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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3.1 종로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군중들 (사진출처:서문당) * 당신은, 우리는 저 자리에 함께 할 수 있겠는가?
▲ 1919. 3.1 종로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군중들 (사진출처:서문당) * 당신은, 우리는 저 자리에 함께 할 수 있겠는가?
ⓒ 서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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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의 기점을 1919년 3ㆍ1혁명으로 비정한다고 해서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근대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전근대에서 곧장 일제식민체제로 전락한 우리나라는 3ㆍ1혁명을 통해 낡은 전근대의 군주체제와 외세지배 질서를 동시에 거부하는 '2중혁명'을 수행하였다.

3ㆍ1혁명은 반식민, 반봉건 체제를 거부한 민족사적인 대전환이었다. 따라서 현대사의 기점은 바로 3ㆍ1혁명이다.

올해는 3ㆍ1혁명 100돌임과 동시에 한국현대사의 출발시점이기도 하다. 지금은 다소 달라졌지만 독재정권과 그 아류 사이비 민간정부 시대에는 학생들에게 현대사보다 중세사나 고대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가르쳤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현대사 연구가 대부분이 중세사와 고대사 연구로 방향을 바꾸었다. 나치정권을 비판하자니 겁이 나고, 덮고 가자니 학자적 양심이 걸리고 해서 아예 전공을 바꿔버린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
 1948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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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정권은 현대사를 축소하고 왜곡하는 방식을 택했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태동한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더욱 세력을 키워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는가 하면 1948년 8ㆍ15정부수립을 '건국절'로 포장하여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활동을 축소하려 들었다. 족벌신문과 어용학자들을 앞장세우고 교육부 관료들이 지원하는 형국이었다.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크로체는 "모든 진정한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며, 스페인의 생철학자 오르테카는 "역사는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의미에서 현재에 관한 학문"이라 하였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역사철학자들이 모든 역사의 출발 지점을 '현재'에 두고 있다. 이들만의 주장도 아니다. 독일의 역사가 레싱은 1759년에 이미 현대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는 진정한 역사가의 이름이 오직 자기 시대와 자기 조국의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에게만 부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오직 그만이 스스로 증인으로 등장할 수 있고, 또 후세인들에 의해 바로 그런 사람으로 높이 평가받길 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는 라틴어 con-tempus라는 어원에서 보듯이 '동시대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대의 문제를 역사적 관점과 역사학적 방법으로 밝혀내는 것"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게시된 임정 지도자(왼쪽부터 이승만, 박은식, 이상룡, 홍진, 김구, 이동녕 선생)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게시된 임정 지도자(왼쪽부터 이승만, 박은식, 이상룡, 홍진, 김구, 이동녕 선생)
▲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게시된 임정 지도자(왼쪽부터 이승만, 박은식, 이상룡, 홍진, 김구, 이동녕 선생)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게시된 임정 지도자(왼쪽부터 이승만, 박은식, 이상룡, 홍진, 김구, 이동녕 선생)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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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 선생은 3ㆍ1혁명을 중심으로 하여 1884년 갑신정변부터 1920년의 봉오동대첩과 청산리대첩 등 독립군 전투까지 일제침략에 대항한 독립투쟁사를 담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1920년 망명지 상하이에서 간행하였다. 

백암은 이에 앞서 1915년에는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지은 바 있다. 이때의 '통사'는 아플 통자를 써서 민족사의 아픈 역사를 통사로 정리하였다. 당신 생전에 조국이 해방되면 '건국사'를 쓰고 싶다고 했으나 1926년 67세로 서거함으로써 미완의 과제로 남겼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가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에 비치되어 판매되고 있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가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에 비치되어 판매되고 있다.
▲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가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에 비치되어 판매되고 있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가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에 비치되어 판매되고 있다.
ⓒ 유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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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 이후,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은 그야말로 '혈사'였다. 

친일매국노들은 호의호식했지만 독립운동가들은 생명을 내걸고 일제와 싸웠고, 국민은 죽지 못해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8ㆍ15 해방을 맞았다. 해방이 되었으나 독립은 아니었다. 우리 힘으로 쟁취하지 못한 해방은 분단으로 나타나고 6ㆍ25 동족상쟁과 이승만 백색독재, 4ㆍ19혁명,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이어졌다. 

이후 진행된 현대사는 유신독재와 민주화, 전두환 신군부와 광주민주화운동, 5공폭압과 6월항쟁, 경제발전과 빈부양극화, IMF와 특권층, 극도의 반공정책과 남북화해협력, 사이비 문민정권과 민주주의 유린, 국정농단과 촛불혁명 등 다른 나라의 경우 1천년에 겪을 사건ㆍ사태를 우리는 지난 100년에 모두 겪었다. 그만큼 국민의 고초가 심했고 환희의 순간은 짧았다. '아플 통'의 통사라 하겠다. 

