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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cm의 키에 30kg의 깡마른 몸에 움푹 패인 얼굴이 더욱 고통스러워 보인다. 치아는 모두 빠지고 닳아 위 아래 2개씩 4개만 남아 있다. 이은자씨는 “단 하루라도 고통을 잊고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160cm의 키에 30kg의 깡마른 몸에 움푹 패인 얼굴이 더욱 고통스러워 보인다. 치아는 모두 빠지고 닳아 위 아래 2개씩 4개만 남아 있다. 이은자씨는 “단 하루라도 고통을 잊고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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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기도드립니다. 이 늙고 병든 몸을 빨리 데려가 달라고. 그리고 이 고통 속에서 영원히 해방시켜 달라고." 

단칸방에 꼼짝없이 누워 있는 이은자(71·가명·충남 아산시 온화로)씨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조차 힘들다. 자신이 올해 일흔한 살이 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상처투성이인 이 세상과 질긴 인연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육신의 고통을 참으며 견디기에는 하루해가 너무 길다. 산목숨 어쩌지 못해 오늘도 간신히 밥 한술 떠넘긴다. 밥을 김에 싸서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영양 보충의 전부다. 

얼마 전 방 한쪽에 있던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출장 수리를 불렀으나 15년 이상 된 냉장고를 더 고쳐 쓸 수 없다는 진단만 받았다. 고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오래됐다. 이웃과 시민단체 등에서 가끔 방문해서 나눠주던 김치나 반찬들을 넣어 둘 곳조차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그의 밥상에 올릴 수 있는 반찬은 김과 간장이 전부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워 설거지하려다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른다. 올해는 여름이 빨리도 찾아오려나 보다. 5월 중순이 되기 전부터 한낮에는 여름 날씨와 다를 바 없이 후텁지근하다. 게다가 이제 냉장고까지 망가져 시원한 냉수 한 사발 마실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 서글프다. 이씨는 어쩌다 쪽방에 갇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됐을까.

조카를 등에 업고 다닌 초등학교, 지긋지긋한 가난

이은자씨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끔찍하게 가난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기 땅 한 평 없이 남의 농사일을 거들며 허드렛일로 가족을 부양했다. 

부모의 짐을 덜기 위해 일찍 타지로 나갔던 큰 언니가 어느 날 덜컥 젖먹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아이만 맡긴 채 다시 떠나버렸다. 그 아기는 고스란히 이씨에게 맡겨졌다. 당시 이씨의 나이는 16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당시 집안이 너무 가난해 이씨는 초등학교 진학이 늦어졌다. 게다가 조카의 양육까지 떠맡게 되면서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어 결국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한 채 학업을 중단했다. 집안 형편상 중학교 진학은 꿈조차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학업 포기도 빨랐다. 

2년의 세월이 더 흘렀으나 집안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씨는 더는 집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해 지인의 소개로 18살 때부터 삽교에서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1년 여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주인집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 한 푼 주지 않았다. 여기에 더는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한 이씨는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젊은 시절 오랜 객지 생활을 하는 동안 이씨는 한 남성을 만났다. 그러나 그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번째 남성을 만나 살림을 시작했지만 남편의 전처와 그 가족들과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 결국 이씨는 그들을 떠나 다시 혼자가 됐다.

조카의 사업실패로 동반 몰락 

이은자씨는 한 때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조카가 신용불량 상태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해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명의로 사업자등록증을 내줬다. 

이 과정에서 조카는 이씨의 이름을 도용해 사업 자금에 대한 무리한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사업은 얼마 못 가 실패했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이씨에게 떠맡겨졌다. 조카의 사업실패로 이씨는 통장을 압류당하고 최소한의 경제생활조차 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씨에게 큰 피해를 줬던 조카는 이후 더는 이모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이모를 짐스러워했다. 이 상황마저도 오히려 피해자인 이씨가 정리했다. 그는 조카와 언니에게 "더는 나로 인해 부담 갖지 말고 찾지도 말라"며 스스로 그들과 인연을 끊었다

이유 없이 찾아온 난치병

그러던 어느 날 이은자씨는 자신의 다리가 심하게 떨리는 현상을 발견했다. 사타구니 쪽으로 근육이 당기는 증상과 통증이 점점 더 심해져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신경외과를 찾아 CT 촬영을 했으나 역시 원인을 찾지 못하고 허리에 주사만 수차례 맞았다. 

이씨는 갈수록 다리 떨림과 고통이 커지자 천안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대학병원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며 MRI 촬영을 권했다. 그러나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 발길을 돌렸다. 

지금 이씨는 가만히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있는 것조차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다리 떨림 현상이 심해 화장실 갈 때도 중심을 잡기가 힘들다. 갈수록 떨림 현상이 심해져 대화를 하는 중에는 목소리까지 함께 떨려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이씨는 현재 보증금 300만 원에 월 30만 원짜리 쪽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병원 진료로 수중에 있던 돈을 모두 지출해 월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보증금이 모두 차감된 상황에서 5개월 치 월세가 밀려 150만 원의 빚마저 생겼다. 수급생계비와 기초연금을 받지만 이씨가 생활하기엔 턱없이 모자라 병원비 지출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단 하루만이라도 고통 없이 살 수만 있다면 

이은자씨가 가장 답답한 것은 병의 원인도 모른 채 병원비와 약값을 탕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을 먹어도 증세는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씨에겐 병원의 정밀진단과 치료가 절실하다. 

이씨는 오늘도 쪽방에 갇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픔 속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보내는 하루해는 너무 길다. 그렇게 긴 하루해를 보내고 맞은 밤은 더욱더 길고 고통스럽다.

덧붙이는 글 | <충남시사><교차로>는 삶이 벼랑 끝에 내몰린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응원하는 '희망나눔 1004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을 위한 1인1구좌(1004원) 기부운동에 시민여러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후원문의 : 041-555-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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