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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B급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가 새해 오래됐지만 새로운 화두를 들고 나왔다. 바로 '직장 민주주의'다. 그는 말했다. "어찌 보면 사소할 것 같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부터 기업문화, 더 나아가 우리의 사회문화, 경제의 체질까지 바꿀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자칭 "B급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가 새해 오래됐지만 새로운 화두를 들고 나왔다. 바로 "직장 민주주의"다. 그는 말했다. "어찌 보면 사소할 것 같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부터 기업문화, 더 나아가 우리의 사회문화, 경제의 체질까지 바꿀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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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보세요. 직장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너무 몰랐던 거예요. 지금 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 정권인데, 설마 안 하겠어요? 청와대부터 정시 출퇴근하고 해보세요. 돈도 들지 않아요. 그냥 하면 돼요. 더이상 일하다가 자살하거나, 김용균씨처럼 안전 미비로 억울하게 죽는 일은 없어질 거예요."

그의 낮은 목소리톤은 꾸준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김용균씨'라는 단어 앞에선 목소리를 높였다. 그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 지 1시간이 훌쩍 지났을 때였다. 우석훈 박사. 스스로를 'B급' 경제학자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의 울림은 여느 'A급' 학자들 못지않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의 입에서 '직장'과 '민주주의' 단어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우 박사의 입심은 여전했다. 목소리 톤이 높거나, 대중의 눈과 귀를 확 끌어당기는 언어를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듣다보면,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가끔 터져 나오는 원색적인 표현과 시니컬한 표정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달라진 것이라면, 어느새 머리카락에 흰색이 늘었다는 점과 두 아이의 아빠라는 점 뿐.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16번지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2006년 한미자유무역협정(FTA)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을 때, 우 박사와 첫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용감하게(?) "6000만 원 연봉 안되면 이민 가라"라고 말했다. 진보개혁정권이라는 노무현정부에서 추진했던 한미FTA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비판했던 그였다(관련 기사 : "한미FTA체결 땐 연봉 6천 이하 이민 가야").

이후 그는 우리 사회의 계층 간 불평등과 양극화, 일자리와 실업, 사회적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88만원세대>라는 책으로 대중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그가 이번엔 '직장 민주주의'를 들고나왔다. 벌써 36번째 책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엔 <모피아>라는 경제 소설까지 썼다. 그에게 "36권이면 전업작가 아니신가, 소설도 재밌게 읽었다"고 건네자 "아, (소설책은) 시대를 잘못 만나서..."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 박사와 마주 앉으며 탁자 위에 이번에 나온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한겨레출판)를 올려놓았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표지에 제목과 그림 등, 무슨 책인지 머릿속에 쏙 들어온다. "제목이 직관적이다"고 했더니, 그는 "(책) 제목에 대해 유혹도 많았지만, 정직하게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 박사의 말대로 그의 책은 정직하다. 게다가 책 속에 드러난 우 박사의 인식은 더 솔직하고 보다 근본적이다.

- 책을 읽다보니, 단순한 '직장 갑질' 문제 이상을 생각하게 됐다.
"외부에서 청탁을 받아 쓴 첫 번째 책이다. 당연히 처음에 고민이 많았다. 쓰기로 맘먹고 자료를 수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다가 초고를 (출판사에) 넘긴 다음에도 대대적으로 글을 뜯어고쳤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이 많았다. 어찌 보면 사소할 것 같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부터 기업문화, 더 나아가 우리의 사회문화, 경제의 체질까지 바꿀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인터뷰 초반부터 '한국경제 체질을 바꿀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기자로선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지만, 반갑기도 했다. 마치 대입수학능력시험의 난해한 문제에 끙끙거리던 수험생에게 '답이 이거야'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정말 경제 위기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 걸까?
 
