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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딸! 여행 잘 갔다 오소. 엄마는 지금 수술실 들어 가니라고 옷을 할딱 벗고 있네이. 벌벌 떨린당게. 내 딸은 어쭈고 몇 번이나 수술을 받았을까이."

지난해 가을, 인천공항에서 오사카 가는 비행기를 타기 40분 전에 엄마 전화를 받았다. 평생을 육체노동자로 살아온 엄마. 굴비를 엮는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휘어있다. 손가락에 인공관절 넣는 수술을 앞두고서야 딸에게 그 사실을 알려왔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 좀 하자. 하지만 아들 제규는 자신이 병들 줄 몰랐으니까 할 말이 없었겠지. 앞날을 내다볼 줄 모르는 우리 부부도 태평했다. 타지에서 대학 다니는 아이에게 밥 먹었는지, 돈 있는지, 학교생활 재미있는지만 물었다. 집 생각이 하나도 안 난다는 제규에게 서운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우리도 스무 살 때는 식구들 생각을 거의 안 했으니까.

"어디 아픈 데 없지?"
 

새싹처럼 파릇파릇하고 건장한 청춘에게 할 질문으로는 마땅치 않다. 밤을 꼴딱 새고도 쌩쌩하게 돌아다니는 제규가 가장 후회하는 건 기숙사 생활을 한 것. 스무 살인데, 통금 시간 때문에 실컷 놀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라고 했다.
 
 올해 1월 6일에 대전에서 1년간 대학 다닌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올해 1월 6일에 대전에서 1년간 대학 다닌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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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6일. 제규를 데리러 대전에 갔다. 1학년 마치고 휴학한 아이의 짐을 기숙사에서 빼기 위해서였다. 우리 식구는 제규가 주말마다 8시간씩 일했던 업장에 가서 밥을 사먹고는 도시 외곽에 있는 단재 신채호 생가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한밤중이었다.

그때 병이라는 놈은 제규 몸속에 침투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나 보다. 제규는 한낮이 되어야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엌에서 음악을 크게 켜놓고 음식을 해서는 식구들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어두컴컴해지기 전에 샤워하고 멋을 내고 밖으로 나갔다.
 
 김밥. 다시 아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
 김밥. 다시 아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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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규야, 산업기능요원(제조, 생산 분야에서 근무하는 대체복무제도)으로 일할 회사에서 연락 왔거든. 사정이 생겼대. 3월에 출근하지 말고, 6월부터 나오라고 하더라."

남편이 그 소식을 전한 다음날부터 제규는 변신했다. 카프카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벌레가 된 건 아니다. '서양귀신 병'에 걸린 것 같았다. 완전히 깜깜해질 때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드라큘라나 좀비처럼 해가 떠있을 때는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저녁, 퇴근한 나는 제규 방 침대에 걸터앉았다.

"제규야, 눈 좀 떠 봐. 왜 이렇게 지내?"
"할 게 없잖아요. 진짜 우울증 같은 게 생겼어. 군대 때문에 아무것도 못해요. 알바라도 하고 싶었는데, 한두 달 일할 사람을 누가 쓰겠어? 처음부터 공장에서 6월에 오라고 했으면 뭐라도 할 수 있었잖아요."
"여행이라도 갔다가 와. 맛있는 음식 먹는 것도 너한테는 공부잖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제규는 지난해에 전북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한식과 양식, 일식 자격증을 들고 갔지만 척추측만증이 있다고 4급 판정을 받았다. 제규는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 신청을 했다. 경쟁률은 17:1. 떨어진 게 지난 11월이었다. 한 달 뒤에 다시 신청했다가 또 탈락! 1년에 두 번 주어지는 기회를 다 썼다.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주위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자리가 왜 없어?" 시청이나 동사무소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사람이 사회복무요원이니까. 군산의료원에서 일하는 내 친구 길림은 "우리 병원 공익, 봄에 복무 끝난대. 제규가 여기로 오면 되겠어"라고 했다. 큰시누이는 어머니가 다니는 복지관의 사회복무요원 자리를 찜했다. 사람들아, 막 그냥 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낙담한 제규는 훈련소 가는 친구들 송별회에 가곤 했다. 아직 군대에 안 간, 서울과 천안, 춘천에 사는 친구 네 명은 우리 시가(비어있음)에 와서 사흘간 지냈다. 글로벌조리학과니까 음식은 당연히 맛있게 하고, 젊으니까 당연히 밤새 잘 노는 친구들은 여름이 되기 전에 군대(18개월 복무) 갔다가 2021년 봄에 복학한다. 
 
 스무 살. 같이 있으면 무조건 좋다.
 스무 살. 같이 있으면 무조건 좋다.
ⓒ 강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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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1~2년 늦을 수도 있지, 뭐. 살아보니까 별거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니깐."
 

