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방송된 MBC <탐사 기획 스트레이트>에서는 '그날, 용산 4구역' 편이 방송되었다. 이날 <스트레이트>에서는 3000페이지에 이르는 검찰의 '용산 참사' 수사 기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수사 기록에 따르면 서울 경찰청은 용산 참사 하루 전인 19일 특공대 투입을 결정한다. 그 시각은 철거민들이 망루를 설치하던 중이었다. 즉 처음부터 진압 작전이 세워진 것이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용산 참사는 세월호와 함께 우리에게 기억된 또 하나의 아픈 사건이다. 올해로 10주기를 맞이하지만, 진상규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책임자 처벌은 시작도 못 한 상태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9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그날, 용산 4구역' 편을 취재한 김정인 MBC 기자를 만나 취재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통 받는 사람들
 
 MBC <스트레이트> 김정인 기자

MBC <스트레이트> 김정인 기자 ⓒ 이영광

 
- 6일 방송된 <스트레이트> '그날, 용산 4구역' 편을 취재하셨잖아요. 동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아픈 기억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신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엔 밝히고 싶은 것들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화재 원인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고, 경찰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거나 접촉한 정황 같은 것도 최근 경찰청 문건을 통해 드러났는데 아직 의혹이라서 좀 더 밝혀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걸 다 못한 것 같아서 끝났을 때 죄송스럽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도 컸어요. 특히 제대로 다루지 못한 부분이 있었죠. 유족동의 없이 검찰이 부검했던 부분이라든지, 초기 수사기록 3000쪽을 법원에 안 낸 이유 그리고 경찰의 검찰수사 동안 접촉해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 정황 같은 건 문건에 나와 있는데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 거 아닌 가해서 그런 부분이 아쉬웠어요. 아직도 밝혀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벌써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에요. 지난 10년 동안 탐사 프로그램에서 용산 참사를 다뤘던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1월에 발생한 사건이라 취재하신 것으로 추측되네요.
"맞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1월에 일어났고 올해가 10년째라 준비하게 됐어요. 사실 제가 1월 첫 주 방송이라는 걸 12월 초에 알게 됐어요. 준비하려고 어떤 기사를 해야 하나 살펴보다가 이충연씨(전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이 분이 예전 용산에서 아버님과 같이 운영했던 가게와 같은 이름의 가게를 남영동에 내셨더라고요. 10년이 지났지만 이분들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고 계속해서 진실을 알고 싶다는 내용의 인터뷰였어요. 그걸 보고 나서 꼭 짚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에서 스스로 진상조사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 이전에는 용산 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실상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실질적으로 그 분들이 왜 망루에 올라가게 되셨는지 자세히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잖아요. 그리고 실제적인 도심 테러가 아니었는데도 그걸 경찰과 언론에서 도심 테러로 만들었던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검찰 수사 기록 3000페이지를 입수하셨잖아요. 그걸 보면서 어떠셨어요?
"검찰 초기수사기록 3000쪽을 입수해서 봤더니, 참사 전날부터 당일까지의 상황 보고, 무전 녹취록 그리고 경찰 지휘부를 조사한 진술조서가 있었습니다. 그 조서를 보니 이게 무리한 진압이었다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 중 어떤 경찰 지휘부 조서에는 '내가 그때 상황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작전을 중지시켰을 거다' 같은 진술들이 있어요. 처음에 이런 걸 얘기했는데 검찰이 경찰의 진압 과정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그냥 넘어갔잖아요. 검찰 수사에 대해서 다시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일차적으로 들었어요.

