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김인순 경기도의원(맨 오른쪽부터)과 김그레이실씨, 그리고 딸을 돕기 위해 필리핀에서 온 친정 엄마.
 김인순 경기도의원(맨 오른쪽부터)과 김그레이실씨, 그리고 딸을 돕기 위해 필리핀에서 온 친정 엄마.
ⓒ 송하성

관련사진보기


자꾸 배가 나와 살이 찌나 보다 생각했던 김그레이실씨는 2017년 12월 동네 의원을 찾았다. 의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고 그렇게 간 대학병원에서 난소암 4기 진단을 받았다. 10년 한국생활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필리핀에서 살던 김씨는 2008년에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왔다. 전라남도의 한 섬에서 한국생활을 시작한 그는 남편의 폭력적인 성향 탓에 2013년 어린 딸을 데리고 도망치듯 섬을 나왔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계속 부딪치며 싸웠어요. 싸울 때는 TV, 창문을 가리지 않고 다 부쉈어요. 너무 무섭고 내가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어요. 그래서 딸과 함께 섬에서 나왔어요."

그의 남편은 이듬해 술을 마신 뒤 바다에 빠져 사망했다. 지금은 한부모 가정의 엄마로서 딸과 함께 화성시 향남의 한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난소암 진단 이후 김그레이실씨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돈을 벌지 못하니 월세도 내지 못하고 집에 먹을 것도 없다. 회사를 그만 두니 건강보험 혜택도 사라졌다. 그 전에도 여유 있는 삶은 아니었지만 암 진단으로 힘겨운 극빈층의 삶이 시작됐다. 누가 2019년 우리 곁의 다문화가족을 도울까?

응답은 뜻 밖에 가까운 곳에서 왔다. 화성시 지역사회의 여러 기관들이 김그레이실씨의 이야기를 듣고 지원에 나섰다. 먼저 화성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긴급 사례관리에 나서 엄마의 병원 입원과 수술 등에 동행했다.

한국어가 완전치 못한 김씨와 입원실을 함께 다니며 절차 등을 안내해 주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지원은 큰 힘이 됐다. 화성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2017년에도 엄마가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딸이 집에서 방치되지 않도록 다양한 양육지원에 나선 바 있다.

"한부모 가정이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엄마가 암 진단을 받게 돼 센터도 많이 놀랐어요. 병간호를 위해 친정엄마와 동생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초청하고 입원과 수술, 일상생활 등 생활전반에서 어려움이 없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함께 했죠."

행복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
 
 김그레이실씨와 친정엄마가 원룸에서 하는 부업. 자동차부품 조립하는 일로 1박스를 하면 1만원을 준다고 한다.
 김그레이실씨와 친정엄마가 원룸에서 하는 부업. 자동차부품 조립하는 일로 1박스를 하면 1만원을 준다고 한다.
ⓒ 송하성

관련사진보기

 
2018년 2월에는 당시 동네 아줌마였던 김인순 경기도의원이 김그레이실씨를 찾아왔다. 김 도의원은 수입이 없어 극빈층이 된 김그레이실씨를 돕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먼저 건강보험공단에 연락해 김씨가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향남읍사무소에 연락해 김씨 모녀가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김인순 도의원은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한 모든 다문화가족은 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며 "폭력과 질병으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된 다문화가족을 우리가 돕지 않는다면 누가 돕겠나?"라고 반문했다.

지역사회의 김씨 돕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LH공사가 나서 임대아파트 입주를 도왔다. 3월 말이면 김씨 모녀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된다. 화성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그 과정에서 임대 아파트 계약을 돕고 굿네이버스의 지원으로 필요한 가구를 들일 수 있게 됐다.

화성시자원봉사센터와 더불어민주당 화성갑지역위원회도 밑반찬 후원 등의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김씨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암에 걸렸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혼자서 많이 울었어요. 지금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니 위로가 많이 돼요. 그분들 모두에게 너무나 감사해요."

암 수술 후 향남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을 것 같았던 김씨는 이제 다시 병마와 싸워야 한다. 최근 난소암 재발의 징후가 보여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다시 치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김씨는 뜻밖의 말을 했다. 

"제가 잘못 되더라도 우리 딸은 필리핀으로 보내지 마세요. 이 아이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에서 자라야 해요."

김씨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김인선 경기도의원은 "다문화가족 김씨는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정부 지원 없이 제도권 밖에서 힘들게 생활하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며 "그에 대해 우리 지역사회 모두가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에 다 함께 지원에 나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씨는 그동안 여러 번 국적 취득 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며 "김씨와 같은 다문화가족이 국적 취득 시험에 떨어졌다고 한국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옳지 않다. 김씨가 건강을 회복하고 우리 곁에서 우리 이웃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도 게재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열심히 뛰어다녀도 어려운 바른 언론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