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리니 감독

라바리니 감독 ⓒ 국제배구연맹

 
히딩크 감독과 수제자 박지성·이영표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다. 그런 그림이 2019년 여자배구 대표팀에도 나올 수 있을까.

한국 배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인 라바리니 감독이 자신의 배구 철학을 확고하게 밝혔다. 그는 지난 1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 호텔에서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실현할 배구 스타일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의 발언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내 배구 스타일은 공격적이다. 서브부터 공격을 전개하고, 서브를 미들 블로커가 받아서 전술을 전개하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세터와 리베로를 제외한 4명의 공격수 전원이 공격 과정에 적극 가담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면서 네트를 넓게 쓰고 공격 범위도 넓게 잡아야 한다. 상대의 실수로 기회를 얻는 것보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서 공격하는 것을 좋아한다.

공격적이고 빠르고 균형이 잘 맞는 배구를 한국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복잡한 전략보다 심플하고 강한 배구에 지향점을 두고 있다. 수비에서는 디그를 잘 해야 한다. 방어를 위한 방어가 아니라 공격 기회를 잡기 위한 방어로 디그가 중요하다. 공격과 수비를 유기적으로 잘 조합해서 시스템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라바라니 감독의 설명을 한 줄로 요약하면, '전형적인 남미·유럽형 스피드 배구'라고 할 수 있다. 철저히 시스템 배구이자 토털 배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한국배구 숙원 '스피드'... 리시브 타령은 '그만').
 
특히 스피드 배구는 서브가 갈수록 강해지면서 퍼펙트 리시브가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전략이다. 서브 리시브가 조금 나쁘거나 이단 연결 상황에서도 세터와 공격수 전원이 빨리 준비하고 다양한 공격 루트를 통해 득점 성공률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스피드 배구에서 공격과 수비력을 겸비한 완성형 레프트,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시간차 공격), 센터진의 중앙속공·이동공격 비율, 세터의 나쁜 볼 처리 능력, 서브 강화 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라바리니, 스피드 배구로 '남미 제패-에자즈바쉬 격침'

라바리니 감독의 배구 철학에 무게를 실어주는 요소는 또 있다. 본인이 이끌고 있는 미나스 팀이 바로 세계 정상급 수준의 스피드 배구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라바리니 감독은 현재 브라질 여자배구 리그 미나스 테니스 클럽(Minas Tenis Clube)의 감독을 맡고 있다.

미나스는 올 시즌 남미에서 가장 잘나가는 팀이다. 6일 현재 2018~2019시즌 브라질 리그 정규리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정규리그와 병행해서 치러진 각종 대회에서도 3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2018 미네이루 선수권 대회(Mineiro Championship), 2019 브라질 컵 대회, 2019 남미 클럽 선수권 대회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특히 남미 최강 팀을 가리는 '2019 남미 클럽 선수권 대회'(2.19~23)에서 4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2019 클럽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권까지 획득했다.

지난해 12월 초에는 중국에서 열린 '2018 클럽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올렸다. 이 대회 준결승전에서 김연경 소속팀인 에자즈바쉬에 3-2로 승리하며, 배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모두 '라바리니표 스피드 배구'가 일궈낸 업적들이다. 지도자 경력 중 올 시즌이 가장 성과가 좋다. 세계 정상급 명장 반열에 올라서기 직전의 떠오르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배구계는 라바리니 감독이 남미 클럽을 제패하고, 세계 최강 팀인 에자즈바쉬를 무너뜨린 놀라움을 오는 8월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한국 여자배구가 러시아를 상대로 재현해주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김연경·양효진·김수지 '최장신 3인방' 은퇴 이후 대안

사실 라바리니 감독이 시행하고 있는 스피드 배구는 새로운 게 아니다. 2000년대 브라질 대표팀이 처음 도입해 세계 배구계를 제패했고, 그 이후 10년이 넘게 세계 배구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한국 남녀 배구 대표팀도 오래 전부터 스피드 배구 시스템을 시도하고 지금쯤 완성 단계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 프로배구인 V리그는 외국인 선수 위주의 '몰빵 배구'가 주도하면서 세계 배구 흐름과 정반대로 흘러왔다. 이는 남자배구의 국제경쟁력 추락으로 이어졌다. 한때 한국 남자배구는 아시아에서 정상권을 다투며 세계 강호들을 종종 무너뜨리기도 했다. 지금은 아시아 4강권에서 벗어나 사실상 중위권 국가로 전락했다.

