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 티캐스트


우리는 '가족'과 '가정'을 줄곧 '편안함', '친숙함'이라는 단어와 연결시키곤 한다. 가족을 익숙하고 이미 잘 알고 있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가족만큼 가깝지만 동시에 낯선 사람도 없다.

가령 나는 서른 살 이전 엄마의 삶이 어땠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직접 옆에서 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빠나 형도 나의 대학시절과 직장 생활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은 없다. 스무 살 이후로 나는 집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서울살이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혹은 명절에 친척들과 모여 부모님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때면 서로가 놀랄 때가 종종 있다. 그런 일을 겪었냐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나는 '경험이 곧 그 사람을 만든다'라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몰랐던 상대방의 지난 경험과 생각, 감정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새롭게 보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령 나와 형은 어린 시절 엄마가 얼마나 엄격한 사람이었는지를 추억하며 농담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시간이 엄마에게 후회로 남아 있었다는 점이었다.

엄마도 부모가 된 게 처음이었고 우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때로는 화를 내거나 엄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엄격했던 엄마'를 두고 더 이상 농담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가족의 새로운 면을 알고 관계가 변화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사람들은 왜 가족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까?
 
하지만 상황이 늘 이상적으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가족, 특히 부모들은 때로 자녀의 어떤 부분은 끝까지 수용하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성소수자이다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밝히는 경우다. 같은 성소수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봐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커밍아웃으로 뽑히는 것이 바로 '부모님에게 하는 커밍아웃'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부모님이 시스젠더·이성애자 외에 다른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경우 혹은 이미 편견과 혐오를 내재하고 있는 경우. 심지어 성소수자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들도 '내 자식이 그럴 리는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왜 자녀가 성소수자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모님들에게는 그토록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을까.
  
 2019년 5월 10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성소수자 부모모임편 중 한 장면

2019년 5월 10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성소수자 부모모임편 중 한 장면 ⓒ KBS

 
지난 5월 10일 방송된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거리의 만찬>은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들을 게스트로 초대했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님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2013년 네이버 카페에서 모임을 시작해 현재는 독립적인 단체로 성장했다. 매월 진행하는 정기 모임 외에도 성소수자인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안내서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매년 각 지역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에 방문하면 부스를 열고 프리허그 행사를 하고 있는 부모님들을 매번 만나볼 수 있다. 어지간한 단체의 상근 활동가보다 더욱 활발히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부모님들은 타고난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방송에도 언급됐듯 이 부모님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거리의 만찬> 성소수자 부모모임 편이 지닌 가치

심리상담가이자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지인님은 처음 아들의 커밍아웃을 접했을 때 공포심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성소수자에 대해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들이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밝혔을 때 이를 부정했다고 전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부모님들 역시도 TV에서 스치듯이 본 성소수자에 대한 자극적인 묘사나 인터넷에 퍼져있는 부정확한 정보, 희화화된 묘사 때문에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나는 이 같은 부모님들의 진솔한 고백이 '시작은 어려워도 결국 누구든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사실을 짚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들이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성소수자인 가족'이 낯설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소수자' 자체가 매우 낯선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2019년 5월 10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성소수자 부모모임편 중 한 장면

2019년 5월 10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성소수자 부모모임편 중 한 장면 ⓒ KBS

 
'양성애자'나 '트랜스젠더'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사람들도 성소수자들의 삶과 일상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거나 이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이 별로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도 부재하고 미디어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는 성소수자를 '일탈적인 존재', 즉 일상을 상상할 수 없는 존재로 흔히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없었던 지인님도 막상 커밍아웃을 마주했을 때는 아들이 '음지에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에서 <거리의 만찬> 성소수자 부모모임편의 가치는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이 방송은 성소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했다. 가령 장서연 변호사는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이성애자와 '다를' 뿐이며 가치중립적인 개념임을 설명했다. 여기에 <거리의 만찬>은 성소수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당사자의 말을 통해서 전달하기도 했다. 즉 <거리의 만찬>은 단순히 성소수자라는 주제를 지상파에서 다룬 것뿐만 아니라, 가족의 구성원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사람들이 성소수자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야할지 모범적이고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했다.

누군가는 '가족 문제'는 사적인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 문제에 사회적으로 형성된 편견과 혐오가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이미 공동체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방송된 <거리의 만찬>은 공영방송이 지닌 의무도 제대로 수행했다. 

평등하게 사랑받고 소중한 존재로 여겨질 세상을 꿈꾸며 

나는 누군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가치를 질문하면 '누구도 가보지 않은 여정에 용감히 첫 발걸음을 뗀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구성원들이 성소수자 자녀를 둔 첫 번째 부모님들은 아닐 것이다. 다만 모임의 부모님들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운동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성소수자 자녀를 둔 다른 부모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길임을 함께 알렸다.

방송에 등장한 위니님의 말처럼 자녀를 '바라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야말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이 자리하는 관계가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히려 방송에 출연한 성소수자들의 말처럼,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삶은 마치 집에서도 화장을 하고 사는 것과 같거나 늘 연기를 하며 지내는 것과 다름이 없다.

때문에 나는 혐오세력이 말하는 '화목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오히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부모님들이 제대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에 방송된 <거리의 만찬>에 부모모임이 이룬 그러한 성과들이 제대로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부모모임'과 관련된 개인적인 사연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퀴어문화축제의 현장에서 프리허그를 하는 부모님들을 봐왔지만 꽤 오랜 시간 그 근처에 가는 것을 주저했다. 낯설기도 낯설었지만 마음이 회의적이었다. 프리허그로 행복한 건 그 순간뿐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안아주는 것 같은 그 포옹을 받아보아도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면 결국 나의 성적 지향에 관한 이야기는 수면 아래에 잠겨있을 것이니까. 아마 포옹을 받은 순간과 집에선 여전히 성소수자로서는 내가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을 비교하며 슬퍼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바뀐 것은 지난해 퀴어문화축제에서 얼떨결에 부모님들의 프리허그를 받은 후였다.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면서도 부모님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나는 그때 처음 느꼈다. 존재만으로도 가까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음을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도 느낀 첫 순간이었다.

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란 생각과 달리 그 따스한 마음은 내게 오래오래 남았다. 이런 사랑이 모두에게 보편적인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의욕을 가지게 해주었다. 나는 <거리의 만찬> 성소수자 부모모임편을 감상한 많은 사람들도 같은 감정을 느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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