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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서 현지 여행사를 통해 몬테네그로 여행에 함께 참여하게 됐다. 아침 일찍 필레 게이트(Pile Gate) 앞 광장에서 만난 우리 여행팀에는 싱가포르에서 홀로 온 여인, 호주에서 온 노부부, 미국 마이애미에서 온 할머니와 그녀의 주치의가 있었다. 우리 모두는 가이드 루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통성명을 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고개 넘고 바다를 지나 몬테네그로 코토르(Kotor)에 도착했다. 우리들은 구시가의 외곽에서 현지 영어 가이드, 이바나를 만났다. 두브로브니크에서부터 함께 온 루카는 주차장에 남아있고 우리는 그녀와 함께 구시가 안으로 이동했다.
 
코토르 출신의 이바나는 코토르 출신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
▲ 가이드 이바나 코토르 출신의 이바나는 코토르 출신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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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몬테네그로 사람들처럼 키가 아주 큰 이바나는 이곳 코토르에서 나고 자란 코토르 출신이었다. 남슬라브 민족 계열의 강한 엑센트가 남아있는 그녀의 영어에서는 몬테네그로의 향내가 물씬 묻어났다. 웃음 띤 표정의 밝은 이바나를 접하고 있으려니 구유고연방 국가였던 몬테네그로에 대한 어두운 이미지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기울어진 시계탑

이바나의 안내로 우리가 모인 곳은 코토르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자 중심지의 역할을 하는 중앙광장이었다. 이 광장은 무기의 광장(Piazza of the arms)이라는 뜻의 오루치아 광장(Trg od Oružja). 베네치아 공화국의 4백 년 지배 당시 병사들이 훈련을 하고, 무기를 보관하던 곳이다. 이 광장에는 코토르를 방어하는 무기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대장간들도 있었다.

오루치아 광장은 여행객들을 반기는 듯이 아주 시원스럽게 넓다. 광장을 둘러싼 수많은 옛 관공서와 고택들은 식당과 카페가 돼 성업 중이었다. 특히 야외 좌석에는 따뜻한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려는 여행객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우리는 이 광장의 수많은 여행객들과 함께 코토르 관광을 시작했다.

오루치아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고풍스러운 건축물 하나하나는 구시가의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다. 구시가의 이 중앙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광장 한복판의 시계탑이다. 4층의 이 시계탑은 코토르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시계탑은 코토르 주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초소 역할을 했다.
 
코토르를 상징하는 이 시계탑은 지진으로 인하여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 코토르 시계탑 코토르를 상징하는 이 시계탑은 지진으로 인하여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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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시계탑은 그동안 개축을 거듭하면서 북쪽과 동쪽 면은 고딕 양식으로 보완됐다.

시계탑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가이드 이바나가 퀴즈를 냈다.

"저 시계탑을 보면 이상한 데가 있지 않나요? 자세히 보세요."

"시계탑의 맨 위층이 조금 이상한데요? 무언가 마감이 덜된 모습 같기도 하고. 왠지 파괴된 느낌이 나는데요?"

"네. 시계탑의 지붕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 시계탑의 현재 모습은 지진으로 떨어진 지붕을 그대로 둔 것이지요. 1667년 코토르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이 시계탑이 산 쪽으로 기울게 됐고, 이후 시계탑을 똑바로 세웠지만 1979년의 대지진으로 다시 기울어졌지요. 피사의 사탑처럼 눈에 띄지는 않아서 유심히 보아야 알 수 있어요. 탑은 기울었지만 현재 시계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계탑 바로 아래에는 삼각뿔을 가진 기둥이 있었다. 도저히 추측할 수 없는 이 기둥의 용도는 이바나가 설명해 주었다.
 
죄를 지은 죄인을 이 기둥에 묶어두어 수치를 느끼게 했다.
▲ 수치의 기둥 죄를 지은 죄인을 이 기둥에 묶어두어 수치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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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이 시계탑 광장에서 죄인들의 공개재판도 했어요. 이 삼각뿔 조형물은 죄인들을 묶을 때 사용한 것입니다. 죄인들의 몸을 밧줄로 기둥에 묶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고 했던 거지요. 그래서 이 기둥이 '수치의 기둥(Pillar of Shame)'입니다. 코토르 시민들이 오고 가면서 죄수의 얼굴을 보게 해서 수치를 느끼게 한 겁니다."

나는 내가 저 수치의 기둥에 묶여서 서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얼굴이 공개되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코토르에는 죄인의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이런 수치의 기둥도 생겨났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잔인한 형벌은 아니지만 정신적인 살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가공할 만한 현장이다.

