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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무우전매 선암사 원통전 뒤편의 600년 된 백매와 각황전 돌담길 홍매 두 그루는 2007년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되었다. ⓒ 변영숙

애인같은 절이 있다.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절, 자꾸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절, 내게는 전라도 순천의 선암사가 그렇다. 왜 그리 좋으냐고 물으면 "그냥 좋다". 사람 좋아하는 데 딱히 이유가 없는 것처럼.

선암사하면 무조건 '늙은 매화'다. 고매 한 그루만 있어도 그 향이 천리만리를 뻗어간다는데 선암사에는 수백 년 된 노매 20여 그루가 향으로 유혹하니 매화가 피는 계절이면 선암사로 달려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선암사 와송 선암사 무우전매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선암사 와송. ⓒ 변영숙

기이하게 구부러지고 뒤틀린 가지에서 피어나는 선암사 매화의 자태는 아리도록 곱고, 향은 육당 최남선의 말처럼 "코가 에어져 나가는 듯"하다. 누군가는 선암사 매화에서 농염한 자태의 여인을 느낀다지만, 나는 늙은 부모의 손등과 굵은 주름이 연상된다. 그래서 봄이면 늙은 어미가 기다리는 고향집을 찾듯 자연스레 선암사가 떠오르는 것이다. 나에게 매화는 닿을 수 없는 아련함과 그리움이다.
 
선암사 무우전매 선암사 각황전 돌담길에는 수 백년 매화 2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 변영숙

선암사 매화는 고려시대 대각국사가 절을 중창할 무렵 삼성각 앞의 '와송'과 함께 심었다고 상량문에 전한다. 2007년 '선암사 무우전매', 정확히 원통전 뒤편의 600년 된 백매와 무우전 돌담길의 홍매 두 그루가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되었다.

"매화나무가 늙어서 이제 꽃이 예전만 못해."

몇 해전 무우전 돌담길에서 지나가던 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처럼 꽃들도 늙고 생명을 다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세상의 순리임을 스님이 툭 던진 말씀에서 새삼 깨우친다.

선암사 뒷간
 
선암사 뒷간 선암사 뒷간은 영월 보덕사와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전남문화재자료 214호) ⓒ 변영숙

선암사 뒷간(해우소)은 맞배지붕을 한 고풍스러운 목조건물로 영월 보덕사 해우소와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전남문화재자료 214호). '깐뒤'라는 안내판이 없다면 누가 이 건물을 뒷간이라 여길까 싶을 만큼 멋스러울 뿐만 아니라 통풍이 잘 되어 화장실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시인 정호승은 <선암사> 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은 바 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선암사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나무창살 안으로 선암사의 바깥 풍경이 오롯하게 들어온다. 창살 하나 사이에 있을 뿐인데 바깥 세상이 퍽이나 수선스러워 보인다.

선암사 뒷간은 천길 낭떠리지처럼 깊다. 선암사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으면 나무판자 하나에 의지해 깊이를 알 수 없는 '허공'에 떠 있는 셈인데,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가 꽃이고 바람인데, 그것을 모르고 평생 꽃과 바람을 찾아 허공을 헤매이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득도'의 기쁨을 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선암사 편백나무 숲
 
선암사 숲 졸참나무, 서어나무, 삼나무, 편백나무 등이 자라는 선암사 숲은 겨울숲 답지 않게 황량하지 않고 싱그럽다. ⓒ 변영숙

밤새 내리던 비가 개었다. 수도권은 미세먼지로 하늘이 온통 뿌옇고 숨 쉬기도 힘들다는데, 선암사 하늘은 마냥 맑고, 나무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겨울 햇살은 그지없이 투명하다.

선암사는 졸참나무, 서어나무, 상수리나무, 동백나무, 산죽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등 여러 종류의 활엽수들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을 자랑한다. 특히 겨울에도 초록의 싱그러움을 자랑하며 쭉쭉 뻗어 있는 삼나무와 편백나무들 덕에 선암사 숲은 사시사철 생동감이 넘친다.
 
선암사 편백나무숲 선암사 편백나무숲은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심어졌다. 따뜻하고 습한 곳에서 잘 자라는 편백나무의 습성때문에 일제는 주로 남부지방에 편백나무를 많이 심었다. ⓒ 변영숙

원산지가 일본인 삼나무와 편백나무들은 따뜻하고 습한 기후에서 잘 자라고 단단하고 변형이 적어 쓰임새가 많아 일제강점기 일제가 주로 남부 지방에 삼나무와 편백을 심었다. 남부지방에 잘 자란 편백나무 숲이 많은 이유 중 하나다.

선암사에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온 스님들이 활엽수가 대부분인 선암사 숲에 삼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삼인당과 일주문 근처와 운수암 가는 길에 삼나무 숲을 볼 수 있다. 편백나무 숲은 조금 더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대각암 올라가는 길 옆쪽에 '편백나무 숲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송광사로 넘어가는 큰굴목재쪽으로 시원한 편백나무 숲이 펼쳐진다.
 
선암사 삼인당 선암사 일주문 앞의 삼인당은 불교의 세 가지 근본 원리를 새기는 뜻을 담고 있다. ⓒ 변영숙

긴 타원형의 아름다운 연못 '삼인당'은 불교의 세 가지 근본교리 즉,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새기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삼나무들은 이곳에도 마치 불법을 수호하듯 서 있다.

