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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으로 처형된 3인의 유족이 청구한, 형사소송 첫 재심이 71년 만에 순천에서 열렸다. 대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까지도 7년 이상 걸려 생존 유족이 단 1명인 상황이다. 승소하면 군법회의에 회부된 모든 피해자가 특별법이 없어도 구제 받을 수 있다.

유족이 71년간 흘린 피눈물처럼 온종일 비가 내리던 4월 29일. 14시에 순천지원 316호 법정에서 첫 재심이 열렸다. 앞서 13시에 법원 입구에서는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에서 준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71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여순 재심을 앞두고, 형사소송을 한  3인의 유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장경자 씨가 시아버지인 고 유지창 씨가 끌려가는 모습이 담긴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수군청에 근무하던 26살 유 씨는 제14연대가 왔을 때 식량창고에서 쌀을 풀었다는 죄로 잡혀갔다. 한편, 장 씨의 부친은 이번 재심에 해당하는 군법회의의 피해자인 철도원 장환봉 씨이다,
▲ 장경자 여순 유족 71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여순 재심을 앞두고, 형사소송을 한 3인의 유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장경자 씨가 시아버지인 고 유지창 씨가 끌려가는 모습이 담긴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수군청에 근무하던 26살 유 씨는 제14연대가 왔을 때 식량창고에서 쌀을 풀었다는 죄로 잡혀갔다. 한편, 장 씨의 부친은 이번 재심에 해당하는 군법회의의 피해자인 철도원 장환봉 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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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첫 재심에 유족과 언론,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방청을 원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원활한 진행상 입석을 포함해 취재진 10명을 포함한 총 56명만 입장할 수 있었다. 이에 뒤늦게 와 입장을 못한 어느 언론인이 "공개재판인데 왜 입장이 안 돼?"라며 항의하는 소동도 발생했다. 재판은 30여 분 후 종료되었고, 6월 24일 오후 14시에 열릴 예정이다. 

75세인 장경자씨는 형사소송을 한 유족 중에서 유일한 생존자로, 그간 청와대와 국회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재심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재심은 제 아버지의 재심뿐만 아니라, 해방 후 46년 대구 10월 항쟁, 제주 4·3 민중항쟁, 여순 민중항쟁, 60년 4·19혁명, 80년 5·18 민중항쟁 등 무차별 집단학살의 재심으로, 국가가 저지른 추악한 범죄를 심판하는 날이다. 빨갱이로, 연좌제로 고통당한 모든 유가족들의 재심이다."

박성태 보성유족회장은 "군법회의라는 미명아래 정식 재판도 없이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을 끌고 가고 학살한 대한민국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매우 역사적이고 중요한 재판"이라 평가했다. "부디 판사님들께서는 과거 사법부가 저질렀던 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오늘 재심이 무죄로 판결되면 더 이상 입법부와 행정부는 여순사건특별법을 제정 안 할 수 없게 될 것"이라 말했다.
 
여순 첫 재심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순사건 연구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한 주철희 박사가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 주철희 여순사건 연구자 여순 첫 재심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순사건 연구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한 주철희 박사가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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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희 여순사건 연구자는 "재판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라는 질문에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는데 있어서 자료가 많지 않다. 계속적으로 자료를 찾아 공소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라. 이것이 오늘의 핵심"이라고 답변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화위')에서 피해자라 확정되었으나 소송을 하지 못해 보상을 받지 못한 분들이 있다. 진화위에서 소송에 대한 안내를 해줬으면 했다는 의견도 있다"에 대해서는 "진화위는 개인에 대해서 이 사건에 대한 명예를 회복해주냐, 안 하느냐를 결정하는 기구이다. 개인들이 명예를 회복 받았으면 국가가 잘못한 것이 드러나니까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지, 진화위의 임무가 아니다. 진실 규정을 받고 소송을 거신 분들이 굉장히 많다. 순천이나 여수 유족들은 민사소송으로 보상을 받았다"고 했다.

"재심에서 무죄라 확정이 되면 어떤 효과가 있나?"라는 물음에 "군법회의에 의해 처형된 분들이다. 지금 현재는 특별법이 되어야 개인에 대한 진실규명이 되고, 그것을 통해서 민사소송을 걸었다. 그렇지 않고도 군법회의에 되신 분들은 특별법 없이도 재심 신청을 할 수 있고, 이 재심이 통과되면 형사소송을 걸어 지금 형사소송처럼. 그럼 이 형사소송에서 승소를 하게 되면 민사소송을 할 수 있다. 이 재판의 의미는 군법회의에 의해 사형을 받았든 무기형을 받았든 형무소 재소자들이 있다. 이 분들까지도 구제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재판이다. 특별법이 없이도 이 분들은 승소를 하게 되면 명단에 나온 분들은 재심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71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여순사건 첫 재심을 앞두고, 순천지원 입구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 여순사건 재심 기자회견 71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여순사건 첫 재심을 앞두고, 순천지원 입구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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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이 "명단에 있는데 결론 나기 전에 재심을 신청해도 되느냐?"라고 묻자 "신청해도 된다. 대법원에서 재심을 받아줬기 때문에 지금 현재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신청하면 된다. 명부에 있는 분들은 재심을 할 수 있다. 그 체포와 구금이 불법적이고 위법적이라 판시를 했다. 명부에 나온 분들은 특별법과 상관없다"고 답했다.

앞서 1948년에 단독정부 수립에 반발하여 제주 4·3사건이 일어나자 제주도 진압작전이 펼쳐졌다. 출동 명령을 받은 여수 제14연대는 국민을 보호하는 국군의 사명에 어긋나는 부당한 명령이라며 "동족상잔 결사 반대"와 "미군 즉시 철퇴"를 외치며 출동을 거부, 10월 19일에 봉기했다.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불만이 가득 찬 민중들이 지지하며 전남뿐만 아니라 전북과 경남 일부 등으로 확산되었다.

그해 10월 23일부터 11월 초에 순천에서 민간인 협력자들을 색출하는 군경의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철도청 직원 장환봉(29), 농업인 신태수(32)와 이기신(22) 세 명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체포되었다. 11월 말 호남계엄지구 사령부 김백일 중령이 개입한, 고등군법회의 명령 3호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장 씨 등 102명이 처형되었다.

이후 2005년에 '진화위' 법이 제정되어 여순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 피해를 확인했다. 소송을 제기한 일부 유족들만 보상을 받았다.
 
4월 29일 오후 2시 순천지원 316호 법정에서 열리는 여순 첫 재심을 방청하기 위해 유족과 시민, 취재진들이 대기하고 있다.
▲ 재심을 방청하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 4월 29일 오후 2시 순천지원 316호 법정에서 열리는 여순 첫 재심을 방청하기 위해 유족과 시민, 취재진들이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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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법회의로 처형된 102명의 유족인 장경자, 신희중, 이기화씨는 2011년 10월에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2014년 12월 1심과 2015년 7월 2심에서 검찰은 "유족의 주장이 정황만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불법적 연행 구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항고했다. 그러나 7년 5개월 만인 2019년 3월 21일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민간인을 군법회의에서 처형한 것은 불법적이며 위법적 행위"였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에 4월 19일에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가 결성되고, 29일에 재심 첫 재판이 열렸다.

태그:#여순사건 첫 재심, #71년 만의 여순 재심, #국가폭력 피해자, #여순특별법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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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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