"진짜 큰 문제는 많은 직장에서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민주주의적인 소양과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 정말 직장 민주주의만 제대로 해보자. 그러면 사람이 살고, 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우리 경제도 살아난다." 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
 "진짜 큰 문제는 많은 직장에서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민주주의적인 소양과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 정말 직장 민주주의만 제대로 해보자. 그러면 사람이 살고, 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우리 경제도 살아난다." 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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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정부의 경제를 두고 말들이 많다. 특히 보수언론과 야당이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는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그쪽에선(보수언론 등) 그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정도만 덜했을 뿐. 실업률 등 통계 수치를 쓸 때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장기적으로 보고 분석해야 할 수치를 아주 미세한 부분만을 뽑아서 비판하고 있다."

- 일자리 통계를 두고 '고용참사', '고용대란' 등의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넘쳐났다.
"독일 실업률이 6% 수준(2017년 말 기준 5.7%)이라고 하는데, 완전고용상태라고 한다. 통일 독일 이후 가장 낮은 실업률이라고 하는데, 그것에 비하면 우리 실업률(2018년 11월 기준 3.2%, 통계청)은 양호한 것 아닌가. 문제는 경제학적으로 개연성이 떨어지는 숫자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가져다 쓰고, 이를 위기, 대란 등으로 포장해서 불안심리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 경제 상황과는 다른 차원에서."

- 지난해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해 최저임금 등 여러 논란에 휩싸이면서, 현 정부 경제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과거 1970~80년대 같은 고도성장기가 아니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 어느 정도 잠재성장률을 유지하면서 (경제) 운용 자체는 큰 문제 없이 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지금 경제에 대한 불안이나 우려는 중장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개혁 과제들이 잘 되지 않고, 신규과제도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와대 인사하는 것을 보고 '이거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 경제팀 인사?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두고 하는 말인가.
"(웃으면서) 경제 쪽은 물론 유능한 사람을 쓰면 좋다. 성과를 내야 하니까. 거기에 다양성을 접목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을 대변하는 사람부터 중소상공인과 전·월세 서민 등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정책 입안과정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는..."

-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 인사를 보니까, '아, 이 정부도 줄 서는 정부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대체로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 중심으로 짜여 있는 것 같다. 예전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이런저런 위원회들이 만들어지면서 '위원회 정부'라는 지적까지 받긴 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제안들이 (청와대로) 많이 올라갔었다. 근데 현 정부는 출범한 지 1년 반이 훨씬 지났지만, 그런 제안들이 잘 올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잘 듣지 못했다."

그는 "촛불 혁명으로 태어난 현 정부도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바뀐 것이 별로 없다"며 한숨을 지어 보였다. 지난해 현 정부의 지지율이 60~70%까지 올라갔다가, 최근 들어 40%대로 떨어진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동안 정권들 주욱 보라. 초기에는 전부 다 그럴싸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운다. 창조경제를 비롯해 녹색성장, 소득주도성장 등 많다. 그런 선동적인 구호의 약발이 1~2년 정도 끝나고 지지율이 떨어지면, 슬그머니 '경제활성화'라는 용어가 등장해. 문재인 정부도 어쩔수 없는 것 같다(그와의 인터뷰 직전에 정부는 신도시 건설 등 경제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뭐라고 할까, 토건라이제이션? 토건화의 유혹에 빠지는 거다. 패턴이 단순하다."

- 경제가 안 좋다고 하니, 당장 성과를 내기에는 토건만 한 것이 없다고 한다.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러니까 위기가 항상 반복되는 것이다. 정말 경제 위기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 걸까. 그 원인을 제대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책에 써 있더라. '지금 우리의 최대 약점은 자본의 궁핍이나 노동력 부족이 아니다'라고.
"그렇다. 우리가 지금 경제·산업 인프라가 취약해서 위기가 오는 걸까. 오히려 지식이나 인프라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본다. 진짜 큰 문제는 많은 직장에서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민주주의적인 소양과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 정말 직장 민주주의만 제대로 해보자. 그러면 사람이 살고, 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우리 경제도 살아난다."

