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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꼭 1년이 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죽을 권리'를 말하는 환자와 그 보호자, '죽음'부터 말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합니다.[편집자말]
A씨는 폐암 말기 환자로 중환자실에 있는 어머니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 뜻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법이 '임종과정에 이르는 환자'로 연명의료 중단 대상을 한정한 것은 자신의 어머니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를 만든다며 공론화를 원하고 있다.
 A씨는 폐암 말기 환자로 중환자실에 있는 어머니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 뜻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법이 "임종과정에 이르는 환자"로 연명의료 중단 대상을 한정한 것은 자신의 어머니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를 만든다며 공론화를 원하고 있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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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살고 싶었을까.

지난달 20일 오후 11시경, A씨(50대·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몇 시간 전 실종됐던 어머니와 닮은 환자가 ○○대학교병원에 실려 왔다고 했다.

서둘러 달려간 응급실에는 대동맥이 찢어지고, 고관절과 골반이 모두 박살난 어머니 이아무개씨(76)가 누워 있었다. 온몸에는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유지해줄 수 있는 줄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폐암 말기 확진을 위해 뇌MRI 촬영을 하기로 했던 날이었다.

그는 정말 살고 싶을까.

어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떼고 칼로 숨구멍을 낸 2월 27일 오후, 서울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아들 A씨가 말했다.

"계속 마약성 진통제를 쏟아 붓는데, 그럼 또 위험한지 약을 줄일 때가 있다. 그러면 의식이 돌아와 저를 바라보는데... 한쪽 눈을 겨우 뜬다. 피딱지가 붙어 있는 흐릿한 눈으로 저를 마주한다. 말은 못하면서... 오늘(27일) 오전 면회 때도 눈이 마주쳤는데... 저를 흐릿하게 보며 '너 왜 이거 끼워놨니'하는 모습으로..."

산산이 부서진 채 '연명'하는 삶

5년 전, 어머니는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쇠약해진 몸에서도 암은 자라고 또 자랐다. 2018년 11월, 평소 다니던 ○○대병원 정기 CT 검사 결과 암은 더 커져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새 죽은 아버지를 찾는 등 치매환자와 비슷한 행동을 하던 어머니는 경도인지장애 판정도 받았다. 아들은 '암이 뇌로 전이됐구나' 생각했다.

지난 2월 의사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병원에선 보다 정밀한 PET-CT를 찍자고 했다. 2월 20일 검사 결과를 본 의사는 아무래도 폐암 말기 같으니 하루 빨리 뇌MRI 검사를 해 최종 판단을 하자고 했다.

어렵게 당일 오후 9시 20분 MRI 촬영 일정을 잡았다. 검사 1시간 전, 평소처럼 집 근처 대학가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고 어머니에게 집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5분 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순찰차 2대에 동생까지 동원해 인근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머니는 없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시속 50km로 달리는 마을버스에 치여 산산이 부서진 채로 나타났다.

A씨는 ○○대병원에 요청했다. 어머니는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아래 연명의료법)'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아래 사전의향서)를 쓴 11만 5259명(2019년 2월 3일 기준)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지난해 8월 17일, 같은 병원에서 임종과정에 접어들 경우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거부한다고 등록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어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A씨는 병원에 부탁했다. 암 말기의 고통과 교통사고의 고통을 동시에 겪고 있는 어머니는, 사전의향서를 쓴 뒤 친구들에게 전화로 '나는 이거 작성해서 병원에 실려 가도 인공호흡기 같은 것 함부로 못 꽂는다'며 환하게 웃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제가 병원에 말기암 치료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못한다고 했다. 80세에 이런 상태면 생명은 유지할 수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보통 노인들이 고관절 수술 받으면 퇴원 후 3개월 정도 지나면 돌아가신다. 움직이질 못해서 근육을 손실하고, 욕창이 생겨 고생하다가.

그런데 어머니는 고관절뿐 아니라 골반도 박살나고, 대동맥 박리까지 됐다. 저는 어머니 뜻은, 어머니에게 중요한 것은 빨리 돌아가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병원 윤리위원회(아래 윤리위)를 열어달라고 요구하고, 병원에도 계속 강력히 얘기했다."


임종과정이라는 네 글자
  
A씨의 어머니 '이 할머니'가 2018년 8월 17일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법에 따라 정해진 사전의향서를 작성 후 등록기관에 등록하면 임종과정에서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중단 또는 유보할 수 있다.
 A씨의 어머니 "이 할머니"가 2018년 8월 17일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법에 따라 정해진 사전의향서를 작성 후 등록기관에 등록하면 임종과정에서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중단 또는 유보할 수 있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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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날(2월 26일) 열린 윤리위 결론은 '연명의료 유지'였다. 뇌MRI만 찍지 못 했을 뿐, 어머니가 폐암 말기 환자라는 데에는 이들 생각도 비슷했다. 문제는 법이 엄격히 정한 조건이었다.

