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너는 볼 수 없던 이야기' 미혼모 지원씨(가명, 20대)는 연인과 사이에서 낳은 아기 입양을 결정했다.
▲ "너는 볼 수 없던 이야기" 미혼모 지원씨(가명, 20대)는 연인과 사이에서 낳은 아기 입양을 결정했다.
ⓒ 이윤서

관련사진보기

 
지난 4월 21일 새벽 경북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미혼모 지원(가명, 20대)씨를 인터뷰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그녀로부터 어떠한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지원씨가 끝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헛걸음이었을까? 아니었다. 기다리는 동안 기자는 그녀가 이야기하지 못한 그 '침묵' 속에 많은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참 동안 그녀의 침묵을 복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가 겪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발걸음은 헛된 것이 아닌 옳은 것이었다.

만나기 전 카카오톡 메시지와 이메일로 풀어놓은 그녀의 이야기는 이랬다.

임신 사실 털어놨지만 돌아온 건 냉담한 반응

지원씨는 연인과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산부인과에서 임신 진단을 받고 바로 낙태를 생각했지만 충격에 빠져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되돌린 발걸음이 가져올 새로운 운명을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원씨는 다음 날부터 며칠간 고열에 시달리며 아팠다.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 가니 의사는 '신우신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바로 입원을 했지만 임신부였기 때문에 약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병이 잘 낫지 않아 입원 기간이 길어졌다. 결국 퇴원했을 때 아이는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자라 있었다. 

그렇다고 낳을 수는 없었다. 아이 아빠는 아직 학생 신분이었다. 결혼할 만한 형편도 아니었고 아이를 기를 만한 형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혼인도 하지 않은 채 임신했다는 사실 자체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이 일로 충격받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졌다. 

아이 아빠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임신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다니던 직장에도 철저히 비밀로 했다. 부모나 다른 가족뿐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 알릴 수 없었다. 주변의 조언이나 도움 없이 생전 처음 겪는 낯선 몸의 변화와 괴로움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망설임과 죄책감 속에서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낳는 것까지만 하자, 아이가 내 옆에 있으면 우리 중 단 한 명도 행복하지 못할 거야"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그런데도 뱃속에서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아이가 예쁘고 신기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지원씨는 출산을 맞이했다.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지원씨는 어렵게 입양을 결정했다. 

입양 숙려기간을 보내는 동안 '입양을 숙려하는' 그녀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그러나 '숙려'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곁에 두면서 애틋한 마음이 생겨났다. 모든 것을 자신에게 내맡긴 작은 생명이 주는 경이로움이 그녀를 변화시켰다. 친구, 직장 동료, 부모, 가족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 아이가 강력한 힘으로 지원씨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아이를 직접 기를 방법을 끝없이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자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아이 아빠와 의논했지만 돌아온 건 냉담한 반응이었다. "네가 뭔데 내 앞길을 막아?" 그는 입양 보내는 것만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결국 아이는 위탁 가정으로, 입양 부모에게로 떠나갔다. 그리고 몇 날 며칠 동안 눈물과 자책의 시간이 이어졌다.

베이비 박스를 생각했지만
 
시설에 맡겨진 아기들 지금 우리 사회에선 대다수 미혼모가 아기를 기르는 선택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기의 존재조차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 아기들은 어디에서 자라야 할 것인가. 입양 가정의 품속인가? 위탁가정이나 고아원 같은 시설인가?
▲ 시설에 맡겨진 아기들 지금 우리 사회에선 대다수 미혼모가 아기를 기르는 선택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기의 존재조차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 아기들은 어디에서 자라야 할 것인가. 입양 가정의 품속인가? 위탁가정이나 고아원 같은 시설인가?
ⓒ 이윤서(일러스트)

관련사진보기

 
인터뷰를 포기하고 돌아온 지 열흘 만에 지원씨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그녀는 그날 인터뷰에 응하지 못한 것을 사과했다. 그리고 이메일로 인터뷰 진행을 하길 원했다. 대면 인터뷰는 아니지만 이메일과 카카오톡 메시지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알게 될까 두려웠던 지원씨는 처음에 '베이비 박스를 고려했다'고 한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엄마가 지병이 있으셔서 충격받으면 위험하거든요."

그러나 베이비 박스로는 입양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미혼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지 않으면 아이를 입양할 수 없다( 물론 입양되고 나면 기록은 지워진다. 그러나 입양되지 못하면 그대로 남게 되고, 파양되면 미혼모의 가족관계등록부로 다시 돌아온다. 아이를 입양 보내기 위해 미혼모는 출산 사실이 언제라도 알려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녀는 결국 베이비박스를 선택하지 못했다.

현행 입양법은 입양을 결정한 미혼모가 '입양 숙려기간'이라는 이름으로 일정한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야 한다. 이 기간을 비롯하여 3주간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지원씨는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그녀는 스스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맸다. 

"한부모 가정 지원, 미혼모 지원을 알아보았는데 정말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받을 수 있더라고요. 육아 수당을 받아도 돈 쓰는 게 무서워 예방 접종조차 가기 힘든 현실이 올 것 같고, 아이 앞으로 보험 하나 들어줄 여유가 없을 것 같았어요."

찾아보고 알아볼수록 지원씨의 시야는 점점 흐려졌다. 캄캄한 암흑 속이었다고 할까? 지원씨는 이렇게 썼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다치거나 아플 때 과연 제가 달려갈 수 있을까? 돈 벌어야 하는 부담감에 사로잡힌 내가 과연 반차라도 쓸 수 있을까? '엄마 노릇'이라는 것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에 앞서 회사는 리스크가 큰 미혼모를 뽑아줄까? 이런 어려움 속에 나는 아이와 제대로 된 애착이라든가 교감을 할 수는 있을까? 

