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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남성 가장이 세 명의 가족을 부양하는 모델이 흔했다. 아버지는 공장이나 회사에 출근하고, 어머니는 집안에서 가정주부로 살아가고, 자녀는 둘을 낳아 키우는 형태의 가족 말이다. 아이는 낳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이렇게 구성된 서너 명의 가족이 한 덩어리로 살아가는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결혼을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줄었고, 혼자서 가족을 다 부양할 소득을 올리는 일도 쉽지 않아졌다. 그러니 과거 남성 가장의 부양 모델은 많은 사람들에겐 옛 이야기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아주 놀랍게도 오랜 세월, 그것도 최근까지 남성이 가족 구성원을 부양할 충분한 돈을 벌고 가족을 먹여 살리던 지역이 있었다.

중공업이 발달하고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인 고임금을 제공할 수 있는 지역에서는 이런 모델이 가능했던 것이다.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이 곳은 최근 엄청난 부침을 겪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바로 거제도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최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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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 사회학과 양승훈 교수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거제도와 조선 산업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만으로도 사람의 시선을 끈다. 저자인 양승훈 교수는 단순히 학문의 길만 밟고, 대학원에서 박사를 따서 교수가 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대우조선에서 근무했던 직원 출신이다. 직원으로 실제 일하면서 거제도와 조선업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이 교수가 되어 이를 연구하니 이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면서, 일하면서 봐왔던 거제도와 조선업에 대해 정리해서 이 책을 펴냈다. 책에 나오는 거제는 IMF 이후 실직이 늘고 정년 보장이 붕괴되어 가던 모습이 되어가던 한국의 다른 지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책은 '중공업 가족'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뿐 아니라 직원과 노동자의 공동체를 포함한다.

책에 따르면, 거제는 조선업을 바탕으로 한 산업도시로 다른 지역과 매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우선, 거제는 남성이 돈을 벌고 엄마가 육아와 가사노동을 하는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을 지켜온 드문 도시다. 이유 중 하나는 제조업의 돈벌이가 괜찮았기 때문이다. 2010년 무렵 이미 거제도는 4146만 원의 지역총소득을 기록했다.

일도 오래 할 수 있어서 대우조선의 평균 근속연수는 2015년 기준 17년 가량이었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정년까지 가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거제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임금을 바탕으로 살아갔고, 자식들을 교육시키며 가정을 꾸려 나갔다. IMF 위기도 그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울산도 산업도시와 조선업으로 이름 높은 곳이지만, 울산은 기본적인 인구가 백만이 넘고, 조선 이외에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이 존재한다. 반면 거제도는 정말로 조선 산업에 완전히 목을 매고 있는 섬이었다. 때문에 조선 산업과 거제의 흥망은 직결되었다.

조선업의 고임금은 힘든 노동을 바탕으로 했다. 그들의 일은 매우 고되고 힘든 것이었는데, 용접으로 인해 눈에 열이 오르거나 산업 재해가 일어나는 일도 흔했다. 워낙 더러운 환경에서 필사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아버지의 현장을 방문하면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책은 전한다. 그렇게 피땀 흘려 번 돈과 쌓인 경력은 그들의 자부심이 되었고, 이들은 자부심의 상징인 작업복을 입고 거제도를 돌아다녔다.
 
대우 사람들은 사장부터 용접공 신입사원까지 직군 직책 상관없이 작업복을 입고 다닌다. 조선소 사람들은 작업복을 입고 어디든 다닌다. 술집에 가고, 상갓집에 가고, 결혼식에 가고, 돌잔치에 간다. 미혼인 직원들은 소개팅 자리에도 작업복을 입고 나간다. 작업복은 조선소 사람들이 자부심을 드러내는 수단인 동시에, 거제도에서 작업복이 차지하는 지위를 상징한다. -59~60P
 
물론 이런 거제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깜짝 놀랄 만한 부분이 많았는데, 깊은 음미를 요하는 부분이 있었다. 책에 따르면 성인 남성이 거제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은 "어디 다니세요?"다. 직영 직원인지 하청 직원인지 묻는 것이다.

하청 직원은 회사 안에서 하청 사람이라고 심각한 무시를 당한다. 이들은 카스트 제도를 작업장 내에서 일상적으로 체험한다. 공구 창고에 가면 직영 담당자들이 하청 직원들이 공구를 헤프게 쓴다고 직영부터 우선으로 챙겨준다. 안전관리자들이 하청 직원에게만 험한 말투를 쓴다는 말이 돌고, 주말, 휴무일, 명절에도 출근해서 힘들고 긴급한 일을 해야 했다.

일을 적게 하는 것도 아니어서, 해양플랜트 분야는 사내하청업체가 생산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하청 직원에겐 유토피아가 아니라 계급 사회였던 것이다.
 
이들은 원청에서 나눠준 빵이나 우유 등의 간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한다. 공구 창고에서 꼭 필요한 공구를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차별과 설움은 일하는 와중에 하청 노동자들의 뼛속 깊이 각인된다.  -105~106P
 
조선업의 특성상 대부분 직원의 성별은 남성이었다. 고학력 여성을 위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는 청년들은 회사 안과 밖이 연결되는 문화가 낯설었다. 사람들을 피해 숨을 데 하나 없이, 하루를 온전히 회사 사람들과 보내고 퇴근 후 늦은 밤까지 회식과 2차 3차 노래방까지 같이 있어야 하는 문화는 청년들에게 익명성의 필요를 절감하게 했다.

책은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는 애초에 하청 노동자와 여성을 배제한 것이었고, 젊은 세대들에겐 거부감을 주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거제 사람들의 삶은 어떤 사람들에겐 단순히 보수적인 삶의 형태에 지나지 않았고, 조선 경기가 위축되면서 내부의 모순과 긴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조합과 회사 혁신의 문제, 인사 관리와 청년, 중년 세대의 갈등, 엔지니어들과 현장의 소통, 경영과 세계 속에서 한국의 조선업이 자리한 위치, 대우조선과 거제 부동산의 흥망 등 굉장히 많은 주제를 이 책 한 권에 다 녹여냈다. 조선 산업의 길을 논하는 부분도 있다. 때문에 매끈하게 책이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고, 보강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낯선 조선업이라는 산업을 씨줄로, 거제라는 산업 도시의 삶을 날줄로 엮은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은 정말 감탄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과 산업의 흥망을 지근거리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의 밥벌이를 관찰하지 않고서는 타인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추천해 준 지인에게 감사를 느끼며, 다른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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