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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로 만나보는 일차방정식'

학습지에 적힌 오늘 수업 주제다. 전체 수업 나눔의 날이었다. 혁신중학교 6년차 정아(가명) 선생님의 공개수업 날이다. 학교의 전체 교사가 정아샘이 수업하는 교실에 와 참관을 한다. 참관이 끝나면 그날 수업에 대해 서로 배운 점을 나누는 회의를 한 시간 정도 한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6년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온 선생님의 수업이라 모두 관심 있게 참관하러 들어왔다.

학생들은 책의 발췌본을 읽었고, 읽은 내용을 토대로 수학용어와 일차방정식의 해를 스스로 구한다. 교실에는 종이 넘기는 소리, 사각사각 수식을 적는 소리가 났다. 읽다가 모르면 친구들에게 질문을 했다. 몇 학생이 발표해 전체 공유를 하고 선생님이 거들어 주기도 했다.
어느 날 수학이 어렵다며 힘들어 하던 동생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일차방정식은 도대체 왜 배워? 어떻게 푸는 거야?"

이 책 <수학으로 힐링하기, 7. 일차방정식>을 읽은 여러분은 어떻게 답해주시겠습니까? 자상하고 친절하게 설명할 말을 적어 보세요.
 
이날 수업의 마무리는 배운 내용을 글쓰기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자상하고 친절하게'라는 디테일에는 샘이 바라는 아이들 간의 관계의 태도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교사의 따뜻하고 속 깊은 내면이 그대로 느껴지는 발문이었다. 아이들 글 쓴 것을 관찰하니 대개는 왜라는 질문은 피해갔고 푸는 방법에 대한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 아이들의 수학에 대한 인식의 단면이 아닐까. '왜' 보다는 '어떻게'에 집중하는 수학에 익숙한 모습.

정아샘은 경력이 20년이 넘지만 문제 풀이 방법에 집중하는 아이들과 입시 현실, 교사의 철학 사이에서 늘 고민했다. 나는 괴리감에 맞닥뜨릴 때마다 회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문제로 끌어안아 최선 아니면 차선이라도 찾아내려고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정아샘이 존경스러웠고 그래서 더 좋았다.
일차 방정식은 인생에서 많은 일을 겪으면서 많이 다치고 힘들고 또는 좋고 기쁘면서 바뀌어 버린 근본의 '나'를 찾을 수 있게 해줘. 너가 너무 좋아서 기쁨이 더해졌다면 더하기를 너의 사랑이 배가 됐다면 곱하기를. 너의 인생의 짐을 나누어 가질 사람을 찾는다면 나누기를. 너가 가장 신뢰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무언 갈 잃는다면 빼기를 사용해. 만약 너가 삶을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많이 상한 '날' 찾고 싶다면 근본의 나인 x에 대입해줄 '수'를 찾고, 너의 속에 숨어있는 걸 찾으려면 너를 되돌아보길 바래. (1학년 3반 성*현 학생 학습지)
 
정아샘은 학생이 책을 통해 자신과 만나게 연결 짓고, 한 학생의 의견이 다른 학생과 공유되면서 학생끼리 연결 짓고, 학생과 선생님이 연결되는 장면을 만들었다. 혁신학교의 배움의 공동체 수업에서 얘기하는 '학생-교재, 학생-학생, 학생-교사로 연결 짓고 세상과 만나게 해야 한다'는 원리를 구현한 수업이다. 정수가 녹아있는 수업. 수업은 일차방정식을 스토리텔링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잘 몰라. 그래서 '나 자신'을 미지수라고 했어.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이 많이 변해서 이런 모습이 되었다고 나오잖아?"

  3(x-5)/2 =9
  
나 자신을 미지수x 라고 했을 때의 일차방정식 수식
 나 자신을 미지수x 라고 했을 때의 일차방정식 수식
ⓒ 최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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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천천히 수식을 칠판에 적고 질문했다.

정아샘= "2로 나눈 것은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 표현하는 걸까?"

"주식이 반 토막 났어요."
"비트 코인을 했다가 망했어요."
"몸무게가 반으로 줄었나?"

