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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죽음의 방식이 삶을 지속해야햘 사람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기도한다.
 한 죽음의 방식이 삶을 지속해야햘 사람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기도한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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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멀지 않은 작가분이 지인 작가들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작업실로 모인 작가들에게 말했습니다.

"난 이렇게 홀로 내 작업만을 하면서 살다가 죽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것에는 재미가 빠져있더군요. 죽을 때까지 더 재미있게 사는 법이 없을까 생각해보았더니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작가들과 함께하는 일이겠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재미있게 살자고 불렀습니다."

함께한 작가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삶이 'Fun(펀)'해야 마음이 편하지요. 마음이 편하면 몸이 건강하고, 그래야 작업도 더 오래 할 수 있지요."

함께 모인 작가들은 50대 후반에서 60대까지, 모임을 소집한 선배 작가에 비하면 청춘들이었습니다.

창작과 전시에 관한 다양한 안들이 나오고 더불어 어떡하면 더 즐겁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한 작가가 옆 사람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두 사람은 한 골목에 살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한 것이 몇 개월이 되었군요. '무슨 일'이 있어야 만나는 이웃이라면, 또한 그 일이 '본인상(당사자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이라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펀의 비결은 소통이라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에서 대화는 대면하지 못한 그 시간들을 반추하는 얘기로 이어졌습니다. 한 작가가 최근 완공한 새 집 얘기를 했습니다. 요양원에 계신 친정어머니를 모셔오고 딸과 딸의 아들까지 4대가 함께할 수 있도록 설계에 반영했다고 했습니다.

"이사한 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제 소원대로 엄마를 집으로 모셨고 손자가 증조할머니와 노는 모습도 참 좋아요. 하지만 제 결정이 옳았는지는 의문이에요. 제가 힘이 드니가 나이 많고 병약한 엄마에게 자꾸 화를 내게 돼요. 지난달에는 정말 조마조마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엄마가 가슴에 통증을 호소해서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갔더니 더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에 말에 다시 앰뷸런스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갔어요. 앰뷸런스 타보셨어요? 온몸이 타들어가는 그 초조함... 다행히 곧바로 관상동맥에 스탠트(Stent)시술을 해서 살 수 있었어요. 매일이 긴장의 연속입니다."

몇 년 전에 어머님을 떠나보낸 분이 그 작가를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모시지 않으면 후회합니다. 제 엄마가 넘어져서 고관절을 다치셨어요. 노인들의 뼈는 웨하스(웨이퍼, wafer)처럼 속이 텅텅 비었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어머니와 함께 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어머니가 계신 아파트 옆 동에 큰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상태가 좀 좋아지셨어요.

엄마는 성격이 아주 까탈스러운 분이셨어요. 신세 지는 것도 싫어하시고. 상태가 좀 호전되자 어머니 마음이 변하신 거예요. 살림을 합치는 것을 거절하셨고 저희 부부만 넓은 아파트에서 살게 됐어요.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악화되어 입원을 하셨는데 결국 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그것도 굶어서... 딸에게 신세를 지지 않겠다고 밥을 드시지 않으신 거예요. 어떻게든 드시게 하려고 했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지금 제가 제일 후회하는 것이 그때 집에서 함께 살지 못한 거예요. 그러니 지금 어머님과 함께하시는 불편이 평생의 후회를 더는 겁니다."

어머님과 매일 투쟁의 시간을 살고 계신 분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친구들과 얘기 중에 가슴을 한 번씩 주먹으로 쳐주면 자다 죽는 일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소리를 듣고 모두 "아휴, 나는 안칠래!" 그러더라고요."

그 말을 제일 연장자께서 받았습니다.

"노인들의 큰 소원이 있는데 그것이 자다가 죽는 거랍니다. 자다가 아픔 없이 죽는 것은 복이 많은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랍니다."

어머님을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 그 병상을 지켰던 딸이 말을 이었습니다.

"엄마가 계셨던 병실에 먼저와 계시던 92살 된 예쁜 할머니가 계셨는데 치매가 있었어요. 정신이 없으실 때는 계속 한가지 기도만 계속하셨어요. "하나님, 이 불쌍한 영혼을 하루빨리 거두어주십시오."라고. 다시 제정신이 돌아오실 때는 퇴원시켜다라고 간호원에게 매달리시고.

집안은 잘 사시는 분이셨는데 매일 병원비가 아까워셨던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에게 말씀드렸어요.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예쁘셔서 병원에서 병원비를 받지 않으신대요." 그 뒤로는 제정신일 때도 마음이 좀 편해지신 듯싶어요.

옆 병상의 다른 할머니는 고관절 부상으로 걷지도 못하시는 분인데 할아버지는 늘 할머니를 구박하시는 거예요. 빨리 일어나서 집으로 가야지 누워만 있다고... 며느리는 필리핀 분이더라고요. 그 며느리가 "우리 엄마 너무 불쌍해. 아버지 너무 이상해. 아버지 때문에 가슴이 아파요."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다음날 다시 할아버지가 오셔서 또 할머니를 야단을 치시는 거예요. 제가 할머니에게 주스를 건네도 안 먹겠데요. 그래서 "할머니 주스 드시고 힘내서 할아버지랑 싸우세요." 그제서야 미소를 띠며 달래는 거예요. "할아버님, 못됐어요. 할머니 파이팅!"을 병실에서 함께 외쳤습니다. 노인들은 자녀들이 넉넉하게 살아도 병원비 쓰는 것을 너무 싫어하시더라고요."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큰 아파트를 얻었던 작가는 사실 몇 년 전에 작업실을 모두 정리했었습니다. 작업은 그만하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분께 왜 작업을 다시 할 의욕을 갖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엄마가 성미가 까다롭고 고집이 센 분이셨거든요. 그러니 딸에게도 신세 안 지겠다고 곡기를 끊고 돌아가시지요. 그런데 그런 태도가 주위 분들을 많이 힘들게 했어요. 그러니 그 사람들도 엄마를 피하고... 또한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저도 엄마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육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와 다르지 않게 살아왔어요. 이제부터는 수더분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주변이 텅 빈 듯 느껴지면서 남은 내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어떤 때가 제일 좋았는지를 뒤돌아보니 제가 도자기를 할 때가 제일 행복했었어요. 행복한 것을 해야겠다, 결심이 섰고 그래서 흙을 다시 만지게 된 거지요. 달라진 게 있다면 천을 함께 엮어볼까 해요. 제가 천을 좋아하잖아요. 뜨개질도 하고... 제 이 옷들도 직접 만들어 입었어요. 이 무늬들도 제가 직접 바느질로 만들어 넣은 것이거든요. 이 언니에게 염색도 배웠고..."

내년 봄 첫 단체전의 주제도 자연스럽게 정해졌습니다. '시간의 기억' 각자 살아온 시간의 반추가 되겠지만 그것은 다가오는 시간을 모색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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