터라, 여행이란 주제로 화해의 장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하카타역의 에끼벤토 하카타역에서 에끼벤토를 사자고 말했지만, 엄마는 직접 도시락을 싸겠다고 하신다. 엄마는 일본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도시락을 직접 싸셨다. ⓒ 최정선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에서 온종일 보낼 요량으로 하카타역에서 에끼벤토(駅弁当)를 사자고 말했지만, 엄마는 직접 도시락을 싸겠다고 하신다. 도시락을 위한 초밥용 유부를 텐진의 아뮤플라자(アミュプラザ)까지 가서 직접 고르는 정성까지 보여주셨다.

그 과정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올 1월에 여동생과 와본 터라, 후쿠오카 도심에 대해 자신이 있으셨던 것 같다. 여정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와 간편한 차림으로 텐진까지 걸어가자고 하신다. 하카타에서 텐진까지 100엔 버스 타면 되는데 굳이 걸을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엄마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는 법. 내 의견을 어필하면 언쟁이 시작될 건 뻔한 일이다.
 
슬슬 운동 삼아 걸어 가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가스까지 와 '왜 이리 멀어!' 하시며 투덜대신다. '예상했던 일이 왔구나!' 싶었다. 그래도 어쩌리. '엄마가 주장해서 왔잖아'라는 말을 하는 순간 다툼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게 아뮤플라자의 식품코너에서 사각형 유부를 쌌다. 돌아올 때는 잊지 않고 100엔 버스에 탑승했다.
 
이른 새벽 자명종이 울리자 엄마가 벌떡 일어나신다. 한국에서 가져온 즉석 밥인 '햇반'을 풀어 일일이 비닐에 담아 커피포트에 데우셨다. 밥이 부들부들해지자 김치, 멸치, 김을 넣고 버무려 재빨리 유부에 넣어 도시락 하나를 금세 만드셨다.
 
눈시울이 찔끔했다. 엄마에겐 표를 내지 않았지만 늘 우리들을 위해 챙기고 헌신하시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여행 와서까지 꼭 그럴 필요 없는데... 엄마는 일본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도시락을 직접 싸셨다.
 
아침 일찍 하카타 역으로 서둘러 갔다. 역무원에게 미리 구매한 '후쿠오카 시티 패스'와 함께 종이를 보여 줬다.
 
'香椎駅はどこですか'
 
역무원은 손가락으로 2번 플랫폼을 가리키며 브이를 그렸다. 첫날 구마모토 출발 탑승 플랫폼을 못 찾아 열차를 두 대나 놓친 경험이 있다. 같은 실수를 안 하고자 안되는 일본어로 손짓, 발짓하며 물어봐야 안심이 된다.
  
JR 사이토자키 행(西?崎線) 열차 우리가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까지 탔던 열차다. ⓒ 최정선
 
우선 JR 가시이 행(香椎線)에서 내려 JR 사이토자키 행(西戸崎線)으로 환승해야 한다. 그리곤 쭉 가다 종착역인 사이토자키 역 바로 직전 우미노나카미치 역(海の中道駅)에 내리면 된다. 사이토자키 행 기차는 두량으로 소박했다. 골든위크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이 열차에 탑승했다. 일본의 골든 위크는 보통 4월 29일부터 시작된다. 기간은 대략 4월 하순부터 5월 상순에 걸쳐 약 1주일간의 긴 연휴다. 이 휴가 기간을 일본인들은 골든 위크(ゴールデンウィーク)라 부른다. 때론 대형연휴, 황금주간, 혹은 GW라고도 한다. 우미노나카미치 역에 도착하자 대부분 사람들이 열차에서 내렸다.
  
종착역인 사이토자키 역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의 서쪽 출입구가 사이토자키 종착역 부근이다. ⓒ 최정선
 
좌석에서 일어서 내리려다 종착역인 사이토자키 역에 내리자고 엄마를 잡았다.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 가는 법' 검색을 통해 얕은 지식을 습득한 상태다. 사이토자키 부근에 공원 출입구가 있다는 정보를 본 듯해 종착역에서 내렸다.
 
