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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춘 옛집터에는 박시춘의 흉상과 노래비가 있다.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기록은 입구 안내판에 언급된 “일제 강점기에 작곡한 4곡으로 인하여 2005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사로 거명되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라는 내용이 전부다.
 박시춘 옛집터에는 박시춘의 흉상과 노래비가 있다.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기록은 입구 안내판에 언급된 “일제 강점기에 작곡한 4곡으로 인하여 2005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사로 거명되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라는 내용이 전부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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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춘 옛집터 중앙에는 박시춘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고, 바로 옆 자리한 노래비에서는 박시춘의 히트곡들이 메들리로 흘러나온다.
 박시춘 옛집터 중앙에는 박시춘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고, 바로 옆 자리한 노래비에서는 박시춘의 히트곡들이 메들리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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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지(약지) 깨물어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 놓고 성수만세(일왕의 만수무강 기원) 부르고 한 글자 두 글자 쓰는 사연 나라님의 병정 되길 소원합니다."
 
경남 밀양 출신 친일파 작곡가 박시춘이 1943년 만든 '혈서지원'이라는 노래 가사 중 일부다. 총 5절로 된 이 노래는 한 청년이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고 '나라님의 병정 되기를 소원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청년들에게 일본의 침략전쟁에 나가라고 독려하는 노래다.

박시춘은 이 노래뿐 아니라 1945년 8월 광복 직전까지 '아들의 혈서', '즐거운 상처', '결사대의 아내' 등 일본의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참가를 호소하는 곡을 만들었다. 박시춘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009년 11월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중 음악가로서는 유일하게 '1등급 친일파'로 등재된 인물이다.

최근 밀양시가 박시춘을 비롯해 밀양 출신 유명 작곡가들의 행적을 모아 '(가칭)가요박물관(이하 박시춘 기념관)을 건립하겠다'라고 밝혔다. 밀양시민들은 '밀양가요박물관저지시민연합'을 만들고 "독립운동의 성지 밀양에 어떻게 친일파 기념관을 짓느냐"라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중음악가로서는 유일한 '1급 친일파' 박시춘을 둘러싼 논란

박일호 밀양시장은 지난 20일 밀양시의회에서 "밀양을 먹여 살릴 성장 동력을 만들려면 차별화된 가치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박시춘 박물관은 많은 논란이 있고 명칭도 '가요박물관', '가요센터' 등 여전히 논의 중이지만, 박시춘뿐 아니라 정풍송 등 거장의 명곡을 감상하고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공간을 타 지역과 다르게 만들고픈 욕심이 있다"면서 '가요박물관' 건립 추진 의지를 밝혔다.

박 시장은 "시민과 향우, 문화계, 가요계 인사들의 가요 콘텐츠 요구가 많아 가요박물관을 계획했다"라면서 "가요박물관 등을 만들면 박시춘의 친일 행적을 분명히 기억하고 더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박 시장은 "박시춘이라는 사람이 2등짜리, 3등짜리, 10등짜리 작곡가만 되어도 이런 논란 없었을 것"이라면서 "박시춘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더 논란이 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밀양시의 박시춘 기념관 건립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심에는 손정태 밀양문화원장이 있다. 당시 밀양문화원 이사였던 손정태씨는 지난 2015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밀양신문>에 '박시춘을 일으키자!'라는 제목의 칼럼 4편을 연속 기고하면서 '박시춘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칼럼을 통해 "밀양인과 박시춘 선생을 가슴 아프게 만든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라는 것이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친일파 딱지를 그들의 기준으로 마음대로 갖다 붙였다"라면서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욕보이고 싶은 사람들과 구색 맞추기식으로 묶어서 일방적 기준으로 재단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시춘의 친일곡은 '목단강 편지: 조명암 작사 이화자 노래', '아들의 혈서: 조명암 작사  백년설 노래', '결사대의 아내: 조명암 작사 이화자 노래', '혈서지원: 조명암 작사  백년설, 남인수, 박향림(공동) 노래' 등 겨우 네 곡이었다"라면서 "일제가 볼 때 최고의 자리에 있던 박시춘과 가요인들을 어찌 그냥 두었겠는가? 목숨의 위협을 받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오선지를 채워 나가지 않았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손정태 이사는 2016년 6월 밀양문화원 원장이 되었고, 이후 박시춘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 박시춘의 기타와 아코디언, 의상 등을 협조 받는 등 '박시춘 기념관' 건립을 위한 행동에 앞장서고 있다.