평일에 산행 가는 회사와 안가는 회사
 

그는 갑자기 기자에게 "혹시 쉬는 날에 오마이뉴스도 산행 가느냐"고 물었다. "산행이 아니라 체육대회나 짧은 코스의 트래킹을 하곤 한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이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직원들 데리고 등산 가는 회사와 가지 않는 회사'로 나뉘었는데, 이것이 그 회사 직장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우 박사는 말했다. 기자는 "우리(오마이뉴스)는 대신 휴일이 아니라 평일 근무시간에, 노동조합과 회사가 함께 행사를 주최한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예전보다 직원들이 단체로 산행 가는 회사들은 많이 줄지 않았나.
"(고개를 저으며) '예전'을 언제로 둘지 다르겠지만... 생각보다 여전히 많이 다니더라. 아직도 우리 기업문화는 군대식이나 상명하복, 일사불란 등 같은 분위기가 여전하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만나보니까, 회사에서 직급이 과장 정도 이상은 '가족 같은 회사'를 좋은 회사라고 여기더라. 그런데,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그런 회사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세대 간 갈등이 거의 모든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다."

- 언론사들도 다르지 않다.
"맞다. 이런 분위기는 진보, 보수 따로 없다. 내가 아는 진보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등산과 같은 집단 문화는 서구 나라에선 사라진 지 오래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에서 만약 쉬는 날에 회사에서 직원을 불러낸다고 하면, 노조 등에서 난리가 난다고 한다. 그렇게 불러내는 CEO도 없지만... 이들 선진국의 기업들이 잘 나가는 이유는 직원 개개인들에게 좀더 자유를 주고,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도 국가도 잘 살기 마련이다."

 - 그래서인지 책에 "2000년대 우리는 집단적으로 실패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라는 식이었다. 전형적인 옛날 방식이다. 촛불집회 이후 우리의 사회적 여건도 많이 바뀌었다. 기업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직원들에게 좀더 자유를 주고, 조금 더 과감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부적인 의사소통도 훨씬 자유롭게... 다른 선진 기업들이 다 하고 있다. 우리에겐 지금이 딱 분기점에 와 있다."

- 지금 변해야 산다?
"당연하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이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겼을 때, 진보진영과 학자들 사이에서 '미국경제 몰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요즘 미국경제는 완전고용을 넘어선 상태다. 물론 미국식 보호무역주의 등은 별개로 하더라도... 트럼프의 딸 이방카도 미국 내 직장 민주주의, 특히 여성들에 대한 차별에 관심을 보이면서 반대운동에 앞장선다. 직장 내 여성들에 대한 문제가 풀리면, 그 혜택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에도 미친다."

그는 이야기는 계속됐다. 좀 더 들어보자.

"예전에 박사과정 때 스웨덴은 높은 소득과 복지, 개인주의가 강해서 '나중에 공동체 위기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오래 못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스웨덴의 출산율은 다시 올라갔고, 경제도 여전히 잘 나간다. 회사 안에선 직장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고, 국가는 복지제도를 통해서 개인들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스웨덴이 있는 거다. 직장 민주주의가 가장 먼저 정착한 나라였다."

"이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직장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고, 요구하지도 않았어요. 노동자를 죽어라 쥐어짜기만했던 것이 이른바 한국식 자본주의였던 거죠. 이제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죠." 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
 "우리는 그동안 직장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고, 요구하지도 않았어요. 노동자를 죽어라 쥐어짜기만했던 것이 이른바 한국식 자본주의였던 거죠. 이제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죠." 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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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민주주의에 공감은 하지만, 나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무슨 엄청난 교육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팀장이면 팀원을 대하는 자세부터 다시 생각해보고, 수평적으로 대화하는 방식 등을 고민해서 실천하면 된다.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충분히 서로 토론하고 협의하는 소통과정 등이다."