역에 도착하자 관광객들이 열차 사진을 찍기 바쁘다. 나도 덩달아 찍긴 찍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원 출입구가 어디냐'를 알아보는 것이 나의 임무다. 역으로 나가 안내판에서 공원 입구를 찾았다. 그림으로 보기엔 한계가 있어 자전거를 타는 남자분께 공원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냐고 물었다. 50분 걸어야 한단다. '이런, 이건 아니잖아!' 다시 열차를 기다렸다. 우미노나카미치 역으로 갔다.
 
대부분 관광객이 입장한 터라 한산했다. 표를 발권하고 한국어로 안내된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 지도를 챙겼다. 입구에 안내원들이 있어 지도를 펼치고 사이토자키 부근에 입구가 없는지 확인했다. 안내원은 서쪽에서도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인도 잘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여행객일 뿐. 한숨을 내쉰 뒤,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버스 승강장이 보였다. 버스로 '꽃의 언덕'까지 직행할 계획이다.
 
버스가 승강장에 도착해 탑승했다. '어디 가냐'라고 버스 기사님이 묻는 것 같다. 지도를 펼쳐 들고 손가락으로 '꽃의 언덕'을 가리켰다. 그곳에 네모필라가 있다. '거긴 안 간다고 내리라'라는 손짓을 했다. 걸어가라는 뜻인 듯. 
 
우리가 '어린이 광장'에 도착하자 운전 기사님이 가까이 와, 형광펜으로 '꽃의 언덕'으로 가는 법을 지도에 표시해 주셨다. 꽃시계 기점, 오른쪽으로 가라는 뜻인 듯해 그 방향으로 향했다.

사실 기사님이 목적지까지 태워 주지 않아 섭섭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깊은 뜻이 있으셨던 같다. 운행이 끝난 차량에 차비 200엔을 받고 종착역인 '어린이 광장'에 하차시키는 건 아니라고 판단하신 듯하다.
 
루핀(Lupine) 이꽃은 달리 루피너스(Lupinus), ‘층층이부채꽃’으로도 불린다. ⓒ 최정선
 
가는 도중 루핀(Lupine) 군락지를 만났다. 이꽃은 달리 루피너스(Lupinus), 층층이부채꽃으로도 불린다. 골을 따라 나란히 핀 보라색 루핀은 색다른 미를 자아낸다. 보라, 분홍, 노란 꽃이 노루귀처럼 쫑긋 솟아 바람에 흔들린다.
  
노루귀처럼 쫑긋한 루핀 골을 따라 나란히 핀 보라색 루핀은 색다른 미를 자아낸다. 보라, 분홍, 노란 꽃이 노루귀처럼 쫑긋 솟아 바람에 흔들린다. ⓒ 최정선
 
드디어 꽃시계를 지나 '꽃의 언덕'에 왔다. 넓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그곳에 도착했다. 푸른빛을 잃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블루 눈동자들은 여전히 반짝였다.
 
블루 눈동자 네모필라
    
네모필라(Nemophila) 영어명은 베이비 블루아이(Baby Blue Eyes) 또는 인시그니스 블루(Insignis Blue)다. ⓒ 최정선
   
네모필라(학명 Nemophila Menziesii)는 지름 2∼3cm의 꽃으로 일년생 북미산 초본이다. 일본명은 유리당초(瑠璃唐草)다. 그 이외에 네모필라의 영어명이 있다. 이름을 읊자면 베이비 블루아이(Baby Blue Eyes) 또는 인시그니스 블루(Insignis Blue)다. 푸른빛이 얼마나 투명하길래 아기의 눈빛과 비교했을까.
 
이 작은 생명의 학명에서 유추해 보듯, Nemos(작은 숲)와 Phileo(사랑한다)가 조합된 그리스어다. 이름처럼 숲의 주변에 특히 많이 자란다. 작고 푸른 꽃이 무리 지어 연청빛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니 천사의 꽃임이 틀림없다. 이 작은 꽃을 자세히 보면 장타원형 새의 깃털 모양인 잎이 보인다.
 
꽃 피는 시기를 맞춰왔는데 못 보면 아쉬울 듯했다. 그래서 하루 더 머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의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망울들. 그들이 바다가 된다. 공원의 네모필라 사진이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지면서 2018년 230만 명이 공원을 찾았다. 올해의 통계엔 엄마와 나, 둘도 합산되겠지.
  