두 번째는 그 상황을 경찰 지휘부가 몰랐던 게 맞는지 의심이 들더라고요. 왜냐면 그분들은 다 경찰 지휘망이라는 무전이 있어서 상황을 다 듣고 있었거든요. 듣는 와중에 그걸 몰랐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 방송에서는 망루 설치한 19일부터 진압 계획이 세워졌다고 했어요. 협상하다 진압을 한 것도 아니고 바로 진압 결정을 한 거잖아요.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혹시 이 부분에 대해 취재된 게 더 있나요?
"저도 그 부분이 제일 의아했습니다. 참사 전날인 19일 오전 8시 반 당시 김석기 서울 경찰청장 주재 회의에서 특공대투입이 거론됐다는 진술들이 있었고 경찰 진상조사단이 조사할 때도 그렇게 추정했었어요. 그러나 실질적으로 명확히 밝혀진 건 없죠. 왜냐면 부인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에 그 시점에서 특공대 투입이 잠정적으로 정해진 게 맞다면 너무 이상했어요. 망루를 다 짓지도 못한 상황이었고 이 분들이 망루에 올라간 지 3시간여 만에 투입을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방송에서는 의혹 제기 수준이었지만 더 많은 취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리하게 진압했던 경찰, 그 이유는...
 
 MBC <스트레이트> 김정인 기자

MBC <스트레이트> 김정인 기자 ⓒ 이영광

 
- 당시 특공대에게 시너 등 위험 물질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던데 이와 관련한 취재도 하셨나요?
"그 부분에 대한 진술을 들을 수 있었는데 서울청에서 먼저 진압계획을 만들고 특공대와 용산서에 그걸 바탕으로 진압 계획을 만들어 오라고 했나 봐요. 그 당시 특공대에서는 서울청에 있는 위험물 현황을 보거나 이를 반영해서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박OO 특공대장의 진술조서에 보면 위험물 현황을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걸로 새로 작전 짜거나 연습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실질적으로 계획한 지휘부는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말단 특공대원들까지는 전달되지 않았다는 거죠. 이건 진압 작전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인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방송 보니 그렇게 안 했어도 오후 즈음엔 해제되었을 거라는 얘기가 있었던 거 같은데.
"참사 당일 망루에 1차, 2차 화재가 있었잖아요. 1차 화재가 난 다음 특공대원들이 다 빠져나왔어요. 유증기가 가득 차기도 했고 거기서 검거한 사람을 내려보내야 했어요. 또 남아 있는 철거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특공대원들은 빠져나왔어요. (검찰이) '그때 작전을 멈췄다면 어땠을까'라고 물어봤더니, 서울청 경비부장이었던 거 같은데 그분이 '그렇게 했다면 그 상황에서는 그냥 조금만 고립시킨 채 놔 뒀어도 한나절만 지나면 알아서 나왔을 것'이라고 경찰 진출 조서에서 얘기했거든요. 그런 걸 보면 얼마나 무리하게 진압했는가를 경찰 지휘부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무리하게 진압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희 취재가 더 필요한 부분 같아요. 일단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1월 18일자로 김석기 서울 청장이 경찰청장에 내정되었어요. 바로 다음 날 (철거민들이) 망루 짓고 올라갔고 거기는 8차선 도로라서 잘 보이는 곳이잖아요.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법 집행'이란 기조를 부르짖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청장 내정자로서 무리하게 진압한 건 아닌가란 의혹이 있고 본인은 계속 부인하시죠.

또 하나 저희가 김석기 청장 관련해서 방송에 담지 못했던 게 하나 있어요.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2008년 8월에 만든 문건이 있었는데 여기 보면 촛불집회 대응 잘한 사람으로 김석기 청장을 꼽아 칭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이명박 정부에서 김 청장을 높게 평가했던 상황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용산 참사에 등장하는 게 '삼성물산'이란 대기업이에요.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은 부인하지만, 삼성물산이 아니었다면 결과가 다르지 않을까라는 여론이 있어요.
"그 부분이 제가 취재하면서 가장 밝히고 싶었던 부분 중 하나예요. 취재를 더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에요. 그런데 대검 진상조사단(검찰 과거사위)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그 부분이 추가로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 언론 보도 문제도 방송에 나오던데 용산 참사가 이 상황이 된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몇 퍼센트 정도일까요?
"정확히 몇 퍼센트라 말하긴 어렵지만, 책임은 있다고 봅니다. 이충연씨를 인터뷰했을 때 방송에 담지 못했던 부분인데요. 당시 인터뷰 중 이충연씨는 편견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징역형을 받고 들어간 감옥에서 교도관이 자신을 뚫어지게 봤답니다. 그렇게 한참 쳐다보던 교도관의 첫 마디가 'TV에서 하도 그렇게 나오기에 우락부락한 줄 알았는데 왜소해서 놀랐다'는 말이었다는 거예요. 언론이 얼마나 이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보이게 만들었으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을까 해서 그 부분이 가장 마음 아프셨다고 하더라고요. 