여자배구는 세계 최고의 완성형 공격수인 김연경의 존재로 단체 구기 종목 중에서 드물게 최근 2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다. 이는 여자배구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기폭제가 됐다.
 
'좋았어' 2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배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배구 8강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기.

한국 김연경 등 선수들이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여자 배구대표팀의 모습. 한국 김연경 등 선수들이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김연경 이후다. 김연경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할 가능성이 있다. 김연경만 은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김연경 다음으로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여 왔던 양효진과 김수지까지 대표팀 센터 라인이 동반 은퇴할 가능성이 있다.

더군다나 김연경(32세·192cm), 양효진(31세·190cm), 김수지(33세·188cm)는 대표팀에서 최장신 라인이다. 한국 여자배구가 세계랭킹 9위를 유지할 정도로 주요 국제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며 선전한 배경에는 김연경의 존재와 더불어 대표팀의 주전 선수 평균 신장이 세계 강호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았던 점도 큰 요인이다. 문제는 이들 3인방이 은퇴를 할 경우 여자배구 대표팀이 순식간에 단신 군단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배구계와 전문가들은 김연경 은퇴 이후 여자배구의 국제대회 성적이 급추락하고, 현재의 인기도 하향세로 전환할 수 있다며 우려를 하고 있다. 라바리니호의 성공적인 안착이 필요한 이유이다.

세계 배구, 빨라지는 장신화·세대교체... 한국만 '뒷걸음질'

최근 세계 배구는 남자배구와 여자배구 모두 뚜렷한 흐름이 확인되고 있다. 스피드 배구를 기본 바탕으로 하면서 장신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주 공격수의 연령대도 20대 초반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유럽·남미 강호들에 국한된 게 아니다. 아시아권 국가들까지 속속 장신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배구는 남녀 모두 스피드 배구, 장신화, 세대교체 흐름과 반대로 가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배구협회(아래 배구협회)가 배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다. 라바리니 감독이 단순히 스피드 배구 이론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팀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제 초점은 여자배구 대표팀의 주전 멤버인 '베스트 7'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라바리니표 스피드 배구를 실현하는 건 결국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라바리니 감독의 수제자로 떠오를까. 여자배구가 도쿄 올림픽으로 가기 위해서는 김연경 이외에 라바리니호에서 빛이 나는 선수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 그런 선수가 최소한 2~3명은 탄생해야 도쿄 올림픽 티켓을 딸 수 있고, 올림픽 메달 도전이라는 거사도 도모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라비리니 감독이 외국인 체력 트레이너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외국인 '기술 전담 트레이너'를 직접 데리고 오겠다고 요청하고, 배구협회가 이를 흔쾌히 수용한 모습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왕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다면 '코칭 스태프 사단'이 한꺼번에 오는 게 효율적이고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베스트 7' 완전체 등장... VNL '한국 홈경기' 유력

라바리니호의 '베스트 7'이 언제 완전체의 모습을 드러낼 지도 관건이다. 가장 유력한 시기는 오는 6월 18~20일 한국에서 열리는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여자배구는 네이션스 리그 1주차(5월 21일~23일)는 세르비아로 날아가 세르비아, 네덜란드, 터키와 경기를 펼친다. 2주차(5월 28일~30일)은 중국에서 중국, 태국, 벨기에, 3주차(6월 4일~6일)는 미국에서 미국, 브라질, 독일, 4주차(6월 11일~13일)는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러시아, 불가리아, 5주차(6월 18일~20일)는 한국에서 일본, 폴란드, 도미니카와 각각 경기를 갖는다.

네이션스 리그의 살인적인 일정상 5주 내내 주전 선수 위주로 경기를 할 수는 없다. 다만, 올해의 경우 상당수의 국가가 네이션스 리그 중후반에는 주전 멤버를 풀가동해 전력을 점검할 가능성이 높다. 8월 2~4일에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걸린 올림픽 세계예선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라바리니 감독 입장에서도 네이션스 리그 중반까지는 후보 엔트리 22명 전원을 고루 투입하면서 기량을 확인한 뒤, 올림픽 세계예선전에 나설 '베스트 7'은 5주차 한국 홈경기에서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간격, 홈경기 이점, 김연경의 대표팀 합류 시기 등을 감안하면, 베스트 멤버를 풀가동할 최적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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