현행법상 연명의료 중단 여부 결정은 환자가 '임종과정'에 들어섰을 때에서 출발한다. 임종과정은 ▲ 회생 가능성이 없고 ▲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다. 이에 해당하는지는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판단한다. 윤리위는 이 법 조항을 바탕으로 A씨 어머니는 임종과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A씨는 이 '임종과정'이라는 네 글자가 "법의 맹점 같다"고 말했다. 사전의향서를 썼다면, 또 불치병을 앓고 있는 시한부 환자라면 이미 임종과정에 들어섰다고 봐야한다는 뜻이다. 그는 "그게 법을 만든 진정한 취지에 따르는 것"이라며 "어머니 같은 경우 편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더 넓게 허용할 것이냐는 오래된 논쟁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스스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자살, 의사조력자살, 안락사. 흔히 말하는 존엄사는 ▲ 환자 본인의 뜻을 토대로 ▲ 의료행위를 중단한다는 점에서 연명의료 중단과 의사조력자살, 안락사가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의사조력자살과 안락사의 큰 차이는 누가 죽음의 방아쇠를 당기냐다.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한 나라들은 시한부 환자들이 의료진에게 적절한 처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약물을 투여하도록 했다. 반면 안락사 합법화 국가들은 시한부 환자들의 편안한 죽음을 위해 의사가 그들에게 필요한 약물을 투여하는 것을 허락한다.

"제 의견, 일부일 수 있지만... 그건 존엄이 아니다"

A씨는 병원을 원망하진 않는다. 하지만 "기계로 연명하는 것은 의술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계속 있을 수도 없다. ○○대병원을 떠나지 않으려면 수술 후 일반 병동으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의사들은 어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며 만류했다. 대동맥 수술은 가능한 선택지이지만,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남은 것은 퇴원 후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방법뿐이다.

다만 A씨는 자신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길 바란다. 공론화. 그가 먼저 언론사의 문을 두드린 이유다. A씨는 "어머니를 간병하며 폐암환자와 가족들의 인터넷 카페에서 많은 조언을 얻었다"며 "제가 (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면, 어머니 일이 끝났다고 상관하는 것은 아닌 듯해서 공론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어머니 같은 사례를 대한민국이 심도 있게 논의했으면 좋겠다. 적극적 안락사까진 아니어도, 제 또래 역시 '품위 있게 죽고 싶다'는 공감대가 있다. 하지만 어머니처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면 기계로 연명하는 고통을 다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제 의견이 일부이거나 다른 목소리도 있을 수 있다. 종교계는 '그래도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의견을 들어보자는 얘기다. 당장 법 개정이 안 되더라도, 어머니 일을 그냥 넘기면 (이런 사례가) 개인과 병원의 문제로 끝나고 묻힐 수 있다."


A씨는 미국의 브리트니 메이나드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악성뇌종양으로 시한부 6개월 진단을 받은 메이나드는 의사조력죽음이 가능한 오리건 주로 이사해, 자신이 정한 2014년 11월 1일 세상을 떠난다.

사망 전 그는 자신을 도운 시민단체 '연민과 선택(Compassion and Choice)'가 2014년 10월 6일 공개한 유튜브 영상에서 "저는 절대 자살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남은 시간이 다할 때까지 아름다운 이 지상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 존엄사 택한 29살 새신부... "난 자살하는 게 아니다").

"메이나드는 지인들에게 '나 다음 주에 죽을 거야, 드레스코드는 뭐고, 너희 먹고 싶은 것 갖고 오라'며 파티를 열었다. 이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 인터뷰를 보면 '되게 좋았다'고 들 한다. 메이나드는 파티 후 남편 품에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

1시간 넘는 인터뷰 동안 차분함을 잃지 않던 A씨가 흔들렸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이게 품위 있는 죽음 같다"고 덧붙였다.

"3개월 동안 그 험한 방사선 치료 받아서 머리카락 다 빠지고, 피골이 상접한 채 먹지 못하고 구토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이 아니다."
 
살아 있는가, 죽어 가는가


어머니는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랄까.

A씨는 "다 똑같지 않겠냐"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그들과 하나하나 눈 마주치면서... 고통에 찌든 게 아니라, 대소변도 못 가리고 (연명의료) 기계를 달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최대한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저도 그렇게 기억하고 싶었는데... 같이 밥 먹고, 안고, 그런 모습만 기억했는데... 곧 면회시간인데 또 봐야 한다. 어머니의 처참한 모습, 버스에 짓눌린 그 모습..."

인터뷰 후 어머니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5일 통화에서 A씨는 "이번주 초반 정도에 중환자실에서 나와 요양병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심한 경련을 일으켜 아직 중환자실"이라고 말했다. 며칠 사이에 부쩍 낮아진 목소리였다.

그는 중간 중간 기자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에서 "편히 보내드리고 싶다", "이건 의술이 아니라 정해진 매뉴얼대로 사람을 고문하는 행위"라고 했다. 11일 현재 A씨의 어머니는 아직 기관지 쪽으로 인공호흡기를 연결한 채로 중환자실에 있으며 조만간 퇴원 후 요양병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1942년 8월생 이아무개씨,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살아 있는 것일까, 죽어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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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죽을 권리" 요구하는 환자들, "시기상조"라는 전문가들

태그:#연명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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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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