참사 당일 오후부터 경찰청 수사국의 사람들이 모여서 언론과 검찰 수사에 대응하기 시작해요. 저희가 방송에서 공개한 경찰 문건은 1월 25일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게 보고된 문건인데, 언론사 간부들과 접촉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시켜서 일일이 댓글 달게 한 정황이 문건을 통해서 보였어요. 그렇게 한 경찰이나 경찰과 언론의 유착은 아직 밝혀져야 하는 부분이지만 실제로 논조가 바뀐 부분은 있기 때문에 많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MBC의 경우 당시 국제부장이었던 김장겸 전 MBC 사장에게 외압이 왔잖아요. 경찰은 사회부가 취재를 하는데, 왜 국제부에 들어왔을까요?
"보통 경찰청 수사국의 간부들이 연락한 언론사 간부나 기자들을 분석해보니 해당 경찰과 기자가 지역이나 학교 등으로 이어진 관계가 대다수였습니다. 김장겸 전 사장의 경우도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외압을 받은 사람이) 국제부 부장인 경우는 MBC가 유일했고, 다른 언론사의 경우 전체적인 편집권을 갖는 경우나 검찰, 사회부 담당자가 대다수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 안고 있는 '용산 참사'
 
 MBC <스트레이트>의 한장면

MBC <스트레이트>의 한장면 ⓒ MBC

 
- 희생자 가족을 만나셨잖아요. 어떠셨어요?
"사실 그분들은 12월부터 1월이 오면 (참사가) 기억나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이 아프시다고 하시더라고요. 10년이 지났는데도 다들 풀지 못한 상처를 갖고 살아가시고 용산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용산에서 일하시거나 용산에서 사세요. 그게 너무 마음 아프더라고요. 빨리 그분들이 바라는 대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혹도 밝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김석기 의원도 만나셨잖아요.
"사실 당황했었어요. 왜냐면 당시 경찰 지휘부 핵심이셨고 그렇기 때문에 답변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용산 참사에 대해서 경찰 진상조사위에서 과잉진압 맞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인정하냐고 물었는데 웃으셨잖아요. 그러면서도 답은 하지 않아 저도 당황했죠. 계속 여쭤보니 대법원판결 났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느냐고 얘기하고 삼성물산에 대해서도 물으니 거기서 삼성이 왜 나오냐고 해요. 그래서 삼성이 시공사 아니냐고 하니 몰랐다는 거예요.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란 생각에 의아하기도 했어요."

- 당시 경찰 한 명도 사망했잖아요. 경찰 아버님 인터뷰도 마음이 아프던데 어떠셨어요?
"예, 저도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 용산 참사 문제는 우리 사회의 여러 이슈를 안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부동산 개발에서 원주민, 세입자들이 밀려나게 되는 문제가 있고요. 권력에 의해 무리한 일이 강행됐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이란 조직에서 경찰특공대는 상사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만 하는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고 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모습만 조금씩 바뀌어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 취재하며 느끼는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용산 참사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게 밝혀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아직도 유족을 만나면 밝혀진 게 너무 없어서 괴롭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점이 가장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아직도 경찰 특공대분들, 경찰 지휘하셨던 분들 취재하려고 전화하거나 만나면 인터뷰를 꺼리시는 분이 많아요. 왜 10년이 지났는데도 이야기를 못 해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정인 스트레이트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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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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