100년 전 3ㆍ1혁명으로부터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 최근 이명박ㆍ박근혜에 이어 사법농단의 우두머리 양승태의 구속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 동안에 있었던 중대 사건 100가지를 들어 살피고자 한다. 

단순히 나열식이 아니라 사건의 배경과 의미를 분석하여 역사의 거울로 삼았으면 한다. 하지만, 능력의 한계로 독자들이 공감하는 성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백암 선생의 '혈사'와 '통사'의 이름을 빌리고, 그 정신을 따르고자 할 뿐이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화이관(華夷觀)으로 세상을 보았듯이, 이 땅의 일부 언론인과 지식인 중에는 아메리카니즘으로 세상을 진단하고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 족벌 신문ㆍ방송과 그 계열의 지식인들이 특히 심한 편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ㆍ인구 5000만 명 이상이 조건이라는 '3050클럽'에 가입한 나라인데도, 여전히 외국 군대에 안보를 의지하려는 아메리카니즘의 중독자들은 조선시대 화이론자들의 세계관과 별로 다르지 않다. 크게 성장한 청년이 유모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잉잉거리는 꼴이다. 

부끄러운 모습은 그들의 존재만이 아니다.

지난해 수출액이 6,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3050클럽' 가입국이 되었다고 자부하지만 무주택가구, 가계부채, 청년실업, 최저임금미달 노동자, 환경오염, 자살률ㆍ출산률ㆍ국가청렴도ㆍ빈부격차 등 부끄러운 수치는 세계 최악 수준이다. 근대화와 수출산업의 과실을 소수 재벌과 특권층이 비정상적으로 독차지한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촛불의 분노, '박근혜 즉각 퇴진' 3일 오후 서울 광화문일대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촛불의 분노, "박근혜 즉각 퇴진" 3일 오후 서울 광화문일대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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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혁명의 성과물로 태어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를 채택한 지 100년이 되는 오늘까지 선열들의 피와 국민(시민)들의 땀으로 '민주'는 어느 정도 정착시켰으나 '공화'와 '자주'는 여전히 먼 곳에 머물고 있다. 

'더불어 살기'보다 '독차지'하여 즐기려는, 자주정신으로 살기보다 '의존해서' 살려는 한국사회 상류층의 탐욕과 구조적 지배력은 촛불혁명도ㆍ촛불정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강화ㆍ세습되고 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친일 또는 부역의 대가로, 그리고 독재정권과 유착하면서 자제를 교육시키고 재부를 독점하여 신문사ㆍ대학ㆍ연구소ㆍ기업을 일구고, 끼리끼리 상호 연대하면서 "우리가 남이가"를 통해 거대한 권력구조를 형성하였다. 민주공화제 100년사에 나타난 불가사의한 괴물현상이다. 
  
 1945년 11월 3일 환국 전 중경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백범과 임정 요인들이 사진을 찍었다.
 1945년 11월 3일 환국 전 중경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백범과 임정 요인들이 사진을 찍었다.
ⓒ 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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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 동안 독립운동ㆍ민주화운동은 을(乙)들이 하고, 갑질은 친일파와 독재세력이 독점하였다. 국회ㆍ사법부ㆍ검찰ㆍ족벌언론ㆍ거대교회ㆍ재벌들의 막말과 몰염치ㆍ탈법ㆍ가짜뉴스ㆍ초호화ㆍ부도덕ㆍ타락상을 국민은 익히 알고 있다. 그 폐해를 모두 알고 있지만, '개혁정부'도 꼬리 자르기나 봉합시술 정도에 그치고 핵심부, 병원체는 손도 대지 못한다.  

어쩌다 민주세력이 집권하게 되면, 갑(甲)들은 연대하여 기득권 지키기를 넘어 '좌파'로 몰고 남북화해 협력을 '퍼주기'로 매도하면서 개혁과 남북화해를 가로막는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 이어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재연되고 있다. 그래서 개혁과 남북화해가 번번이 중도에 그치고, 얼마 후 그들은 다시 기수를 바꾸어 정권을 장악했다. 

한국사회가 외형적으로는 대단히 다이나믹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도 거대한 '빙산'은 꼼짝도 하지 않는, 대단히 정체된 사회현상이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이란 이름으로 톱질을 하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족벌언론ㆍ거대교회ㆍ검경과 정보기관ㆍ재벌구조ㆍ사법부ㆍ극우단체 등 '빙산'은 여전히 건재하면서 비웃고 정부ㆍ여당의 실책 '한 방'을 노리고 있다. 

그동안 써온 평전 연재를 잠시 뒤로 미루고 지난 100년 세월 우리 선대와 당대가 겪고 치룬 현대사를 정리하면서, 미래 세대에게는 더이상 피흘려 '싸우지도(혈사)', '아픈역사(통사)'도 아닌 평화롭고 자주적이고 민주와 공화주의가 실현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연재를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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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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