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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열린 2018년 첫 입영행사에서 입영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2018.1.2
 2일 오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열린 2018년 첫 입영행사에서 입영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2018.1.2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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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병역거부자들이 구치소나 교도소 한 곳에서만 지내다 출소하거나 한 번 정도 이감을 가고 나서 출소하는데, 나는 어쩌다 보니 1년 6개월 형을 살면서 모두 세 번을 이감 다니고 네 군데 감옥을 경험했다. 당시에는 '아, 내 인생은 왜 이리 꼬여서 감옥 생활마저도 순탄치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덕분에 감옥이란 곳의 보편적인 특성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감옥은 '총을 들지 않는 군대'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거다. 군사주의에 거부해 군대를 거부한 병역거부자들은 감옥 생활에서 당혹감을 금치 못한다. 감옥 안의 질서가 군대와 그다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계급이 명시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군대와 마찬가지로 먼저 들어온 사람이 권력이 높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 성격 나쁜 사람이 나보다 먼저 들어오면 징역 말로 꼽사는 거고, 나보다 늦게 방에 들어오면 내가 그 사람 부릴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인 거다.

병역거부자들은 이러한 군사주의 문화에 저항하거나 이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된다. 이를테면 내가 그 방에서 최고참이 되었을 때, 방장으로서 권력을 행사해 "이제부터 우리 방은 청소와 설거지를 돌아가면서 평등하게 한다"고 선언해 봤자 원성 가득한 불만만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가장 반대하는 것은 나와 함께 짬밥 없던 시절부터 고생하다 이제는 짬밥이 높아진 이들이다. 물론 자기 편할 수 있는 시절이 사라지는 것이 싫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고통이 평등하게 대물림되지 않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컸다. 길게, 넓게 보자면 감옥 생활 문화가 바뀌는 건 수감자들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지만 당장의 박탈감 때문인지 짬밥이 높아진 수감자들은 자기들이 고생하던 시절 그렇게나 욕하던 문화를 유지하기를 바랐다.

대체복무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병역거부권 인정을 가장 목소리 높여 반대하고, 대체복무제를 징벌적인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룹은 국방부가 아니라 보수 기독교 세력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논하지 않겠다.

그 다음으로 병역거부를 심하게 반대하는 그룹은 젊은 남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군대에 다녀온 남성들과 입대를 앞둔 남성들 사이에 제법 큰 차이가 드러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한 2018년도 인권상황 실태 조사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체복무제 도입방안 실태조사>의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입영대상자들의 대답이 다른 준거 집단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대체복무의 기간 등에서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군대에 다녀온 남성들이 병역거부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서는 언론의 분석이나 정치인들의 주장을 보면, 주로 박탈감 때문으로 보고 있다. 남성들은 자신이 군대에서 겪은 고생을 병역거부자들이 회피한다고 생각하고, 대체복무제는 응당 겪어야 하는 고통을 회피하는 데 악용될 것이 뻔한 수단인 것이다.

남성의 박탈감, 이용 당하기만 해서야...

나는 군복무를 마친 남성들의 박탈감이 정말 중요한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의회, 시민사회 할 것 없이 사회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젊은 시절의 일정 기간을 희생한 젊은이들의 박탈감을 진지하게 바라봐야 한다. 이 박탈감의 원인이 무엇이고, 해소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찾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선 이런 노력이 전무했다. 천안함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어느 언론 기사에 인용된 "진보는 무관심하고, 보수는 이용만 했다"는 말은 군복무자의 박탈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군인권센터나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같은 단체들이 최근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고 몇몇 연구자들이 열심히 연구를 이어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진보진영은 군복무자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보수진영은 입만 열면 "이 추운 겨울에 물도 잘 안 나오는 최전방에서 고생하는 국군장병"을 찾지만 국군장병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따라 군복무자들을 호출해대기만 한다.

이러다 보니 군복무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에 대해서 깊이 있는 관찰과 분석을 통한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주먹구구식 보여주기식 대책만 난무할 뿐이다. 군복무자의 박탈감을 다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연구와 활동이 필요하다.