선암사 야생차밭과 달마전수각
 
선암사 야생차밭 일주문근처와 칠장선원 뒷편으로 천년을 지켜온 천 여평의 야생차밭이 펼쳐져 있다. ⓒ 변영숙

일주문 근처와 칠전선원 뒤편으로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선암사 야생 자생차밭이 펼쳐진다. 삼인당과 일주문 사이에 약 천 평, 칠전선원 뒤 약 5천 평, 대승암 옆에서부터 송광사 가는 길목의 산밭에 약 만 평에 이른다.

삼인당 차밭은 도선국사가 처음 조성하였고, 칠전선원 뒤 차밭은 중흥조 대각국사가, 산밭의 차밭은 선암사 주지스님을 지내신 지허스님이 1996년 조성하였다.

우리나라의 자생차의 역사는 유구하다. 혹자는 828년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나무 열매를 가져와서 지리산 남쪽에 심기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차의 유래라고 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이미 차 문화가 시작되었다.

2세기 금관가야의 왕비인 인도의 허황옥이 시집올 때 차씨와 차를 가져왔다고 하며, 4세기에 인도의 승려 행사존자(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지금의 영광 불갑사, 나주 불회사, 벌교 징광사를 창건하고 차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일본사기'에는 7세기초 백제 스님 행기보살이 일본에 차를 처음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암사의 야생차밭은 오랜 세월 우리 풍토에 맞게 가꾸어지고 뿌리를 내린 외래종이 섞이지 않은 '자생차나무밭'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기에 더욱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숭유억불과 일제강점기, 근현대의 고단한 시기를 지나면서도 선암사 야생차밭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선암사 스님들의 각별한 노력 덕이니, 한국 자생차는 선암사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선암사 야생차밭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선암사의 차밭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선암사 스님들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 변영숙

선암사에 머무는 동안 스님께 부탁하여 선암사 천년 차밭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겨울인데도 선암사 차밭은 온통 초록빛으로 넘실댄다. 차 밭 너머 쭉뻗은 나무들과 선암사 전각의 지붕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비경임이 분명하다.

차나무꽃은 서리가 내리는 10월에서 12월 사이에 꽃을 피우고 곡우 무렵에 첫 찻잎을 따기 시작한다. 찻잎은 몇 차례의 덖음 과정을 거쳐 비로소 차가 된다.

찻잎을 따는 시기가 되면 선암사는 분주해진다. 요즘은 일손이 부족하여 마을사람들까지 동원된다고 한다. 작고 여린 잎을 상처없이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따는 일은 숙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와서 따겠다'고 했다가 보기좋게 퇴짜맞은 셈이다.
 
선암사 무우전 부엌 무우전 부엌의 솥단지들은 차를 '덖는'데 사용된다. ⓒ 변영숙

차나무는 땅속에 깊게 뿌리를 내려 혼신의 힘으로 성장하여 가지에 균등하게 생명을 나눠주며 자라나서 차꽃을 피우고, 차씨를 맺게 한다. 명상과 수행생활을 하는 스님들은 이러한 차나무와 차를 늘 곁에 두었다.

선암사 칠전선원 달마전은 이러한 선암사의 다맥을 이어가는 다각으로, 뒤편에는 돌을 깍아 만든 아름다운 '수각'이 있다. 수각은 돌을 깍아 만든 모양과 크기가 모두 다르며, 통나무와 대롱을 연결하여 자연스럽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끔 되어 있다.

조계산 선암사 계곡에서 발원한 물은 야생차밭을 거쳐 통나무를 타고 수각으로 흘러든다. 첫번째 네모난 수각에 담긴 물은 부처님께 바치는 청수나 차를 다릴 때 사용된다. 두번째 타원형 수각물은 먹는 물이며, 세번째 큰 둥근수각의 물로는 쌀이나 과일을 씻고, 마지막 수각의 물은 허드레일에 사용한다고 한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다회(茶會)를 즐겼던 고승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암사 달마전수각 선암사 달마전에는 스님들이 명상수행을 하며 차를 다리기 위해 만든 돌로 만든 아름다운 수각이 있다. ⓒ 변영숙

달마전에서 돌담길을 따라 무우전과 각황전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높다른 나무 대문을 열면 너른 마당을 가로질러 선방과 요사채로 사용되는 무우전 건물이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선암사 무우전 선방과 요사체로 사용되는 무우전 ⓒ 변영숙

각황전은 무우전 뒤편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고, 원통전처럼 날렵하게 생겼다. 전면 1칸, 측면 1칸의 소박한 각황전에는 금칠을 한 불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마당에 묻힌 상태로 발견된 이 불상이 도선국사가 남긴 3대 유산 중 하나인 바로 그 철불이다.

스님은 각황전까지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내 덕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것을 '주객전도'라고 해야 하나.
 
선암사 각황전 무우전 뒷편에 자리잡은 각황전에는 도선국사가 조성한 철불이 모셔져 있다. ⓒ 변영숙

나오면서 보니 무우전 부엌에 차를 '덖는' 커다란 솥단지들이 놓여 있다. 머지 않아 선암사 솥단지들이 바빠지겠다.
태그:#선암사, #선암사야생차밭, #달마전수각, #선암사각황전, #선암사편백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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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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