네모필라의 전설 푸른 불빛에 불타 죽은 여인의 자리에 핀 꽃이 네모필라다. ⓒ 최정선
  
네모필라에는 전설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신의 존재보다 소중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신의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날 신은 자신을 외면한 그들에게 사랑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제야 남자는 신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남자의 애절한 기도에 신의 마음이 움직였다. 다시 사랑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자 남자는 다시 신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신은 다시 격노해 남자의 목숨을 빼앗아 지옥에 던져버렸다.

홀로 남은 여자는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지옥으로 갔다. 그곳에서 맞닥뜨린 지옥의 문지기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지옥의 사자는 여자의 소원을 들어주기는커녕 푸른 불빛에 태워버린다. 여자가 불타 죽은 자리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이 네모필라다.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은 미군의 하카타 기지로, 과거 미군의 폭격 연습장이었다. 이곳을 1972년 일본으로 반환 후 국가가 앞장서 공원으로 조성했다. 대략 우리나라 올림픽 공원의 약 3배에 달하는 엄청난 넓이를 자랑한다.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15년의 노력이 있었고, 그 결과로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탈바꿈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건 당연지사.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해마다 다양한 꽃들을 선보이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 어린이 광장 공원은 광활한 레저 시설과 원더월드, 마린월드, 션사인 풀장, 동물원, 장미원, 관람차 등 엄청난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 최정선
 
공원은 사계절의 꽃들과 만날 수 있는 광활한 레저 시설과 원더월드, 마린월드, 션사인 풀장, 동물원, 장미원, 관람차 등 엄청난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또한 다양한 축제도 계절마다 펼쳐진다. 봄엔 꽃의 축제인 '우미노나카미치 플라워 피크닉', 초여름과 가을엔 '우미나카 꽃축제', 겨울엔 1만 자루의 촛불로 장식하는 '우미나카 크리스마스・촛불 나이트'가 펼쳐진다.
 
우미노나카미치 공원이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만큼, 곳곳에 입구가 별도로 있다. 특히 5분 거리엔 후쿠오카의 수족관 마린월드가 있어 다양한 볼거리도 더한다.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해변공원으로 온종일 시간을 보내도 될 만큼의 재미난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후쿠오카로 여행 중 네모필라가 아니었다면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의 매력을 몰랐을 것이다. 공원에서 자전거 대여가 가능하다. 자전거로 공원을 일주한다면 색다른 여행이 될 것이다. 또 하나의 팁은 자전거 대여 후, 자전거를 반납할 때 빌린 곳에 반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여행자를 위한 작은 배려가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꽃의 언덕에 핀 네모필라 후쿠오카로 여행 중 네모필라가 아니었다면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의 매력을 몰랐을 것이다. ⓒ 최정선
  
<여행 귀띔>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海の中道海浜公園)
 
• 주소 : 〒811-0321 후쿠오카시 히가시쿠 사이토자키 18-25(福岡市東区大字西戸崎 18-25)
• 전화 : 081-92-603-1111
• 이용시간 : 09:30-17:30
    * 11월~1월 17:00/12월 31일, 1월 1일, 2월의 첫번째 월·화요일 휴무
• 이용요금 : 어른 450円, 경로우대(65세 이상) 210円, 어린이 무료
• 자전거 렌탈(3시간) : 성인 400円, 어린이 250円(1일권 700円/400円)
 
• 가는 법
- 기차 : JR하카타 역에서 가시이(香椎) 탑승 후, 사이토자키(西戸崎) 환승해  '우미노나카미치', '사이토자키' 역 하차한다.
- 선박 : 시사이드 모모비치 선착장에서 페리로 15분 소요된다.
-버스 : 니시테츠 버스 21, 21B(시카노시마(志賀島) 방면) : 텐진 우체국 앞 18A 버스정류장에서 탑승 후 '우미노나카미치' 하차한다. 1시간 소요된다. 토요일 및 일요일, 공휴일엔 니시테츠버스 직행편 운행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생각없이 경주> 저자입니다.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규슈, #후쿠오카,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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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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