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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의 도시공간에서 주목받고 있는 현상은 '둥지 내몰림'으로 번역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도시재개발, 혹은 도시재생과는 구분되어 사용되는 전문적 학술용어인 젠트리피케이션은 일반대중에게도 공공연히 사용되는 대중적 시사용어가 되었다. 이는 서촌 궁중족발 사건과 같은 임차인과 건물주간의 극단적인 임대료 갈등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존 주민보다 부유한 주민들의 유입으로 인한 쇠퇴지역의 경제적, 환경적 개선을 뜻한다. 하지만, 쇠퇴한 지역의 경제적 재활성화의 이면에는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원주민들의 비자발적 이주현상이 동반되어 서구에서는 1960년대부터 빈부격차의 공간적 양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격차와 사회통합에 대한 위협이 공론화되고 있다.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은 쇠퇴한 구도심을 재활성화시킨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문화자본가 혹은 창조계층으로 불리는 젠트리파이어들이 쇠퇴한 구도심을 이국적이고 특색있는 장소로 탈바꿈시킴으로써 활기를 잃었던 공간이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우리사회가 우려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은 이렇게 재생된 구도심이 대규모 자본에 의해 발생하는 수퍼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응전략의 추진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자체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 개발업자들이 진입하고 부동산 가격 및 임대료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수퍼 젠트리피케이션의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선구적 젠트리파이어들은 이 단계에서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자신들이 창조한 공간에서 쫓겨나게 되기도 하지만, 일부 젠트리파이어들은 쇠퇴한 구도심에 미쳤던 그들의 긍정적인 영향력이 변질됨에 따라 그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상실되어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된다.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골목상권의 쇠락을 막기 위해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인 현상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먼저 침체되었던 골목길에 활기를 불어넣는 선구적 젠트리파이어, 소위 '소상공인 영웅'이 누구인지부터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문화자본을 경제자본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을 지닌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은 누구인가?

필자가 이태원지역에서 활동하는 새로운 소상공인들과의 심층인터뷰를 통해 도출해낸 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소상공인의 첫번째 특징은, 제한된 경제적 자본을 소유한 30대 청년층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태원 지역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2010년 무렵,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이태원지역에서 월세임대를 통해 작은규모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두번째 특징은, 높은 교육수준과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새로운 소상공인 대부분 대졸 이상의 고학력 소유자로 이들의 전공분야는 도시계획, 디자인, 인문학, 건축, 경영 등 다양하다. 또한 방송, 광고, 의류, 금융, 건축 관련 분야의 전문직에 종사한 경험이 있거나 현재도 종사하고 있다.

세번째 특징은, 풍부한 해외경험이 있는 문화적 자본가라는 점이다. 이들은 외국인 혹은 한국인으로 대부분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중생활을 하거나 사업 혹은 개인적인 이유로 해외출장 혹은 여행을 빈번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네번째 특징은, 경제적인 윤택함보다 삶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업방식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소상공인들은 '내 자신의 인생'을 살기위해 창업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기존의 소상공인들과는 달리 적정수준의 수입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기위해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특징은, 자율적이고 독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소상공인들이 저렴한 임대료 이외에 이태원지역에 정착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태원 프리덤'이다. 이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로 자신들의 자유로운 도시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태원 지역은 이들에게 자신들이 추구하는 '내 스타일'의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는 자유로움을 허락한 장소인 동시에 이러한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독창적인 문화경제적인 행위를 인정하는 소비자계층이 있는 곳이다. 

풍부한 해외경험과 이국적 취향을 지닌 새로운 소상공인들은 이태원지역의 단독 혹은 다세대 주택들이 밀집된 오래된 골목길의 노후 주택을 자신이 추구하는 컨셉에 맞추어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들이 창조한 공간은 해외에서 자신이 즐겨찾던 장소의 이미지를 자신들만의 해석으로 재현한 카페 혹은 레스토랑이거나, 자신들이 지닌 독특한 취향을 반영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부티크식의 독립적인 소매점이다. 이러한 상점의 분위기는 후기산업사회의 새로운 소비자 계층의 요구를 충족시키게 된다.

탈산업화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소상공인 및 소비자 계층은 강남의 '매끈한 건물'이 주는 느낌보다 강북의 '낡고 좁은 골목길'에서 빈티지한 매력을 느끼는, 비교적 제한된 경제자본을 보유했지만, 자신들이 지닌 높은 문화자본을 이용하여 대량생산이나 소비가 아닌, 자신들만의 독특하고 이국적인 상품을 소량으로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일반대중과 구분되고자 하는 사회계층이다. 

태그:#젠트리피케이션, #골목길상권, #탈산업화, #이태원, #소상공인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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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엄마 말대로 그때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 출간, 주택, 도시, 그리고 커뮤니티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다소 낯설지만 익숙해지고 있는 한국의 여러 도시들을 탐색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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