- 사실 말로는 다들 사전에 충분히 의사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 실천으로 이뤄지려면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 교육도 필요한 것 같고.
"물론이다. 특히 우리 기업들에서 팀장급들, 임원급들에게는 기본적인 직장민주주의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지금 비슷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정부기관 뿐 아니라 민간 기업들에 적용되는 여러 인증제도가 있다. 가족친화형 기업으로 인증받기 위해선 일정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또 성희롱 예방교육 등도 거의 의무화해 있다. 직장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하면 된다."

-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도? 기업에선 또 규제라고 하지 않을까?
"(웃으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기업은 아마 21세기에 살아남기 어렵지 않을까? '규제'가 아니라 '인센티브'로 하면 된다. 이미 품질이나 환경 등에선 국제적으로 인증(ISO·국제표준화기구)을 받고 있다. 가족친화인증도 2008년에 도입됐을 때는 별 관심 없었다. 하지만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기업 등도 가족친화인증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면서, 민간기업으로 확산됐다."

- 별도의 인센티브가 있었나.
"이 제도는 '우리 부처 또는 기업이 출산이나 양육 지원, 유연근무 등에서 가족친화적'이라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인정해주는 것이다. 3년마다 재인증을 받는데, 만약 재인증을 못 받으면 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은 성과급 등에서 차별을 받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연봉이 줄어들 수도 있다. 직장 민주주의도 정부부처부터 해봤으면 한다. 당장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이 먼저 해보라."

- 청와대부터?
" (목소리를 높이며) 거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촛불정권인데, 설마 직장 민주주의를 하지 않을까. 몰라서 못할 뿐이지, 알고도 안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청와대가 가장 먼저 직장 민주주의를 선언하고, 중앙부처와 공기업 등에서 따라가면... 지자체와 교육기관, 병원 등 공공성 높은 곳부터 해보자. 그러면 정말 조용한 곳에서 직원 폭행하고, 욕하고, 협박하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적어도 병원에서 간호사들의 '태움' 같은 것은 없어질 것 같다."

- 얼마 전 재계인사들 만났는데 '민주주의'라는 말만 나오면 조용해지더라.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나 현대차의 정의선 부회장도 직장 민주주의를 좋아할 것이다. 팀장 이상급들이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사내에서 갑질 문화가 사라지면 회사에게도 좋은 것이다. 회사 경쟁력이 높아지고 생산성도 좋아지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부도 앞으로 기업에 각종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할 때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와의 이야기는 이렇게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우 박사는 "우리 주변에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로 상사와 갈등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거창한 목표를 잡는 것도 아니고, 우리 생활 속에서 최소한의 민주주의 조건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의 일을 만드는 것이 최순실을 쫓아내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기자는 이날 그에게서 절실함을 엿볼 수 있었다. 또 책에도 썼듯이 자신감도 느낄 수 있었다. 직장 민주주의가 거창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인터뷰 끝날 즈음에 우 박사는 "이제 2년 후면 국회의원 총선이 있고, 다시 2년이면 대통령선거가 있다"면서 "그동안 한 번도 정치적 구호로 직장 민주주의를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길'을 떠올렸다. 우 박사의 말을 옮겨본다.

"지금 우리 사회, 우리 경제가 이렇게 헤매고 있는 이유가 이거예요. 우리는 그동안 직장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고, 요구하지도 않았어요. 노동자를 죽어라 쥐어짜기만했던 것이 이른바 한국식 자본주의였던 거죠. 이제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죠. 직장 민주주의를 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우리 기업이 어떻게 바뀌고, 내 일자리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웃으면서) 아마 우리 사회를 통째로 바꿀 거예요. 한국 자본주의가 새로운 길로 가는 거죠."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책을 펴낸 우석훈 박사.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책을 펴낸 우석훈 박사.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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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한겨레출판(2018)


태그:#우석훈, #직장 민주주의, #문재인 정부, #갑질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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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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