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나도 어려운 점이 없었다. 연기자라는 꿈을 꾸고 그 꿈을 키워나가는데 있어 이렇게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매순간 촬영할 때마다 촬영장을 떠나고 싶지 않을만큼 행복했다."

남주혁은 인터뷰 중 가끔 미소를 지었다.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화를 말하거나 배우 김혜자와 함께 연기했던 순간을 말할 때 특히 더 그랬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지난 19일 많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종영했다. <눈이 부시게>에서 '혜자'(김혜자·한지민 분)의 연인 '준하' 역할을 맡은 남주혁에게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

남주혁은 이번 작품을 통해 그간 꾸준히 제기됐던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나 '연기를 잘 한다'는 시청자들의 찬사를 들었다. 준하라는 캐릭터 자체도 남주혁과 어울린다는 반응이었다. 준하는 기자 지망생으로 올곧은 성품을 갖고 있지만 지독하게 가난한 현실에 타협하게 되는 인물로 복합적인 감정선을 드러냈다. 드라마 후반부에는 시간을 넘나들기까지 한다. 어려운 역할이었던 셈이다.

남주혁은 연기력이 좋아졌다는 칭찬에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고민이 많이 된다"고도 말했다. 칭찬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주혁의 연기에 대한 고민은 그렇기 때문에 현재진행형이다. 19일 오후 드라마 종영 직전 배우 남주혁을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너무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 드라마하우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 드라마하우스

 
- 연기가 많이 늘었다고들 하더라.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민이 많이 된다. 내가 이번에 잘했다기보다는 좋은 (배우) 선배님들과 감독님을 만났기 때문에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하는 작품에서는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항상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 고민이 된다."

- 그래도 칭찬에 대해서는 좀 즐기면 안되나? (웃음)
"나도 그런 성격이면 좋겠는데 항상 칭찬을 받는 게 쑥스럽고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칭찬을 받아야 한다면 감독님과 같이 한 배우 선배님들이 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 사람들이 남주혁 배우 연기를 보면서 많이들 울었다고 하던데.
"참 나도 요즘 들어 많이 듣는 이야기가 '(연기력이 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냐', '연기 선생님이 누구냐'는 말을 듣고 있다. 정말 열심히 했고 잘하려고 했다. 그런데, 매작품마다 그렇게 마음 먹고 치열하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이번 작품에서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닐까 싶다."

- 장례식장 메이킹 영상이 많이 화제가 됐다. 눈물 연기를 특히 잘 하시더라.
"아... 그 장면 같은 경우에는 사실 울고 싶지 않았다. 혜자 선생님이 '사는 게 참 별 거 아닌 것 같지 않냐. 나는 내 인생이 애틋하다. 너도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다'는 한마디에 모든 게 무너져내렸다. 준하라는 친구가 너무 안타깝고 슬펐다. 사실 눈물조차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사는 게 별 거 아니지'라는 대사부터 가슴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것이다. 미쳐버리겠더라."

- 그동안 연기력 면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듣는 순간도 있었다.
"너무나 많다. 연기라는 게 참 쉬운 게 아니더라. 그런데 칭찬만 받았으면 내 성격상 나태해졌을 것 같고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기에 대해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의 댓글 등이) 상처라기보다는 좋은 계기가 됐다."

- 김혜자, 한지민 배우와 함께 연기하면서 주눅들거나 하진 않았나?
"너무 잘해주셨다. 모든 선배님들이, 너무 잘해주셨다. 행복했고 많이 웃었다. 옆에서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특히 항상 혜자 선생님 옆에 있었던 것 같다."

- 김혜자와 한지민 배우가 1인 2역을 했는데, 연기를 할 때 어떻게 달리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준하는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다. 힘든 인생을 사는 과정 중에 젊은 혜자(한지민 분)라는 친구가 들어온 것이고 같이 속마음을 터놓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생긴 것이지 않나. 유일하게 마음의 벽이 있었던 게 허물어졌다고 생각한다. 짧은 인연이라도 많은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많은 걸 털어놓았는데 젊은 혜자가 어느 순간 사라졌고 다른 혜자 선생님(김혜자 분)이 다가오셨을 때 마음의 문이 닫혔다. 준하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할머니가 내게 왜 친한 척을 하지, 했던 것 같다. 특별히 준비했다기보다 상황이 흘러가는대로 열어놓고 연기했다."

- 기자로서 꿈을 꾸다가 노인에게 사기를 치는 홍보관이란 곳에 들어가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
"참 안타까웠다. 이 친구가 유일하게 의지하면서 살아갔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세상이 정말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절망 속에 빠진다. 이 친구가 정말 인생을 포기하려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홍보관에 들어가서도 타고난 심성이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잘해주고 그것만은 진심인 것 같다. 착한 친구를 세상은 왜 이렇게 힘든 쪽으로 몰아가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연기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얘가 너무 바닥까지 가니까. 그럼에도 나도 언젠가 이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다."

