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8년 어느 날, 프랑스의 한 남성이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뇌에 이른바 '되돌릴 수 없는' 상해를 입고, 말하자면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 그때부터 이 남성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존엄사에 관한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 남성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이름은 뱅상 랑베르(Vincent Lambert). 사고 당시 31세의 젊은이였으나, 지금은 42세로 중년의 문턱에 들어서는 나이가 됐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남성은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한가닥 튜브를 통해 공급되는 음식물과 물로 생명을 연장해야만 했다.
 
2015년 6월 5일 뱅상 랑베르의 모습.
 2015년 6월 5일 뱅상 랑베르의 모습.
ⓒ "나는 뱅상을 지지한다" 유튜브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병세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2013년 4월 10일, 이 남성이 입원해 있던 랭스 대학병원(CHU de Reims) 의료진은 그의 부인과 논의를 거쳐 치료의 중단을 결정한다(부인 라셸 랑베르는 2016년 그의 법률적 보호자가 된다). 

이 결정은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방식은 음식물과 물의 공급을 중단하는 것. 뱅상의 부모는 즉각 반발했다. 샬롱 앙 샹파뉴 행정법원에 병원 측을 제소했고, 승소했다. 부인 외에 부모 형제와의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 병원 측 패소의 주요한 근거가 됐다. 

하지만 그 기간은 짧았다. 2013년 9월, 병원 측은 다시 소송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가족들로부터 추천서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4년 1월 11일, 이 환자에게 음식물과 물의 공급을 중단해도 좋다는 판결이 내려진다.

그럼에도 병원 측은 튜브를 즉시 제거할 수 없었다. 그의 부모가 유럽인권법원(CEDH)에 법적 판단을 요구했기 때문. 인권문제에 관한 한, 유럽인권법원의 결정은 유럽인권협약에 따라 프랑스 내에서 그대로 수용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원 또한 2015년 6월 5일, 이 환자에 대한 치료중단이 유럽 인권협약의 제2조 항목을 위배하지 않는다고 결정함으로써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준다. 인위적인 목숨 연장이 적절치 못한 치료, 즉 '치료집착'(therapeutic obstinacy)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이 판시의 근거가 됐다.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유럽인권법원→유엔국제장애인권익위원회, 반전의 연속

재판이 길어지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 또한 가열됐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가족이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가족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표출했다. 부모와 한 명의 여자 형제, 그리고 또 한 명의 이복형제는 이 남성의 죽음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반면, 그의 부인과 다른 다섯 형제자매 그리고 한 명의 조카는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일방의 견해가 비등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2015년 판결 직후 8만 명 이상이 치료를 계속하기 위한 '르젠느(lejeunne) 재단'의 서명에 동참하는 등 찬반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법적 판단기관을 바꿔가면서 재판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여기에는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었던 뱅상 부모의 집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마침내 지난 4월 24일,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의 최종결정이 내려졌다. 병원의 의료진은 이제 튜브를 제거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뱅상의 부모는 다시 한번 유럽인권법원에 호소했다. 치료중단의 집행을 정지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럽인권법원은 단호했다.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부모의 호소를 기각했다. 최고행정재판소의 결정이 있은 지 불과 5일만인 지난 4월 29일, 기각이 결정되면서 이 문제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다는 법원의 의지가 발동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더 이상의 다른 결정은 없을 것 같았다. 프랑스 언론들은 최종결정을 기정사실화했다. 이제 병원 측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치료를 중단할지의 문제만 남은 듯 보였다.

그런데 또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유엔국제장애인권익위원회가 개입했다. 지난 4일 이 위원회는 프랑스에 치료중단을 시행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임시조치를 발표했다. 뱅상 부모의 노력이 받아들여진 상황이다. 이 위원회 회원국인 프랑스는 6개월 이내에 요청에 대응해야 한다. 다시 뱅상의 부모는 시간을 벌었다.