정아샘= "그럴 수도 있겠네. 선생님의 경우에는 나 자신이 나이 들어가면서 잃어버린 것, 결혼해서 3배나 무거워진 인생의 짐을 나누어질 소중한 사람을 만난 걸 표현했어. 둘이 짐을 나누며 사니까 많이 든든해." 

자기들 얘기와는 다른 방향의 말에 학생들은 진지해졌다.

3(x-5)/2 -1 = 9-1
 
 좌변과 우변에서 1을 뺀 수식의 의미가 무엇일까?
  좌변과 우변에서 1을 뺀 수식의 의미가 무엇일까?
ⓒ 최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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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마이너스 1은..."

좌변과 우변에서 1을 뺀 수식을 적고 나서 입을 떼려다 정아샘은 잠시 멈추었다. 정적. 정아샘 눈이 흔들렸다. 작은 헛기침을 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소중한 사람이 조만간 떠나갈... 듯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이런~ 수업 보다가 울기는 처음이네. 옆을 보니 수석샘이 뒤를 돌아 천정을 쳐다보고 계셨다. 학생들은 자세한 사연을 모를 텐데도 정아샘의 눈빛과 분위기 때문인지 교실은 잠시 숙연했다.

정아샘에게 소중한 사람이란 남편이다. 최근 뇌암 판정을 받았고 수술 후 1년 정도 더 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내게 담담히 전해줬었다. 정아샘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논하곤 했다. 자신이 속한 세상의 어느 것이라도 의지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그 모습이 참 부럽고 좋아 보였는데 그랬던 사람을 떠나보낼 듯하다는 마음이 어떤 것일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수업 흐름은 잔잔했지만 심연에는 파도가 굽이치고 있었다.
다른 직업과 달리 교사는 개인 생활과 공적 생활이 교차하는 위험한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훌륭한 교사는 공과 사가 만나는 교차지역에 서 있어야 한다.
 
교사들의 교사라 불리는 파커 J. 파머가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말했다. 교사로서 정체성에 대한 사유가 깊어지면서부터 자아를 수업에서 드러내며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일차방정식과 함께 드러내는 것, 이것이 정아샘을 훌륭한 교사이게 한다. 우리는 마음의 상처를 줄이기 위해 벽을 쌓고 교사라는 역할을 연기할 때가 적지 않다. 학생들과 가까워지려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 관계가 깊어지면 기대와 달리 학생들은 교사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듯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있다.  교사의 사생활이 가십거리가 돼 소문으로 떠돌기도 한다.

가까워지려다 상처받을까 봐 교사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기도 한다. 이런 자기 보호 행동이 오히려 자아를 소외시켜 교사들의 인생을 더욱 각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본래의 나를 찾아보는 수학 수업, 그 속에서 학생과 선생님의 자아가 서로 만나는 시간. 방정식에서 왜 값을 찾으려고 하는지 본질을 생각해보는 특별한 시간은 혁신학교에서 지지받는 수업이다.

샘이 바라는 수업은 '수학이 입시의 도구이기보다 인간이 갖추어야 할 교양으로 자신의 삶에 배어 있었으면'하는 것이라 했다. 본래의 나 따위 찾느라 한 시간을 다 쓰면 15분 만에 할 거를 45분 동안 한다며 욕을 먹는다. 이날 수업에서 단 두 개의 문제를 풀었다. 이러면 '혁신학교는 애들 공부를 안 시킨다'며 욕을 먹는다.

굳이 자신의 힘든 마음을 드러낼 필요 없이 문제 푸는 방법만 잘 알려주면 욕을 먹지 않는다. 실제로 정아샘은 전임지에서 수업 잘 하는 교사로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거기에서 정아샘의 수학 교사로서 정체성은 교실에서 길을 잃어 서성였고 알 수 없이 괴로워했다.

정아샘이 잘 하는 대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하고 학생들은 가능한 많은 연습문제를 푸는 '공부 많이 시키는' 수학 수업을 했다면 앞에서 본 학생 글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이런 글쓰기를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은 수학 수업에서 시간 낭비일까?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올릴 생각입니다.


태그:#혁신학교, #수학수업, #공부많이시키는 수학수업, #수학은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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