물론 말은 쉽고, 너는 대안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 또한 쉽사리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주 단편적인 것들을 지금 당장 말할 순 있지만 단편적인 비평을 늘어놓는 것은 상황을 개선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문제의 핵심을 가릴 수도 있다. 다만 엉뚱한 곳에서 잘못된 원인을 찾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로 보수정당의 정치인들과 보수적인 언론, 그리고 보수 기독교 세력에서 군복무자의 박탈감을 들어 대체복무제를 공격하는 행태다. 나는 이것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선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감정적인 선동만 이어간다. 결국 문제의 본질을 사라지게 만들 뿐이다. 나는 이들이야말로 군인들의 처우를 개선해 군복무를 마친 남성들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보수 정치인들과 기독교 세력뿐만 아니라 젊은 남성 중에서도 병역거부가 인정되고 대체복무가 도입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군생활에 대한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다른 영역들과 비교해 봤을 때 군대만큼 열악한 곳도 없을 테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감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군복무자들의 군생활을 어렵게 만든 건 병역거부와 대체복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대체복무제를 아무리 어렵게 만들어봤자, 군복무자들의 박탈감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체복무제에 대한 지나친 공격은 군복무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의 진짜 원인을 사람들의 관심에서 지워버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반감보다도 안타까운 경우는 군에 다녀온 사람들이 현역 군인들의 처우 개선이나 인권 보장을 반대하는 경우다. 이 또한 자신의 고생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나온 반응인 경우가 많아서 그들의 군복무가 얼마나 열악했을지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무척 안타깝다. 그렇지만 위에서 예로 든 감옥 생활처럼, 잘못된 관행을 바꿔가는 것은 당장 내게는 손해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집단 전체에게는 커다란 이익이 된다. 현역 군인의 복무 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남성들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이다.

대체복무 도입, 남성들에게도 기회다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복무기간은 현역 육군 기준 2배인 3년, 복무영역은 교정시설 합숙 복무로 단일화, 심사기구는 국방부 산하 설치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사실상 또 다른 처벌을 계속하겠다는 징벌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헌법상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 실현을 인정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더 이상 처벌하지 말라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 "징벌적 대체복무제 안돼!"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복무기간은 현역 육군 기준 2배인 3년, 복무영역은 교정시설 합숙 복무로 단일화, 심사기구는 국방부 산하 설치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사실상 또 다른 처벌을 계속하겠다는 징벌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헌법상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 실현을 인정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더 이상 처벌하지 말라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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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 또한 마찬가지다. 특정 세력이 대체복무제를 마치 특정한 종교나 소수 집단을 위한 제도처럼 몰아가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대체복무제의 혜택은 병역거부자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특히 남성 일반에게 돌아갔다. 대체복무의 도입은 군에 입대할 남성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선택지가 하나 늘어나는 것이다.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가게에 신메뉴가 하나 늘어봤자 선택지가 31개에서 32개로 늘어나는 정도의 의미지만, 한국처럼 병무청이 아무런 경쟁도 방해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남성을 징집하던 현실에서는 대체복무제라는 또 하나의 선택지는 구조와 상황 자체를 바꾸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군인들이 죽고 다쳐도 어차피 또 신병은 들어오기 때문에 문제 개선에 소극적이었던 국방부는 이제 대체복무와 경쟁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서 군인들의 처우와 복무 여건을 개선해야만 할 것이다.

대체복무제가 가져올 효과 중엔 사병들의 처우 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는 예전보다 줄어든 인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운용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 전체가 구조조정이네 뭐네 하는 동안에도 한국전쟁 이후 조직 체계와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해온 국방부다. 효율적인 조직으로 거듭나야 할 때가 이미 수십 년도 더 지났다.

대체복무제는 국방부가 스스로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강제하게 될 것이다. 변화된 세계에 맞춰 변화된 남북관계에 맞춰 적정한 군사력은 얼마인지,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인력은 얼마인지, 국방부의 어떤 일들이 불필요하고 군대의 어떤 모습들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국방부도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처럼 대체복무는 인권과 헌법적 기본권으로서 양심의 자유, 특히 징병대상이 되는 남성들 일반의 인권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제도다. 이 제도를 남성들이 나서서 더 어렵게 만들자고 주장하는 건 자기 발목에 사슬을 채우는 격이다.

대체복무제가 어려워질수록, 군복무는 대체복무보다 조금 더 나은 환경만 만들면 되기 때문에 군복무 여건 또한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대체복무제가 좋아질수록 국방부는 대체복무에 젊은이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군복무의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하려 노력하게 될 것이고, 군복무는 더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가 젊은 남성들의 소중한 시간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 내어 줄 것을 요청한다면, 그에 합당하는 충분한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군복무자와 병역거부자가 서로의 권리를 두고 싸우는 게 아니라, 함께 손 맞잡고 국가와 정부에 대고 합당하고 온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대체복무제를 합리적이고 인권기준에 맞게 만들고, 군복무자의 처우와 복무 여건을 지금보다 더 획기적으로 개선하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쟁없는세상 블로그(http://www.withoutwar.org/?p=14940)에도 실립니다.


태그:#대체복무제, #병역거부, #좋은 대체복무가 군복무자들에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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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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