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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일학년 첫 지리 시간 수업 때였다. 선생님께서는 첫 시간이라 본격적 수업을 진행하기 그러셨는지 재미삼아 세계 지리 테스트나 하겠다면서, 유럽의 소국(조그만 나라)을 아는 대로 대보라고 하셨다.

애들이 주뼛주뼛 하면서 베네룩스 삼국 중 몇 개 나라를 댔던 것 같다. 선생님이 그보다 더 작은 나라를 대보라고 했는데, 이때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숨도 안 쉬고 "안도라-모나코-리히텐슈타인-산마리노-바티칸-몰타"를 일사천리로 몰아붙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세계지도를 보고 나라와 그 나라 수도 이름을 알아보는 것이 최고의 하비(?)였는데 이럴 때 실력 발휘를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선생님께서 굉장히 신기하셨는지 교무실에 가서 담임 선생님께 내 얘기를 했나 보다. 담임 선생님이 그 후 나한테 그 얘기를 다시 꺼내셨다. "그런데 000! 이담에 좋은 대학을 가려면 영어, 수학을 잘 해야지 그런 것을 아는 건 크게 소용이 안 된단다." 하셨다.

당시에도 그 말씀이 지당한 말씀이라고 생각했던 게 나 역시 그런 건 공부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하나의 오락거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즈음 나는 단순히 나라와 도시 이름을 아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김찬삼(1926~2003) 여행기 등 여기저기서 읽은 세계여행기, 그리고 외항 선원인 사촌 형님한테 주워들은 얘기를 갖고 내가 마치 세계 여행을 떠나간 것 같이 여행기를 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니 다 커서까지도 내가 과연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을까, 자동차를 운전하며 어디를 여행 다닐 수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저 멀리 외국여행을 나갈 수 있을까 등의 일을 다소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세계지도를 보고 여행을 해보는 상상의 나래를 펴긴 했어도 실제로 그런 여행을 한다는 것은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더구나 나는 한국문학을 전공했기에 외국에 나가서 공부할 일도 없었다. 그런 내가 마흔 살이 훌쩍 넘어 가족들을 이끌고 해외로 나갈 기회를 갖게 됐다. 다름 아니라 대학에 재직하면서 안식년을 갖게 된 것이 그 계기가 됐다.

나는 교수 생활을 하면서 두 번의 안식년을 가졌다. 한번은 미국 유타에서고 또 다른 한번은 체코 프라하에서였다. 그 곳으로 가게 된 데에도 나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자 한다. 어쨌든 나는 한번은 미주 대륙에서 또 한 번은 유럽 대륙에 살면서 국문과 선생 치고는 제법 해외여행을 할 기회를 가졌다. 아닌 게 아니라 안식년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오니 몇 명의 교수들이 그냥 지나가는 말이기는 하지만 '왜 여행기를 써보지 않느냐'고 묻기는 했다.

그러나 여행기를 쓰고 싶을 때마다 여러모로 망설여졌다. 영국의 시인 존 던(John Donne, 1572~1631)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행하기 어려운 일 들 중의 하나에, 외국에 갔다 온 사람의 입 다물기가 있다." 노동자 시인 백무산의 시에는 "군대 삼 년 마치면/십 년은 군대시절 애기를 한다/ 몇 달 외국 여행이라도 다녀왔다면/ 허구헌날 입만 열었다 하면 그놈의 얘기다"(「노동의 추억」 중에서)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역시 마음에 걸렸다. 요즘 전문 여행가의 서적도 많고 헤아릴 수 없는 여행기 책이 나오는데 그 대열에 내가 낀다는 것 자체가 별 실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더욱이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여행을 많이 다닌 신영복 선생의 말도 여행기를 쓰고 싶은 맘에 결정적인 제동을 걸었다. 그는 여행을 할 때 항상 자신을 따라 다녔던 말이 "잘난 척 단정(斷定)하지 말라"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는 일 없이 보기만 하고 무엇을 단정하는 것 자체가 무엄한 소행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 여행 중 보고 생각한 내용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쿵저러쿵 하고 떠들었는데, 얼마 안 가서 잘못 된 또는 무식한 얘기였음임이 들통이 날 때가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내 나름대로 여기저기 메모해 둔 것들이 아까워서 한번 정리를 해보고는 싶었던 마음을 늘 가지고 있던 차, 여행하면서 갖게 된 실수담으로 여행기를 꾸며보면 나만의 여행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원래가 사람이 웃기는 일면도 있지만 소심하기도 하고 또 엄청 덜렁대는 스타일이라, 익숙하지 못한 외국어로 낯선 외국의 환경에 부딪치다 보니 여행지마다 크고 작은 실수가 연속적으로 있었다. 그런데 실수의 강도가 높았던 여행일수록 그 여행지가 각인되고 여행지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는 체험을 했다. 또 이런 실수담 중심으로 얘기해야 끝까지 결정적 실수를 하지 않고 여행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방어기제' 심리도 작용했다.

어떤 이는 여행 중에 내가 겪은 실수담 또는 그와 유사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일부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겠지만 또 어떤 부분은 사람이 왜 그리 변변치 못한 가하고 혀를 끌끌 차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나만의 여행기를 쓰려다 보니 이런 방식을 택해보게 됐는데, 실수에서 빚어지는 나에 대한 연민, 황당함 또 그로 인한 유머를 내 스스로도 즐겨보고 싶었다.

특히 어떤 페미니스트가 쓴 글의 한 구절이 이 여행기를 쓰게 할 용기를 줬다. "웃기는 남자는 좋은 남자다. 스스로를 낮추어 자신을 웃음의 재료로 삼을 수 있는 건 자신감의 증거이자 권위의 반대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뭣보다도 이 여행기를 쓰는 데 용기를 준 사람은 아내인데, 앞으로 그녀는 내 실수담의 훌륭한 조연을 맡게 된다.

태그:#해외여행 실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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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소재한 피사로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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