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공연 사진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공연 사진 ⓒ 벨라뮤즈

 
'불륜' 소재를 '페미니즘'이라 말할 수 있을까? 도발적인 주제를 관객에게 '툭' 던지는 작품이 있다.

오는 31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가 바로 그 작품이다. 연극에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미발표 단편소설들을 극화한 공연으로 다섯 개의 에피소드를 붙여서 만들었다.

각각 '약사의 아내', '아가피아', '니노치카', '나의 아내들', '불행'이란 제목이 붙은 에피소드들은 체호프 하면 떠오를법한 인간에 대한 관조적인 시선, 그럼에도 놓치지 않는 유머감각을 반복되지 않게끔 다양한 상황으로 지루하지 않게 풀어냈다.

에피소드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약사의 아내'는 늦은 밤, 남편이 자고 있는 사이 군 장교들과의 짧은 만남을 보내는 약사 아내의 이야기다. 한밤의 외도로 지루함을 떨치는 여성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가피아'에서는 점잖은 아내 아가피아가 동네 한량 사프카에게 매력을 느낀다. 두 사람은 비밀스런 만남을 이어가던 도중 갑자기 일탈을 벌인다.

'나의 아내들'은 7명의 아내를 살해한 라울 시냐브로다가 자신이 왜 아내들을 살해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극이다. '니노치카'는 남편을 휘어잡고 사는 아내 니노치카가 남편의 친구와 불륜 행각을 벌이다 남편에게 걸리는 내용을 코믹하게 펼쳐냈다. 끝으로 '불행'은 남편의 친구와 위험한 관계가 되기 직전의 여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점차 불륜을 넘어 홀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려낸다.

관객들은 대체로 극의 중반 쇼스타퍼 역할을 하면서도 연극적인 재미를 동시에 갖추는 '나의 아내들'에게 한 표를 보낼 법하지만, 다섯 개의 이야기 모두 저마다의 재미를 갖췄다. 예컨대 '약사의 아내'가 다소 노골적인 섹시코미디를 표방하며 관객들에게 극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면, '아가피아'는 흔히 말하는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니노치카'는 자유연애의 시대, 변화하는 세대를 좇지 못한 어수룩한 지식인을 풍자한다. 끝으로 '불행'은 다섯 개의 이야기 중 가장 현실감 넘치는 모습으로 동시대성을 띄며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이 이야기들은 겉모습만을 훑어보자면 '나의 아내들'을 제외하고 모두 지루한 현실에 순응하지 못하는 여성의 일탈을 그려낸 작품들이다. 이게 어떻게 페미니즘으로 읽힐 수 있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속 시대상을 빌어보자면(이는 극 중에서 '자유연애'를 언급하는 것으로도 그려진다) 여성들의 일탈은 곧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는 행위로 읽힌다.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공연 사진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공연 사진 ⓒ 벨라뮤즈

 
물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예민하게 작품을 경계하는 이들이 있는 시기에 이러한 관점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고, 혹여 여성들의 입장에서 가부장적 시선의 섹스코미디로 작품을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조차 해석과 관점의 다양성을 부여하는 의미에서 나름의 젠더감수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평이한 연출, 평이한 내용의 관성적인 작품일 수도 있으나,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는 구성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있다. '아가피아'에서 사투리를 이용해 겉으로 무뚝뚝하지만, 내면은 활발하게 타오르는 인물들을 만들어낸다거나, 무대 왼편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관객들에게 익숙한 한국 노래의 어느 구절을 부르기도 하는 '정극'을 기대하는 이들을 산뜻하게 배반하는 나름의 로컬라이징을 선사한다. '나의 아내들'은 아예 퀵체인지를 바탕으로 한 패러디와 오마주, 그 어딘가에 위치한 소동극이기도 하다. 체호프, 고전, 이런 이미지와 상당히 생소한 느낌을 조합해낸 것이다.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공연 사진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공연 사진 ⓒ 벨라뮤즈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다. 개그맨으로 더 유명한 배우 고명환의 인상적인 정극연기, 여성스러움이나 세련됨과 성별에 관계 없이 젊은 사람이 가지는 내츄럴한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서은교의 연기, 다채로운 연기톤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이호준의 정갈한 연기 등등. 역시 정극의 느낌과 매체 연기처럼 자연스러운 느낌들이 뒤섞이며 이러한 '부조화 속 조화'를 한층 추구한다.

전체적으로는 관객들이 얼마나 웃음에 헤픈지가 극의 느낌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체호프가 보여주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꽤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만 지나치게 친절하고 쉽게 만들려고 노력한 느낌에 거부감이 있다면 마음을 주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공연을 보며 직접 판단해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연극 체홉 체홉, 여자를 읽다 고명환 서은교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