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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역사 지도의 역사 대전
▲ 지도의 역사 지도의 역사 대전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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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 해 열심히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전도를 했습니다. 가장 많은 반응은 '어, 왜 여태 몰랐지' 하는 거였고 그 다음 많은 반응은 '국뽕'이라는 거였습니다.

이 문제를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강리도 자랑이 자아도취적 과대망상이 아니라고 몇 차례 설명한 바 있지만 다시 한번 언급할까 합니다. 하바드대를 비롯한 외국의 유수한 대학들과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근래 강리도를 학습·탐구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미국의 e-learning 회사 Course Hero(www. course hero.com)의 사이트를 열고 Kangnido를 검색해 보면 70개가 뜹니다.
  
 Course Hero 사이트
 Course Hero 사이트
ⓒ coursehe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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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나 고등학교에서 강리도를 강의, 학습 탐구 자료, 과제물, 시험 출제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에 대한 정보입니다. 몇 가지 사례만 엿보겠습니다.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우리의 강리도로 무얼하고 있는지를 보려는 것입니다. 먼저 하버드대를 봅니다.
  
 Course Hero 사이트
 Course Hero 사이트
ⓒ coursehe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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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면만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하버드에서는 세계 경제사의 맥락에서 강리도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2014, 2015, 2018년도). 다음은 노벨상 수장자를 여러 명 배출한 토론토 대학으로 가봅니다.
  
 Course Hero 사이트
 Course Hero 사이트
ⓒ coursehe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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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기말 시험 문제로 출제돼 있습니다. 토론토 대학에서는 매년 강리도가 강좌 및 시험 출제의 단골 메뉴입니다. 아래를 보면 질문 공세가 보통 예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Course Hero 사이트
 Course Hero 사이트
ⓒ coursehe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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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등학교 한 곳을 가봅니다. 강리도가 역사 과제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Course Hero 사이트
 Course Hero 사이트
ⓒ coursehe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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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과제 -일차 자료 탐구

아래에서 브로톤(Brotton)의 책 제 4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강리도 이미지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내용을 읽어 보고 지도를 탐구하라. 그런 다음 질문에 답하라. (...)

여기에서 브로톤의 책이란 다름 아니라 영국 학자 제리 브로톤(JERRY BROTTON)이 펴낸 <12대 지도로 본 세계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Twelve Maps)>( PENGUIN BOOKS, 2012)을 말합니다.

명저로 평가받고 있는 이 책은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론 지도로부터 현대의 구글 지도에 이르기까지 12개의 세계지도를 선정해 세계사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강리도가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원서 114~145 쪽). 우리 선조들이 한양에서 1402년(태종 2년)에 붓으로 비단 바탕에 그린 세계지도가 왜 이처럼 서양에서 조명을 받고 있을까요? 그들이 '국뽕'일까요? 이제 국뽕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올 수 없겠지요?

일본을 움직인 지도 한 장

시선을 돌려 일본의 17세기 초 세계지도를 살펴봅니다.
  
<만국회도병풍(萬國繪圖屛風)> 17세기 초
▲ <만국회도병풍(萬國繪圖屛風)> 17세기 초
ⓒ 일본 궁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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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도시도(都市圖) 17세기 초
▲ 24도시도(都市圖) 17세기 초
ⓒ 일본 궁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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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 두 작품은 각각 8폭의 병풍에 한 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서양지도와 정보를 수용해 일본식 병풍(각 178x465cm)으로 만든 것입니다. 아메리카 대륙까지를 포함한 세계 지도의 좌우변에 세계 여러 민족의 모습을 싣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두 번째 병풍에는 다수의 유럽 유명 도시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파리, 로마, 베니스, 콘스탄티노플, 세비아, 런던, 스톡홀름, 모스크바, 리스본, 알렉산드리아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7세기 초 일본의 병풍지도류를 통해 우리는 일본의 세계지리와 세계 인식에 일대 도약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일본의 세계지도는 왕성하게 진화합니다.
  
