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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회사 사람들과 함께 간 중국집에서 메뉴가 잘못 나왔더랬다. "메뉴가 잘못 들어간 것 같아요. 잡채밥 다시 해드릴게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냥 잘못 나온 메뉴를 드시면 좋겠다는 간곡한 부탁인지, 혹은 너무 죄송한 마음에 돌려 말한 낙차 큰 변화구같은 사과인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장면 둘. 지난 주 늦은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어떤 아저씨의 고성을 들었다. 잘못 나온 메뉴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큰소리를 낸 듯했다. 잔뜩 배고파서 그런건지, 혹은 몸에 화가 많아 그러신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실수를 빌미로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식당의 불확실한 주문 처리가 불쾌했다면 그 식당을 다신 찾지 않는 거야말로 최대의 복수가 아닐까. 실수에 조금은 관대한 세상은 가당키나 한 이야기일까 과연.
 
대놓고 주문이 틀릴 수 있다고 말하는 가게. 그러나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 중에 어느 누구 하나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다.
▲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대놓고 주문이 틀릴 수 있다고 말하는 가게. 그러나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 중에 어느 누구 하나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다.
ⓒ 이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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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읽기 전 겪었던 일들 때문일까. 이 책의 내용이 극적으로 다가왔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니, 요즘 세상에 그랬다간 집중 포화를 맞게 되지 않을까. '장사의 기본이 안 됐다'는 둥, '저런 집은 다신 가면 안 된다'는 둥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 가게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주문과 다른 음식이 나오더라도 당황하거나, 심지어 화조차 내지 않는다. 이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등장하는 종업원들은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주문한 음식이 실수 없이 나오는 것을 더 아쉬워하곤 한다. 음식을 잘못 내와도 방긋 웃는 종업원과 그럼에도 웃으며 먹는 손님들.
 
늙는 것이 두렵지 않은 나라, 병드는 것이 더 이상 불행하고 외롭지 않은 사회. 이 책을 읽으면서 살이나마 그 맛을 본 것 같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그 현장감이 우리 삶 자체가 될 수 있기를, 관용과 이해와 소통의 공기가 곳곳에 흐를 수 있기를 바라고 고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by 옮긴이의 글

이 책은 NHK 방송국 PD인 일본인 저자 오구니 시로가 우연히 취재 차 방문하게 된 간병 시설에서 엉뚱한 음식을 먹게 된 후 이를 하나의 짧은 프로젝트로 기획해 낸 결과물을 담아냈다. 범상치 않은 기획에 역시나 범상치 않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므로, 그 자체만으로도 읽을 만하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2017년 6월 3일과 4일 단 이틀, 도쿄 시내에 있는 좌석 수 열두 개의 작은 레스토랑을 빌려서 시험적으로 오픈하기로 했습니다. '시험적'이라는 표현을 빌린 것은, 이러한 콘셉트의 요리점이 세상 사람들에게 통할지 어떨지 우선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중에서

책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애초부터 이 말도 안되는 요리점을 기획한 저자 오구니 시로에서부터 이 요리점을 방문했던 손님들은 물론 서빙 일을 하시는 치매 노인 분들의 자세한 사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이 요리점을 서술하고 있다. 각기 다른 개인이지만 모두 이 공간에 대한 애정으로 수렴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따뜻하며 가슴 뭉클해 지는 책이다. 주문이 틀리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꺼이 이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나, 주문이 틀린 줄도 모른채 본인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려는 치매환자분들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배려와 이해를 몸에 휘감고 있다. 오직 이 식당에 들어선 순간만큼은 유토피아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마치 손님들 모두 가슴이 따뜻해질 작정을 하고 이 가게를 찾는 듯 하니 말이다.
 
할머니의 이 싱그러운 웃음이야말로 사람들이 이 요리점에 열광했던 이유가 아닐까. 실수를 통해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린 너무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주문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할머니의 웃음 할머니의 이 싱그러운 웃음이야말로 사람들이 이 요리점에 열광했던 이유가 아닐까. 실수를 통해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린 너무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이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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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자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오구니 시로 작가에 감탄하게 됐다. 강퍅한 세상이라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인정과 배려의 판을 깔았을 때 이렇게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질 수 있었을 줄, 그는 알고 있었을까. 어찌보면 바로 이런 '판'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상'이 아닐까 하는 점에서, 작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느낀다. '그깟 실수 좀 하면 어때', 과연 우리부터 실천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게 된다.

더불어 치매라고 해서 마냥 이들을 우리가 돌봐줘야 할 '환자'로만 인식하지 않는 태도 역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여전히 쓸모가 있고 유용한 존재라는 사실, 이 간단한 사실이 한 개인의 행복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이 요리점의 노인 분들의 빛나는 눈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모두가 지금껏 본 적 없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역할을 가진다는 것이 사람을 이토록 빛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분들을 보며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중에서

실수에 조금은 관대한 세상, 그것마저도 보듬어 줄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우리 모두. 그것이 전제된다면 펼쳐지게 될 그림의 아주 작은 단초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한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저자 오구니 시로가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다음과 같이 공유해보며 본 서평을 마무리할까 한다.
 
'주문을 틀리다니, 이상한 레스토랑이네'
당신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저희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읿니다.
가끔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어떤 메뉴든 이 곳에서밖에 맛볼 수 없는,
특별하고 맛있는 요리들로만 준비했습니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네. 뭐, 어때'
그런 당신의 한마디가 들리기를.
그리고 그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중에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18)


태그:#주문을틀리는요리점, #실수,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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