- 준하는 굉장히 밑바닥 인생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인데, 어떻게 감정을 생각하고 만드셨나?
"연기를 하면서 제가 인생에서 경험한 것이 많진 않지만 비슷한 게 느낀 점들이 있으면 조금이나마 제 인생 경험을 생각하면서 다가갔다. 매변 작품을 할 때마다 그 부분은 같았다. 그리고 준하라는 캐릭터에 많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 되진 않았다. 감독님도 계셨고 옆에 함께 하는 선배님들도 든든했다. 이번 작품의 경우 나 스스로 잘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 드라마하우스

 
- 한 영상 인터뷰에서 준하 역할을 연기하면서 '뭘 안 하려고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뭔가 더 보여줘야 하는 욕심이 날 수도 있었을 텐데.
"많은 선배님들과 작품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것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방송되기 전까지는 겁이 났다. '얘는 또 아무 것도 안 한다'고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생길 수도 있지 않나."

- 전작들에서는 '뭘 하려고' 했나?
"연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이번에도 연기를 했다. (웃음) 예를 들자면 캐릭터가 어떤 감정에 있을 때 이걸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도 티를 안 내는 사람이 있고 너무 슬픈데 그 자리에서 울지 않고 밖에 나가서 우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이번 작품 같은 경우 노력을 안 했다는 게 아니라 준하는 감정을 숨기는 아이일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뭔가 더 안 하려고 했던 것 같다."

- 현장에서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감독님 스타일이 너무 좋았던 게 카메라가 기본적으로 서너 대가 돌아간다. 한 번에 몰입해서 집중해 연기할 수 있었다. 혜자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대단하다고 느낀 것이 정말 대본을 열심히 보신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옆에 가서 항상 대본을 맞춰드리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 김혜자 배우는 무슨 말을 해주었나? 기억에 남는 말이 있나?
"지금처럼만 성실하게, 지금처럼만 초심을 잃지 말고 더 멋진 배우가 되라고 이야기해주셨다. (미소) 항상 연기를 하면서 칭찬을 많이 해주신다. 나에겐 솔직히 아직도 꿈 같다. 혜자 선생님과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게."

"돌아가지 않겠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 드라마하우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 드라마하우스

 
- 인터뷰를 하는 모습에서 준하가 보인다. 촬영이 끝난 건 1월인데 아직도 작품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모르겠다. 나는 원래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성격이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주변에서는 요즘 눈빛이 참 슬퍼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원래 쉽게 빠져나오려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 같은 경우는 오래 생각이 남는다. 계기들이 있는 것 같다. 요즘 좀 더 고민을 하다 보니까 생각이 많아진다. 특히 영화 <안시성> 이후로 상을 받고 좋은 선배님들도 만났는데 그럼에도 부담감이 있다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과거로 돌아가는 시계가 있다면 돌아가고 싶나?
"아니, 지금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앞으로 해야 할 게 너무 많고 해내야 할 것도 많다."

- 하고 싶은 건 구체적으로 뭐가 있나?
"우선 더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고 더 공감이 되는 연기를 하고 싶다. 또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나와 함께 하는 인연들,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해야 할 게 많지 않나. 나도 드라마를 보면서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 드라마를 누구랑 봤나?
"가족들이랑, 할머니랑 같이 봤다. 할머니가 내가 중학교 때 거실에서 TV를 보시다가 주혁이도 저기 나왔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연기자에 대한 꿈이 없을 때다. 농구 선수가 되면 TV에 보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연기를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번에 할머니랑 같이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보고 있는 입장이 됐는데 할머니의 꿈을 이뤄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하고 좋더라. 원래 일찍 주무시는데 늦은 시간까지 보시는 게 감사하고 행복하더라."

- 다음 작품은 아직 촬영 시작 안 했나?
"정확한 날짜를 아직 모르겠다. 머지 않아 들어갈 것 같긴 한데 작품 준비를 하지 않고 쉬고 있다. 이대로 들어갔다간 준하로서 들어가게 될 것 같아서."

- <역도요정 김복주>도 그렇고 <눈이 부시게>도 그렇고 곧 촬영 들어갈 <보건교사 안은영>도 여성이 중심이 되는 서사의 작품들에 출연을 한다는 인상이 있었다. 작품 선택의 기준이 어떻게 되나.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나는 기준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만 선택을 하는 편이다. 내가 맡은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 아니라 이야기가 공감이 되고 내가 맡은 캐릭터가 공감을 줄 수 있다면 역할에 상관없이 어떤 작품이든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니까 그런 평가를 받는 것 같다. 물론 거친 역할도 너무 해보고 싶다. 많은 역할을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싶다. 연기자라면 다양한 연기를 해보는 게 꿈일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인터뷰를 통해서 <눈이 부시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 21살 때 연기자의 꿈이 생겼고 당장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안 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력하자는 생각으로 10년을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서른살이 됐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고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목표랑 꿈을 확실하게 갖고 있는 것이 내게는 너무 큰 메리트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남주혁 ⓒ 드라마하우스

 
남주혁인터뷰 눈이부시게 김혜자 한지민 남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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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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