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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마을에 걸린 바이오매스 화력발전소 반대 현수막, 강동면 사무소는 이 현수막들을 두 차례나 떼어내 주민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마을에 걸린 바이오매스 화력발전소 반대 현수막, 강동면 사무소는 이 현수막들을 두 차례나 떼어내 주민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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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강동면 한 마을에 우드펠릿 화력발전소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지역 주민들이 강릉시에 발전소 건립취소를 요구하고 나섰다. 더욱이 업체 측이 '가짜 주민동의서'를 시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강릉시는 지난해 10월 30일,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마을 인근에 우드펠릿(톱밥을 작은 원기둥 모양으로 압축한 목질계 바이오원료)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설비용량 9.9MW 바이오매스 화력발전소 건립을 위한 개발행위를 허가했다. 이 발전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업체인 ㈜인코테크는 본격적인 발전소 건립을 위해 다음단계 행정절차(건축허가 신청)를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렇게까지 화력발전소 건립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정작 발전소가 들어설 마을 주민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설명회부터 주민동의서까지 모두 '거짓'

주민들이 마을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사실을 몰랐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해당 업체의 부탁을 받은 마을 이장 A씨가 일부 주민만을 대상으로 형식적인 주민설명회를 연 뒤, 발전소 건립을 동의하는 내용의 '주민의견서'를 만들어 업체에 넘겼기 때문이다. 대다수 주민들이 모르는 사이 발전소 건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업체는 발전소가 들어설 모전1리 이장과 반장 등 주민대표 12명의 서명부가 첨부된 이 서류를 주민설명회 사진과 함께 강릉시에 제출했고, 강릉시는 이를 참고해 '서류심사'만으로 개발행위허가를 했다.
 
강동면 모전1리 이장 A씨가 주민들 몰래 직접 작성해 업체에게 넘겨준 화력발전소 찬성 의견서, 강릉시는 이를 참조해 발전소 개발행위를 허가했다.
 강동면 모전1리 이장 A씨가 주민들 몰래 직접 작성해 업체에게 넘겨준 화력발전소 찬성 의견서, 강릉시는 이를 참조해 발전소 개발행위를 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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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면 모전1리 이장 A씨가 지난해 10월 15일 작성한 '주민의견서'에 첨부된 각 마을 반장들의 서명부, 이 서명부는 지난해 10월 9일 작성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그러나 사업설명회 참석과는 관계없는 평소 반장회의 때 받은 서명부다. 따라서 강릉시에 제출된 발전소 사업설명회 주민동의서는 A이장이 꾸민 허위 서류로 확인됐다.
 강동면 모전1리 이장 A씨가 지난해 10월 15일 작성한 "주민의견서"에 첨부된 각 마을 반장들의 서명부, 이 서명부는 지난해 10월 9일 작성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그러나 사업설명회 참석과는 관계없는 평소 반장회의 때 받은 서명부다. 따라서 강릉시에 제출된 발전소 사업설명회 주민동의서는 A이장이 꾸민 허위 서류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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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릉시에 제출한 이 서류들은 모두 거짓이었다. '주민의견서'는 업체의 부탁을 받은 마을이장 A씨가 혼자서 허위로 작성했고, 주민대표 12명의 서명부는 사업설명회와는 관계 없는, '마을 반장회의' 때 받은 참석 확인 서명부였다. 

A이장이 연 사업설명회 또한 일부 주민에게만 개최 사실을 알리는 방법으로 참석자를 제한했다. 운영위원과 10개 반 중 일부 반장만을 특정해 '기업유치 설명회'를 한다고 문자로 공지했고, 결국 마을에서 14명만이 참석했다. 이 마저도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발전소 건립에 반발하며 도중에 자리를 떴다. 그럼에도 A이장은 사업설명회를 마치고 "주민 생활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공장건설을 양해한다"는 내용의 주민 의견서를 작성했다.