골목 따라 떠나는 시간여행

구시가지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미로찾기처럼 이어지는 골목길은 아무리 길을 잘 찾는 사람이 들어온다고 해도 헷갈리기 쉬운 구조를 하고 있다. 별생각 없이 골목길을 걷다가 보면 조금 전에 들어왔던 골목길에 다시 들어와 있기도 하다. 코토르 구시가지가 좁아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니 자유로운 골목길 답사도 이곳에서는 즐거운 여행이다.

골목의 건물들은 아주 오래돼 건물 외관이 검은색인 곳이 많다. 굳이 역사의 때를 벗겨내지 않는 모습이 더 고색창연해 강한 역사의 체취를 풍기고 있다. 1979년 대지진 이후 복원공사 된 곳도 많지만 중세 모습 그대로 보존이 잘 돼 있는 건축물들도 많다. 수백 년 전에 꼼꼼하게 시공된 건축물들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구시가지를 훌륭하게 지키고 있다.
 
베네치아 출신의 지배 가문이 살던 저택이다.
▲ 베스쿠차 궁 베네치아 출신의 지배 가문이 살던 저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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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이바나가 골목길에서 걸음을 멈춘 곳은 오루치아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베스쿠차 궁(Palace of Beskuca Family)이다. 15세기에 만들어지고 1776년에 재건 후 18세기까지 사용된 저택이다. 대문 위에 조각된 날개 달린 사자상은 이곳이 바로 베네치아 출신의 지배 가문이 살던 저택임을 말해 준다. 건물을 쌓아 올린 석재와 사자 조각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베네치아 공화국이 통치하던 시절이 연상된다.

이바나는 이 골목길이 끝나는 저택 앞에서 다시 한번 걸음을 멈췄다. 이 골목길의 한 고택이 그녀가 자란 곳이라고 했다. 이 집은 항해사였던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당시 많은 사람들이 코토르 앞의 아드리아 해를 넘어 먼바다까지 나가서 돈을 벌어왔다고 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그녀의 설명이 참 보기 좋았다.

시계탑에서 성 트리푼 대성당(Cathedral of Saint Tryphon) 앞 광장까지 이어지는 골목길 주변에는 코토르를 지배하던 가문들이 살던 다양한 저택들이 있다. '팔래스(palace)'라고 표기되는 이 저택들은 현재도 호텔, 관공서, 박물관 등으로 계속 이용되고 있다.
 
코토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으로 무사 가문인 피마 가문이 거주했던 곳이다.
▲ 피마 궁전 코토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으로 무사 가문인 피마 가문이 거주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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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푼 광장의 북쪽, 피마 광장(Pima Square)에 자리한 피마 궁전(Palace Pima)은 코토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으로 꼽힌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코토르를 다스리던 무사 가문인 피마 가문이 거주했던 곳으로 현재는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저택은 고색창연하면서도 묘한 세련됨이 있다.

이 저택에서는 포근한 남국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왜일까? 2층과 3층의 창문마다 달려 있는 푸른색의 덧문 때문이다. 게다가 3층 발코니 난간의 철제 장식은 현대에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되고 화려하다. 마치 남미의 근대가옥같이 운치 있는 이 피마 궁전은 석벽도 진한 회색을 띠고 있어, 검은 산의 나라인 몬테네그로와도 참으로 어울리는 건물이다.
 
포석이 깔린 코토르 골목길은 코토르의 필수코스이다.
▲ 코토르 골목길 포석이 깔린 코토르 골목길은 코토르의 필수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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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코토르의 오래된 골목길을 계속 걸었다. 포석이 깔린 건물 주변의 낡은 석조건물들이 오랜 옛 도시의 운치를 더하며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작은 옷가게도 있고, 약국도 있고, 선물 가게도 있다. 주택과 주택 사이를 연결하는 아치형 통로에서는 베네치아의 분위기도 물씬 묻어났다.
 
코토르 구시가에는 코토르 과거의 삶이 남아있는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 공동우물 코토르 구시가에는 코토르 과거의 삶이 남아있는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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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2층, 외부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로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은 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구시가 안에는 오래된 공동우물도 남아 있다. 우물에는 과거 사람들이 물을 퍼 올릴 때 사용하던 장치도 그대로 남아있다. 코토르 인들의 삶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구시가의 현재 모습이 너무나 편안하게 다가온다. 나와 아내는 골목길을 계속 걸었다. 돌바닥 골목길은 중세 시대로 계속 우리를 인도하는 듯했다.

태그:#몬테네그로, #몬네네그로여행, #코토르, #코토르여행, #구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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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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