<만국총도.세계인형도(萬國總圖.世界人形圖)> 1652년 작
▲ <만국총도.세계인형도(萬國總圖.世界人形圖)> 1652년 작
ⓒ 고베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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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세계지도의 발자취는 나라의 흥망성쇄와 그 궤적을 같이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것일까요?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핵심은 아주 단순한 데 있습니다. 즉, 세계와 통했느냐, 불통했느냐의 문제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직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당시 서양에서 제작된 가장 우수한 세계 지도를 보았습니다. 네델란드 사람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 1527~1598)의 지도였습니다. 아래를 보시죠.
    
오르텔리우스 세계도 1570년 작
▲ 오르텔리우스 세계도 1570년 작
ⓒ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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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0년 제작된 이 지도는 보다시피 아메리카 대륙을 포함한 전체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일본(아래 지도에서 'Ia pan')은 왜곡되어 있고 조선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르텔리우스 세계도 1570년 작
▲ 오르텔리우스 세계도 1570년 작
ⓒ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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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오르텔리우스 세계지도는 어떻게 일본에 온 것일까요? 믿어지지 않지만, 1580년대 말 유럽을 방문했던 일본 소년사절단이 선물로 받아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일본 소년사절단
 일본 소년사절단
ⓒ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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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신부 알레산드로 발리그나노(Alessandro Valignano, 1539~1606)의 제안에 일본의 카톨릭 신자 다이묘들이 호응해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4명의 소년(모두 14~15세의 카톨릭 신자)과 인솔자 및 보조인원으로 구성된 사절단은 1582년 나사사키를 돛단배로 출항한 지 8년 후인 1590년 귀항했습니다.

그들은 유럽인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포르투갈 에보라에서는 일본 소년들이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보기 위해 군중이 몰려 들었고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는 필립 2세 왕이 접견했습니다. 로마에서는 그레고리 8세 교황을 알현했습니다. 소년 사절단이 받은 선물 중에는 인쇄기, 세계지도, 거울, 아이보리 십자가 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런 서양 '오랑케'의 물건들은 일본에 들어와 일본인들의 눈을 열게 하고 새로운 자극을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 조선에서 최초로 서양을 방문한 것은 1883년 말~1884년 초. 미국을 방문하고 귀로에 유럽을 들른 것입니다. 일본과 비교하면 무려 300년 이상이 늦었습니다. 세계와의 접속에 있어 두 나라가 아득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이 지도의 발자취에 뚜렷히 반영돼 있습니다.

일본이 16세기 말 이래 상당기간 가톨릭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쇄국 정책을 썼던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쇄국 속에서도 세계로 통하는 통로는 열려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쇄국'을 둘러싼 활발한 연구를 통해 오늘날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쇄국-나라를 완전히 닫았다'는 인식이 대부분 부정되고 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자바현 사쿠라시에 있는 국립 역사박물관의 종합전시 제3전시실의 개장이다. (...) 나가사키·쓰시마·사쓰마·마쓰마에로 이루어지는 '네 개의 항구'를 통해 중국·네델란드·조선·류큐 등의 이국인들과 교류하며 세계와 연결되었던 점이 강조되었다."
- 로널드 토비 지음, 허은주 옮김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 33쪽  

이제 강리도에 그려진 일본지도를 일별해 보겠습니다.
  
강리도 일본 방위가 잘못됨
▲ 강리도 일본 방위가 잘못됨
ⓒ 류코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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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한 중앙에 '日本'이 뚜렷이 적혀 있고 많은 지명이 적혀 있습니다.  방위는 잘못돼 있습니다. 시계 방향으로 90도 돌아가 있는 모습니다(당시 일본에서도 일본 지도의 방위가 이러했다 함). 바로잡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강리도 일본 방위를 바로 잡음
▲ 강리도 일본 방위를 바로 잡음
ⓒ 류코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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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하단의 큰 섬이 규슈지역입니다. 남쪽에 사쓰마(薩摩)라는 지명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붉은 화살표). 이곳이 바로 심수관을 포함해 조선 도공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았던 곳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조선 도공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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