밀양시민들이 밀양시청 대신 손정태 위원장이 재직하고 있는 밀양문화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옛집터도 조성된 상황... "밀양시가 왜 이리 애쓰는지 알 수 없다"
 
밀양 최고 관광지 영남루에서 바라본 박시춘 옛집터.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밀양 최고 관광지 영남루에서 바라본 박시춘 옛집터.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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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춘 옛집터에서 바라본 밀양 최고 관광지 영남루. 영남루 입구에 박시춘 옛집이 있다.
 박시춘 옛집터에서 바라본 밀양 최고 관광지 영남루. 영남루 입구에 박시춘 옛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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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부터 밀양문화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는 장창걸 밀양가요박물관저지시민연합 부회장은 "손정태 원장은 밀양문화원 본연의 역할인 우수한 밀양문화를 알리기보다는 2015년부터 4년 동안 꾸준히 친일 선양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손정태 원장의 사퇴만이 민족 앞에 속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밀양시 의원들도 박시춘 기념관 반대의견을 보태고 있다. 26일 저녁 밀양시에서 만난 장영우 밀양시의원은 "시는 애초 정부 공모사업으로 100억 원 규모로 박시춘을 비롯해 밀양 출신 유명 작곡가를 망라하는 가요박물관을 추진하다 공모사업이 여의치 않자 30억 원 정도로 규모를 축소했다"라면서 "밀양시가 왜 이렇게까지 1급 친일파를 기념하는 가요박물관을 짓기 위해 애를 쓰는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현우 밀양시의원도 "이미 밀양 최고의 관광지 영남루 입구에 1급 친일파 박시춘의 옛집터가 조성된 상황에서, 과연 박일호 밀양시장 말대로 가요박물관이 들어섰을 때,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박시춘의 친일 행적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겠냐"라고 지적했다.
 
박시춘 친일 기록은 옛집터 입구 안내판에 언급된 “일제 강점기에 작곡한 4곡으로 인하여 2005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사로 거명되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라는 내용이 전부다.
 박시춘 친일 기록은 옛집터 입구 안내판에 언급된 “일제 강점기에 작곡한 4곡으로 인하여 2005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사로 거명되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라는 내용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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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춘의 옛집터는 밀양 최대 관광지인 '영남루' 입구에 조성돼 있다. 박시춘 옛집터 중앙에는 박시춘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 옆에 자리한 노래비 근처에서는 박시춘의 히트곡들이 메들리로 흘러나왔다. 특히 박시춘의 최고 히트곡으로 꼽히는 '애수의 소야곡(1938)'은 당대 최고의 가수로 손꼽혔던 남인수가 노래했는데, '노래비'에 새겨진 노래이기도 하다.

박시춘은 남인수와 짝을 이뤄 여러 쇼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다. 박시춘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흰 양복에 검은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기타를 치면서 무대에 등장했다. 

해방 후 박시춘은 남인수와 '은방울 쇼'를 만들어 공연했으며, '가거라 삼팔선', '신라의 달밤'으로 전국을 풍미했다. 그 후 가수 현인과 콤비를 이뤄 '고향 만 리', '럭키 서울', '비 내리는 고모령', '전우여 잘 자거라', '굳세어라 금순아'를 발표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박시춘 옛집터에서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옛집터 입구 안내판에 "일제 강점기에 작곡한 4곡으로 인하여 2005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사로 거명되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라고 언급된 것이 전부다.

이날 친구와 영남루를 둘러본 뒤 박시춘 옛집터를 방문한 관광객 김지훈씨는 '박시춘의 친일행적을 알고 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히 몰랐다"라면서 "왜 친일파의 집을 복원해 놓은 것이냐"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게다가 독립운동가 김원봉·윤세주 생가터 주변에?
 