그렇게 말하는 순간, 완벽한 꼰대가 되는 거다. 위로도 뭣도 아닌 말을 제규에게 할까 봐 이를 악물었다. 사회복무요원 자리가 나올 때까지 아이를 1년이고 2년이고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높은 산꼭대기라도 올라가서 길이 있나 살펴야 했다. 있었다! 병역과 취업을 동시에 해결한다는 산업기능요원 제도. 복무기간은 24개월이었다.

"반드시 성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받아줄 수 있어요."

제규가 다닐 회사의 대표님은 당부했다. 어떤 청년들은 생계를 위해서 회사에 다니는데 군복무로 온 청년들은 일하는 분위기를 해치기도 한다고. 그래서 산업기능요원을 받을 때는 망설인다고 했다.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청년은 출퇴근 할 회사를 찾지 못해서 전북 완주까지 갔다. 원룸을 얻어 살면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한다.

회사는 군산시 외곽의 공단에 있다. 시내버스가 띄엄띄엄 다니는 곳이라서 차를 끌고 다녀야 한다. 그 전에 운전면허증을 따야 한다. 자동차에 대한 어떠한 로망이나 야망이 없던 아이는 가까스로 면허를 따고 출근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봄도 아니고 여름부터 출근하라니! 대학으로 치면, 한 학기를 날려버린 셈이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진짜 하나도 없어!"

스물한 살 청년의 절규는 어디에도 가닿지 못한다. 제규는 이런 막막함을 처음 겪는 게 아니다. 몇 년 전에도 그랬다. 고등학교 1학년 봄에는 원치 않는 야자를 하는 게 싫다면서 강력하게 자퇴를 원했다. 어미로서 그때 뭐했더라?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책을 같이 읽었다. 참신함이 부족한 나는 이번에도 똑같은 작전을 쓸 수밖에 없다.

침대에 누워 지내던 제규는 베개 옆에 바짝 놓아둔 책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서 눈을 뜨기도 했다. 손을 뻗어서 책 표지와 내용을 훑어보았다. 마음이 안 가는 책은 침대 밑으로 내려놨다. <염소의 맛>, <어쨌든 밸런타인>,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었다.

"제규야. 하정우 배우는 무명이었을 때도, 잘나갈 때도, 자기를 유지하는 방법이 걷기래. 너는 그런 게 있어?"
"요리지. 집에 오고 나서, 군대 일정이 안 잡히니까 날마다 새벽까지 빵 만들고 있었잖아요."
 

그랬다. 자고 일어나면 따끈따끈하고 쫄깃한 빵이 식탁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빵을 좋아하는 김연아 선수를 흠모하는 사람일 뿐, 즐겨먹지는 않는다. 달콤한 냄새를 기분 좋게 맡아만 봤는데도 왜 옆구리에 살이 찔까? 아침에 일어나면 제규가 만든 빵이 없기를 바라고 잠든 날도 있었다. 
 
 제규는 밀가루 반죽을 하고,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새벽에는 크로와상을 구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안에 빵 냄새가 가득했다.
 제규는 밀가루 반죽을 하고,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새벽에는 크로와상을 구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안에 빵 냄새가 가득했다.
ⓒ 강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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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에 지지 않고 하루에 3만보를 걷는 하정우처럼 제규도 걷는다. 서양귀신 병에 걸렸으니까 식구들의 저녁밥을 차려놓고 밤에 걷는다. 올 여름에 입대 예정인 친구 성헌이와 은파 호수공원을 돌아다닌다. 총 12km인 공원을 더 많이 걷기 위해 두 사람은 '돌려 깎기' 하는 구간을 만들어두기도 했다.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청년들. 밤새 걸어 다니다가 도시를 겹겹으로 감싼 어둠이 어느 순간 확 밝아오는 것을 목격한다. 어느 날은 그대로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서 이웃도시로 가는 첫차를 탔다. 어느 날은 이웃나라로 날아가서 거의 열흘간 먹고 걷는 게 전부인 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해가 지면 며칠에 한 번씩은 걷는 사람, 해가 뜨면 늘 누워있는 사람. 몇 달간 제규를 바라본 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지난 1년간 제규는 어디에 있었을까? 혹시 학교 기숙사나 친구 자취방에서 내내 시간을 보낸 건 아닐까? 나는 치사해졌다.

"제규야! 너 대전에서 학교 다니긴 했어? 엄마가 기숙사비로만 수천만 원 낸 거 아니지?"
"나 엄청 열심히 했어요. 아침 7시에 학교 가서 미장(재료 준비) 싹 해놓고. 실습하고 청소하고. 12시에서 1시 사이에 끝나요. 교수님이 나보고 기초가 잘 잡혀 있는 학생이래. 점심 먹고 영어 수업 들으러 가서 빡세게 하죠. 주말에는 오전부터 밤까지 알바하고. 1년 동안 정말 바빴어. 잠깐만 이러는 거예요."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면서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안다고 믿었던 서로의 마음속을 더 깊이 채굴하는 것'이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제규도 읽었겠지. 독서모임을 하면 서로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관계로 남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1999년생 아들과 책을 읽어가기로 했다.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문학동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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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청춘>, <소년의 레시피>,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