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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시를 암송해야 하나요?"

장자 철학을 공부하는 자리였다. 일요일인데도 비움박물관은 시민 수강생들로 가득 찼다. 최진석 교수가 '시인은 문자의 지배자이고, 일반인은 문자의 사용자이다. 우리는 시를 암송해야한다'고 얘기하자 한 수강생이 던진 질문이다. 시 읽기를 그냥 막연하게 좋아하는 나도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최 교수는 '지적인 삶, 노력하는 삶을 살기위해, 함부로 막 사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시를 암송해야 한다'고 답했다. 혹시 시를 암송하지 않으면 '함부로 막 사는 삶'이 되는 건 아닐까라고 느껴질 만큼 확실한 어조였다. '지적인 삶'을 살기위해 적극 노력은 못하더라도 삶이 함부로 막 사는 삶이 되도록 놓아둘 수는 없겠다.

시 암송과 가까워진 계기가 생각난다. 십 수 년 전 첫눈 오는 날 깜짝 동창 모임에서 김춘수의 시 <꽃>을 낭송했던 사건(?)이다. 그해 늦가을 동창회 때 사업가 친구가 '첫눈 오는 날, 술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대학 때 문학도였던 사업가 친구는 조건을 하나 걸었다. '시를 한 수씩 외워 오라'였다. 첫눈 오는 날 깜짝 모여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신다, 운치 있는 제안이었다.

시 암송이라고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이육사의 <청포도> 몇 구절, 그것도 토막토막 외우는 정도였다. 그때 김춘수 시인(1922.11.25. ~ 2004.11.29.)이 타계하셨다는 신문기사가 났다. 대표 시 <꽃>도 소개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짧지 않은 시지만 구절구절 마음에 닿았다. 시인이 말하는 '꽃'은 봄여름 벌 나비가 좋아하는 꽃만은 아니었다. 열심히 외웠다. 한 달이 안 되어 첫눈이 내렸다. 시를 혼자 암송하는 것도 어려운데 여럿 앞에서 메모도 보지 않고 큰 소리로 줄줄 낭송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단 한 번 시 낭송이었지만 나에게 새로운 시 읽기 세상을 열어준 사건이었다.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 저자 신영복 교수(1941~2016)는 <담론>에서 '장기자랑 때 <서시>를 암송했던 초등학생 이야기'를 전한다.
 
"비싼 과외 대신 시 암송 모임에 다녔던 가난한 초등학생이 소풍가서 장기자랑 차례가 되자, 어쩔 수 없이 암송 모임에서 공부했던 윤동주의 <서시>를 암송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놀랍게도 그 날은 물론 그 후 그 아이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아이돌그룹의 춤을 흉내내거나 유행가를 부르는 다른 아이들의 화려한 장기자랑'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아이들은 밋밋하고 무거운 시 낭송에 갈채를 보냈을까. 영화 속 이야기처럼 놀랍고 신선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 세상이어서 가능했을 일이다. 설마 '죽는 날까지'로 시작되는 <서시>의 시구에 감동하지는 않았겠지.

신영복 교수는 "시를 암송한다는 것은 시인들이 구사하던 세계 인식의 큰 그릇을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천하에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아내는, 상상력을 키우는 일'로 비유한다.

어른인 우리는 시를 얼마나 암송해야 상상력이 커질까. 차라리 시낭송에 갈채를 보내는 아이들 세상 닮아 가는 길이 더 가까울 것 같다. 걷기를 좋아해 자주 걸으면서 시를 암송한다. '황룡강바람길'을 걸으며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를 소리 내어 외워본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 바람이 부는데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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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