물론 유엔장애인권익위원회가 어떤 최종결정을 내리더라도 프랑스가 이에 따를지는 미지수다. 유럽인권법원과 유엔장애인권익위원회의 판단이 서로 다를 경우, 프랑스로서는 유럽인권법원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유럽인권법원의 결정은 비록 프랑스에만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유사한 사례가 없는 이 사건의 결정은 유럽인권협약의 회원국인 많은 유럽국가들의 향후 유사한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이 유럽인권법원의 결정에 초미의 관심사를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럽에서 유엔장애인권익위원회의 영향력은 유럽인권법원의 그것에 비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뱅상의 치료중단 찬성-반대 논리 
 
랭스 대학병원의 모습.
 랭스 대학병원의 모습.
ⓒ wiki commons

관련사진보기

 
뱅상의 치료중단을 주장하는 측의 입장은 간명하다. 지금의 치료연장이 환자에 대한 치료학대(therapeutic harrassment)에 속한다는 것이다. '비이성적 집착'이며 환자가 원하지 않는 치료를 계속함으로써 환자를 괴롭히고 있다는 보고 있다. 프랑스 법원과 유럽인권법원이 치료중단을 결정한 것도 바로 이에 근거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뱅상의 조카인 프랑소와즈 뱅상(Françoise Vincent)의 증언이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정신과 간호사이기도 했던 자기 삼촌이 평소 만약 자신이 이와 유사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자신을 보내달라고 얘기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뱅상이 자기 부모와는 많은 얘기를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눴다는 것이다. 

치료중단을 주장하는 측의 의견에는 물론 치료비의 문제, 그의 부인이 겪어야 할 정신적·물리적 고통 등을 염두에 둔 견해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가장 커다란 논거는 바로 뱅상이 평소 원했던 바대로 그에게 '존엄한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뱅상의 경우, 흔히 말하는 존엄사와는 분명 다르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논거가 되고 있다. 뱅상은 지금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장애상태에 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

심각하거나 혹은 퇴행성인 질병도 없고, 불치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그저 의식이 마비된 의식장애 상태라는 견해다. 스스로 호흡을 하며 심장도 스스로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을 자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침을 삼키고 있지만, 다만 음식을 스스로 먹지 못하는 상태, 즉 신체적 장애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뱅상이 지금 필요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랭스병원의 병실에 갇혀 있는 상태로는 적절한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뱅상 부모 측의 주장으로는 이미 여러 기관에서 그들 돌보겠다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의식장애 상태 분야와 관련된 70여 명의 전문 의사들이 뱅상의 경우 치료집착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며 다른 장애상태에 있는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정작 환자 본인으로부터 어떠한 명시적 입장이 없다는 점 또한 논쟁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뱅상의 조카인 프랑소와즈 뱅상을 비롯해 치료의 중단을 요구하는 가족들은 그가 평소에 자신의 지론을 얘기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서상의 근거들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게다가 지난 4월 24일 프랑스 최고행정 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지던 바로 그날, 한 언론으로부터 프랑스 서부 지역에서 한 여성이 27년 만에 혼수상태 깨어난 사례가 보도됐다. 뱅상의 죽음과 관련한 찬반 양측의 논쟁은 가열에 가열을 더하고 있는 양상이다.

존엄한 죽음인가, 아사인가 
 
뱅상의 어머니.
 뱅상의 어머니.
ⓒ Claude Truong-Ngoc / Wiki

관련사진보기

 
뱅상을 죽음으로 데려가는 방식 또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법률상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재판과정에서 뱅상의 부모는 뱅상을 국외로 데려가지 못하도록 요청했고 법원은 이를 수용했다. 이는 혹여 뱅상의 부인이 뱅상을 안락사 허용국가인 벨기에로 데려가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프랑스에서 뱅상을 죽음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음식물과 물의 공급 튜브를 제거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즉, 그를 아사시키는 것인데 이것이 또 다른 논쟁거리를 만들고 있다.