개발행위 허가가 떨어지고 두달이 지난 지난해 12월 말 치러진 마을 총회에서도 이런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일부 주민이 소문으로만 떠돌던 발전소 건립 여부를 공개적으로 물었지만 A이장은 답변을 거부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주민은 "A이장이 '일부 마을 일을 총회장에서 꺼내지 말라'며 발언 자체를 막았다"고 전했다.

A이장은 서류가 조작된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주민 의견서는 나 혼자 만든 것이 맞다"라면서 "일자리 창출 등 마을에 도움이 되게 하려고 했던 것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의욕이 너무 앞서 실수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주민대표 12명의 서명부에 대해서도 "설명회 때 크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모두 찬성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마을을 위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반대 주민 돈으로 회유 시도" 폭로도

이런 사실을 올 1월에야 알게 된 마을 주민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주민들도 모르는 발전소 건립이 허가가 날 수 있냐"면서 강릉시청 관련 부서에 항의방문을 하고 300여 명의 주민이 이름을 올린 '발전소 건립 반대 서명'을 강릉시청 민원실에 접수했다.

또한 강릉시의회와 국회의원 사무실을 찾아 발전소 건립이 부당하다고 호소중이다. 특히 조작된 서류에 이름이 올라간 일부 반장들은 "고소하겠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반발 과정에서 강동면사무소가 발전소 건립 반대 현수막을 못 걸게 방해한 일도 있었다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주민 B씨는 "마을 주민들이 붙인 현수막 8장을 강동면 사무소에서 두 차례나 걷어가 되찾아오기를 반복했다"면서 "왜 관공서까지 나서서 방해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발전소 업체 관계자가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을 돈으로 회유하려 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모전리 반장 C씨는 "지난해 12월 발전소 관계자가 찾아와 협조 요청을 했다"면서 "'발전소 들어서는 게 싫다'고 거절하자 관계자가 오만 원짜리가 비치는 두툼한 봉투를 방바닥에 내려놓고 나가려 했다. 그래서 봉투와 함께 돌려보냈다"라고 말했다.

또한 주민들은 이곳을 지역구로 둔 김기영 시의원이 발전소가 들어서는 사실을 알고도 침묵했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마을 주민들이 현수막을 붙이고 반대하면서 알았지 그 전에는 전혀 몰랐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김 의원이 지난해 10월 A이장이 연 사업설명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주민은 "설명회가 끝날 무렵 김 의원이 왔다"면서 "발전소 건립은 이날 공개적으로 나온 이야기인데 사전에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강릉시의 위험한 답변 "법적 문제 없으면 그만"

한편 강릉시는 이런 논란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의해 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강릉시 도시과 관계자는 "화력발전소 건립을 위한 개발행위 허가 절차에는 주민 공청회나 설명회가 필수 요건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 동의서가 필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법적 필수요건이 아니라도 충분히 주민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마을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이 제출한 서류이고, 주민설명회 사진 등이 제출됐기 때문에 마을주민들에게 모두 공지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다소 이해되지 않는 답변을 내놨다.

업체가 제출한 주민의견서가 조작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의에는 "밖에서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은 들었다. 하지만 동의서가 필수 요건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라고 답했다. 이 서류들이 개발행위 허가에 영향을 미쳤느냐고 묻자 "내가 그 질문에는 답할 이유가 없다"고 답변을 거절했다.

반면 전기사업허가를 해 준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발전소 허가에 주민 공청회나 설명회가 법적인 필수 요건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지자체가 주민생활에 영향을 주는 경우에는 민원 발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들은 곧 화력발전소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고 예고했다.

발전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업체 관계자는 "이장에게 동의서를 요청한 사실은 있지만 허위로 서류가 만들어진 것인지는 몰랐다"며 "우드펠릿 화력발전소는 정부가 권장하고 있는 만큼 마을 주민들과 잘 협의해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태그:#강릉, #화력발전소, #우드펠릿, #강릉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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