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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미세먼지로 덮인 국회의사당 주변 하늘(자료사진).
 미세먼지로 덮인 국회의사당 주변 하늘(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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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취재할 때 상임위원회가 구성되면 그 면면을 살펴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는 꼼꼼히 짚어봐야 했다.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을 다시 한번 심사하는, '상원'이라고도 불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법사위는 주로 법조인 출신으로 구성된다. 비법조인 출신 중 평소 사법 분야에 관심을 쏟아온 의원들도 단골 법사위 구성원이다. 그런데 간혹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의원이 법사위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다. 한 번은 법사위 소속 의원의 한 비서관에게 "◯◯◯ 의원은 왜 법사위에 들어온 거예요?"라고 물었다. 답변은 이랬다.
 
"저 양반 지금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잖아요."


법사위는 이른바 '인기 상임위'가 아니다. 국토교통위원회, 교육위원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과 같이 지역구 예산 확보에 도움이 되거나 현안이 많은 상임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여야 대립이 첨예한 곳이어서 오히려 의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상임위에 가깝다. 

그런데 야당 소속 한 비서관은 "(법사위는) 누군가에겐 인기인 상임위"라고 했다. "저 양반 지금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 중이잖아요"라는 말과 묘하게 겹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여야 따로 없었던 재판 청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걸려 있는 법원기(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걸려 있는 법원기(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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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사법농단 사태의 주범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혐의를 더 발견해 15일 추가 기소했다. 임 전 차장을 피고인으로 하는 재판이 이미 시작됐지만, 추가 혐의가 있으니 이것도 재판에서 다뤄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불똥이 국회로 튀었다. 추가 기소된 임 전 차장의 주요 혐의가 '정치인 관련 사건 재판개입'인데, 자연스레 그에게 사건을 청탁했거나 법률자문을 받은 국회의원 명단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지금은 전직 의원인 인물도 있지만, 집권 여당의 원내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현역 의원도 명단에 포함됐다. 자신이나 측근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청탁한 경우가 다수였는데, 지인 아들의 '바바리맨 성추행 미수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사례도 있었다.

명단에 담긴 4명 중 2명(서영교, 노철래)은 법사위 소속 의원이었다. 당시 최고위원이었던 1명(전병헌)은 상고법원 반대에 강경했던 법사위 소속 다른 의원의 설득을 위해 임 전 차장이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1명(이군현)은 법사위 소속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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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추가 혐의' 정치인은 서영교, 전병헌, 이군현, 노철래
서영교 청탁 재판은 '바바리맨 성추행 미수 사건'
 
검찰은 15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재판거래' 혐의를 추가 기소하며 서영교·전병헌·이군현·노철래의 '민원'을 받았다고 했다.
 검찰은 15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재판거래" 혐의를 추가 기소하며 서영교·전병헌·이군현·노철래의 "민원"을 받았다고 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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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아니라 모두가 덮었을 뿐

'박근혜 정부-양승태 대법원'만의 사법농단이 아니었다. 여기에 국회까지 더해졌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3권(입법, 행정, 사법)이 모두 사법농단에 연루된 것이다. 사법농단에서만큼은 삼권이 분립하지 않고 한 몸이 됐다.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절정인 상황에서 국회로까지 화살을 돌리면 사법농단 주범들만 웃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될까봐 걱정이고, 그런 지적이 나오는 것도 걱정이다. 그러나 '썩은 물'을 걷어낸다고 끝이 아니다. 구덩이가 그대로 있다면 물은 또 고이고 썩는다. 

다시 한번 "저 양반 지금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잖아요", "누군가에겐 인기인 상임위"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기자도 그 공공연한 비밀이 불편했거나, 귀찮았거나, 다가서기 어려웠던 건 아닐까 돌이켜본다.

'공공연한'이란 말 뒤엔 '비밀'이란 단어가 자주 붙는다. 그 뜻이 "숨김이나 거리낌이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인데도 공공연한 것은 수면 아래에 잠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알고 있는 모두가 그냥 덮어놓은 것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사법농단이란 괴물은 그 공공연한 비밀들이 모여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태그:#사법농단, #양승태, #임종헌, #국회,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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