이 방식과 관련, 랭스 대학병원 측은 튜브를 제거하면서 다량의 진정제를 지속 투입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방식은 현재 프랑스에서 불법이 아니다. 2005년 프랑스는 이른바 레오네띠(Leonetti) 법률이라는 것을 제정했고, 2016년 법률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이 법은 "비이성적 고집으로 인한 의학적 치료의 연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또한 "의학적 치료가 무용하거나 부적절하거나 인위적 생명연장 외에 다른 효과가 없다고 판단될 때 치료를 미루거나 중단할 수 있다"라고 못박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랭스 대학병원 측이 생각하고 있는 음식물 및 물 공급중단 방식은 프랑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정서다. 의식이 있는 사람을 굶겨서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생각이 많은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갖게 만들고 있어 보인다. 게다가 이를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입장까지 생각한다면 비록 제3자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이를 감내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수용하는 쪽으로 결정이 난다고 가정하면, 그를 편안하게 보낼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다. 교회의 입장은 어떨까?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경우 통상 극히 제한적으로 치료의 중단을 허용한다. 즉, 치료가 무용하거나 극도의 어려움을 가져올 때, 그리고 환자가 죽음의 말기에 이르렀을 때로 치료 중단을 국한시키고 있다.

이 점에서 뱅상의 치료중단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프랑스 가톨릭 교회가 뱅상의 구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사실상 거의 방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교회의 주교와 대주교들은 어떠한 명시적 입장표명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 가톨릭 일간지인 <라 노바 부솔라 꼬띠디아나>(La nuova Bussola Quotidiana)의 리까르도 까스시올리 편집장이 "죽음의 문화가 교회 안에까지 깊이 침투한 것에 대해 근심과 우려를 표명한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그만큼 프랑스 내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논쟁의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라 볼 수 있고, 특히 죽음과 삶 그 자체보다는 삶의 질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오늘날 프랑스 사회의 풍조를 교회가 완전히 외면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기도 할 수 있다.

이달 4일 유엔장애인권익위원회가 다시 이 문제에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이 일은 앞으로 최종적인 결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비들을 남겨두고 있어 보인다. 프랑스로서는 이러한 사례가 처음인 만큼 논쟁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일이 프랑스만의 사례가 될까? 많은 유럽의 국가들이 사건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앞다퉈 보도하는 데에는, 물론 유럽인권법원의 판례가 그들 국가의 향후 법적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도 언젠가는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지금은 막연하지만 우리 또한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사례 중 하나는 아닐까?
 
[참고자료] 유사사건과 관련한 유럽인권법원의 몇가지 판례들
유럽인권법원의 판례 중 뱅상 랑베르 사건과 가장 유사했던 것은 이탈리아인 엘루아나 엔글라로(Eluana Englaro)와 관련한 것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법정은 교통사고 후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엘루아나에 대해 음식물과 물 공급튜브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몇몇 친지들이 이를 유럽인권법원에 항소했으나 그들이 직접적인 관계자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했다.

일각에서는 친지들의 요구사항을 분석하길 거절했다는 이유로 유럽인권법원을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같은 이유로 스페인인 라몬 삼뻬드로(Ramon Sampedro)에 대해선 존엄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또한, 영국인 다이앤 프리티(Diane Pretty)에 대해서는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안락사할 경우 형사적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는 해당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 이를 견디기 어려웠다는 점이 참작됐다.

도움을 받아 자살하기를 원했던 한 스위스인에 대해서 유럽인권법원은 의학적 처방을 받기 위해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사례도 있다. 사지가 마비된 한 독일인의 경우에 대해서는 이 건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도록 독일법원에 요구하기도 했다.

[참고 기사 및 문헌] 

https://www.liberation.fr/france/2019/05/01/vincent-lambert-vers-la-fin_1724296
http://www.lefigaro.fr/actualite-france/rebondissement-dans-l-affaire-vincent-lambert-20190503
https://elpais.com/sociedad/2019/04/30/actualidad/1556654705_642809.html
https://elpais.com/sociedad/2019/05/02/actualidad/1556827853_183060.html
https://fr.wikipedia.org/wiki/Affaire_Vincent_Lambert
https://eclj.org/euthanasia/un/euthanasia-of-vincent-lambert-new-international-proceedings-give-hope
http://www.ncregister.com/blog/edward-pentin/church-leaders-mostly-silent-in-face-of-rulings-against-alfie-evans-vincent

태그:#존엄사, #뱅상랑베르 , #유럽인권법원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범한 시민, 노빠라고 불렸던, 지금은 문빠라 불릴만한...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