밀양시는 '콘텐츠의 접근성'을 이유로 박시춘 기념관(가칭 가요박물관)을 해천변 항일테마거리에 지으려 했다.
 밀양시는 "콘텐츠의 접근성"을 이유로 박시춘 기념관(가칭 가요박물관)을 해천변 항일테마거리에 지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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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걸 밀양가요박물관저지시민연합 부회장이 '박시춘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며 1인 시위 중이다.
 장창걸 밀양가요박물관저지시민연합 부회장이 "박시춘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며 1인 시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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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우 밀양시의원에 따르면, 밀양시는 박시춘 기념관의 최초 위치를 밀양시 해천변에 위치한 항일독립운동테마거리에 잡으려 했다. 그러다 밀양시민들의 반발로 본래 계획이 변경됐다는 것이다.

항일테마거리는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과 조선의용대의 영혼이라 불리는 석정 윤세주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해천변 중심에 자리한 김원봉 생가터에는 이미 지난해 3월 '의열기념관'이 건립돼 자리하고 있다. 또 의열기념관 건너편에는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80여 명의 위패가 걸려 있을 정도로 밀양시 해천변은 대한민국 항일운동의 중심지로 인정받고 있다.

장창걸 밀양가요박물관저지시민연합 부회장은 "약산 김원봉 장군과 석정 윤세주 열사가 주도한 의열단 창단이 올해로 100주년"이라면서 "밀양은 독립운동의 성지인데, 그것도 약산 김원봉 장군과 석정 윤세주 선생의 생가가 위치한 해천변에 친일파 기념관을 만들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장 부회장은 "이번 일을 기회로 영남루 입구에 들어선 1급 친일파 박시춘의 집터와 흉상, 노래비 등 부끄러운 우리의 지역 문화유산을 바로 알리고 철거해야 한다"라면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밀양 시민들에게 지금의 사실을 알리는 1인 시위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박시춘 기념관이 세워질 장소는 어디일까? 장영우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밀양읍성 동문 우측 공터가 박시춘 기념관의 잠정적인 위치로 알고 있다"라면서 "문제는 이곳이 해천 항일테마거리와 걸어서 10분 거리다, 독립운동가들의 항일거리 인근에 친일파 기념관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밀양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다"
  
박시춘 기념관(가칭 가요박물관) 건립 예정 추정지. 밀양읍성을 바라보고 우측이다.
 박시춘 기념관(가칭 가요박물관) 건립 예정 추정지. 밀양읍성을 바라보고 우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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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밀양시 관계자는 27일 오후 <오마이뉴스>에 "현재 이 사업과 관련해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라면서 "건립 추정지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출발점에 서 있다, 그저 밀양시에서 보유한 문화적인 자산을 이끌어내기 위해 개발을 유치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밀양시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중소 농업복합도시다"라면서 "밀양을 방문하는 분들이 밀양에 와도 도심 내 콘텐츠가 부족하다, 관광객들의 동선을 고려해 가요박물관의 위치를 관광지가 몰려 있는 그곳(항일테마거리)으로 고려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시춘은 5·16쿠데타 이후 기존의 연예 조직을 재편한 '한국연예협회'에서 4·5·6·7대 회장을 연임했다. 1973년에는 회갑기념을 겸해 '가요 작곡 40년'이라는 공연을 열었다. 당시 박시춘은 "자신의 40년의 작곡 생활을 통해 발표된 곡은 모두 3000여 곡이 된다"라고 밝혔다. 

1982년 전두환 정권 시절 '대중음악 발전에 이바지했다'라는 이유로 '문화훈장보관장'을 받았다. 지난 9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편에서는 친일파 박시춘의 '비 내리는 고모령'이 방송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시춘은 1996년 84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단 한 번도 자신의 친일 행적을 사과하지 않았다.

태그:#박시춘, #밀양, #김원봉, #윤세주,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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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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