아직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려 아등바등하다가 다 잡지 못하고 어중간한 상태로 지칠대로 지치기만 한 제 모습이 보였어요.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 둘에게 행복한 삶을 줄까? 찾아보니 '모자 지원사업'에서 지원해주는 임대 주택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고 까다로운 조건들이 많았어요. 물론 미혼모에게 돌아오는 선입견과 편견에 가득한 시선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고요." 


이 모든 것은 아이를 입양 보내기 전 지원씨가 수없이 한 고민이다. 아이는 입양을 갔고, 아이의 작고 어여쁜 얼굴을 들여다보며 지냈던 추억은 이제 꿈속에서밖에 느낄 수 없다. 그러나 그 꿈은 지금도 그녀를 괴롭힌다. 

"그 뒤로 간혹 아이 꿈을 꿨어요. 그 꿈속은 평범했던 일상이었어요. 아이와 함께 낮잠도 자고 평화로웠어요. 너무도 평범하기만 할 뿐이라서, 꿈에서 깨면 현실이 더 지옥 같고 가슴 아파서 눈 뜨면 울었어요."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미혼모 복지가 나아질 수 있는가?

1862년에 쓰인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1부에는 팡틴이라는 여성이 나온다. 공장 직공이었던 팡틴은 톨로미에스라는 한량을 사랑했고 그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톨로미에스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그는 양육비는커녕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곤경에 처한 팡틴은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고 파리를 떠나 또 다른 공장에 취직했다. 그러나 얼마 후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져 공장에서 쫓겨났다. 팡틴은 아이를 맡긴 사람들에게 돈을 부치고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몸을 팔다가 결국 병으로 죽어간다. 

팡틴의 시대로부터 2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9년 한국에는 지원씨가 있다. 

지원씨가 아이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19세기 프랑스에서 팡틴이 처한 현실과 21세기 한국에서 지원씨가 겪는 고통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팡틴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그녀는 직장을 잃었다. 온갖 사회적 냉대 속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팡틴처럼 한국의 지원씨는 결국 '미혼모'라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다. 지원씨는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기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혹자는 말한다. "미혼모를 돕는 제도나 사람들이 있으니 지금은 다르지 않느냐고, 여건만 되면 대다수 미혼모가 자신의 자녀를 기를 거"라고.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한 달에 20만원의 양육비가 나오는 것'이 끝이다. 그것도 만 24세까지이며 의료비 지원은 전혀 없다. 그마저도 미혼모가 취업해 일정액 이상의 수입이 생기면 끊긴다.

미혼모들이 겪는 물리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제도 개선이 가장 절실하다. 우선 양육비를 위한 해결책으로 '미혼부 책임법'을 도입해야 한다. 여자가 임신하면 국가가 모든 책임을 지고 양육비를 충분하게 지급하고 국가가 남성한테 소송을 걸어서 그 돈을 받아내는 법이다. 현재 덴마크 등 유럽 국가에서는 '미혼부 책임법'이 시행되고 있다. 미혼모의 학업 보장, 취업 보장, 육아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 등도 이뤄져야 한다.

2012년 개정되었던 '입양 특례법' 이후 미혼모는 입양을 위해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 이름을 올려야 한다. 아이를 직접 키울 수도,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미혼모 입장에서 입양 특례법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입양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입양률도 줄었다. 양부모의 높은 소득 수준과 직업 등을 따져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입양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나서서 미혼모의 권익 보호와 입양을 원하는 가족들을 외면한 셈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그대로 둔 채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2018년 12월 '입양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과 '국제입양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이 개정안은 입양 과정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관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입양단체들은 "입양 단계마다 정부와 지자체의 심사를 받게 되면 중간에 입양을 포기하는 입양 가족이 늘게 되고 결국 시설에 맡겨지는 아이는 물론 유기되는 아이가 늘어난다"며 "가정에서 자라는 게 최선인데 남 의원 법안은 오히려 시설 양육을 권장하고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

한국사회의 혈연중심주의는 입양 가족도 소수자로 살도록 한다. 이는 한국에 공개 입양보다 비밀 입양이 많은 이유이며, 해외 입양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입양법 개정안이 가져올 결과는 무엇일까? 

미혼모에게 경제적, 제도적 지원만 하면 모성 본능 때문에 아이를 기를 수 있을까? 그렇게 피가 진하다면 톨로미에스는 왜 자기 아이를 임신한 팡틴을 버리고 도망쳤을까?

지원씨의 고통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그녀에게 아이를 기르라고 권하거나 아이를 왜 기르지 않았냐고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지원씨의 이야기는 지원씨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진정 미혼모가 아이를 기를 수 없는 현실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다. 

또 하나 매우 중요한 질문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대다수 미혼모가 아이를 기르는 선택을 하지 못한다. 아이의 존재를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은 어디에서 자라야 할 것인가. 입양 가정의 품 속인가? 위탁가정이나 보육원 같은 시설인가? 이러한 질문에 혹자는 사회 인식이 바뀌어 미혼모를 지원하는 법과 제도가 자연스럽게 생겨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답한다. 

몇 년이면 기다릴 만한가? 10년은 너무 긴가? 5년이면 괜찮은가? 3년이면 기다릴 만한가? 세 살까지 평생 할 효도를 다한다는 말이 있다. 거꾸로 뒤집으면 3살까지 평생 할 부모노릇의 대부분을 다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공교육, 청소년 독서, 대안 학교, 미혼모 문제,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