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평양, 우리가 모른다고 하면 안되갔구나'는 말이 있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이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라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서울과 평양의 도시 간판과 전단, 차량 번호판, 건축물, 생활필수품의 디자인을 비교분석한 논문이 나와 관심을 끈다. 서울대 대학원 디자인학부 오혜윤(시각디자인)씨가 쓴 <서울, 평양 두 도시의 일상 속 그래픽을 통한 시각문화 아이덴티티 연구>(김경선 기도교수)가 바로 그것.

두 도시의 시각디자인은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가령, 같은 한글이지만 글자체가 다르다. '서울'과 '평양'이라는 글자를 빼더라도, 눈 밝은 사람이라면 디자인만 봐도 어느 도시의 것인 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서울과 평양은 다르다.

두 도시는 같은 강(한강·대동강)을 끼고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 체제뿐만 아니라 지형조건을 바탕으로 다르게 만들어졌다. 오씨는 "강남과 동평양, 강북과 서평양이 비교된다"라고 짚었다. 같은 시기의 건축가로 서울에 김수근(1931∼1986)이 있었다면, 평양에는 '북한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정희(1921~1975)가 있었다.

오혜윤씨는 "서울과 평양은 한민족이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라며 "1953년 휴전 후 각기 상이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새로운 도시 건설을 위해 본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며 다른 문화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전개돼 왔다"라고 평가했다.

서울-평양 도시환경은? 
 
서울 지하철 디자인.
 서울 지하철 디자인.
ⓒ 오혜윤 논문

관련사진보기

  
평양 지하철 디자인.
 평양 지하철 디자인.
ⓒ 오혜윤 논문

관련사진보기

 
도시 환경은 어떻게 다를까. 평양의 면적은 서울보다 3배 정도 넓지만 인구수는 3배가량 적고, 인구밀도는 9배 정도 낮다. 서울은 인구 1000만 명가량이지만 평양은 3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과 평양은 비슷한 시기에 재건을 시작했다. 오씨는 "서울은 급격하게 재편돼 서구적 근대화로 바뀐 새로운 공동체의 장소로 변했고, 1980년대 메트로폴리스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라며 "평양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도시의 기본을 보존하며, '도시규모를 최소화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을 도시에 반영시켰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문화생활은 기본적으로 계급성을 갖고 있기에, '인민' '당' '혁명' '투쟁'과 같은 어휘들이 많이 사용되며, 이는 정치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생활로도 자리잡으며 매체 속에서 보여지는 평양 길거리 부착되어진 포스터, 홍보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반면 서울 길거리는 간판과 상업적 목적을 띤 홍보물이 많다는 것이다.

글자 디자인은 어떨까. 같은 지하철인데 서울과 평양의 디자인은 다르다. 서울은 대부분 나라에서 사용하는 'M'자와 지하철 이미지를 나타내는 심벌을 사용했고, 평양은 '지'라는 글자에다 아래를 가리키는 화살표의 'v'자가 지하철도의 의미를 구현한다.

오씨는 "북한의 지하철 디자인에 사용된 글자체는 '천리마체 6호'(천리마긴굵은체)에서 변형된 모습이고, 사용된 붉은 색과 파란색은 인공기를 연상시킨다"라고 말했다.

택시 번호판 디자인도 다르다. 평양의 차량 번호판은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바 있읏이 앞에 지역명을 붙인다. 앞 두 자리 숫자는 사용 기관을 의미한다. 가령 '15'는 인민 보안성을 위해 사용되는 차량에 부여된 숫자이고, '49'는 택시 사용 번호다.

평양 길거리 간판에 가장 많이 쓰이는 글씨체는 '천리마체'와 '청봉체'다. 오씨는 "김일성의 '교시'나 김정일 '말씀'은 16급 천리마체로 기술되어 이름은 16급 청봉체로 서 눈에 띄게 제작하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청봉체는 김일성과 김정숙필체로부터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이라 설명돼 있고, 북한에서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서체 중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담배, 맥주, 음식의 디자인은? 
 
평양 맥주 디자인.
 평양 맥주 디자인.
ⓒ 오혜윤 논문

관련사진보기

 
일상용품 디자인은 어떨까. 오씨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필수품 중 비누, 샴푸, 칫솔과 같은 항상 쓰이는 것들은 특별하지도 않지만 필수적인 물품으로 그 속에서의 시각언어들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라고 밝혔다.

논문에는 담배, 맥주, 음식의 디자인도 비교돼 있다. 북한은 우리보다 순한글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오씨는 "북한의 패키지는 '유통기한'이라는 단어 대신에 '만든 날' 혹은 '둘 수 있는 기간'으로 표기돼 있다"라며 "한국에서 사용되는 사진의 표현방식을 대신해 사실주의적 일러스트를 활용하여 제품의 이미지를 패키기에 표현했다"라고 설명했다.

북한에는 대동강맥주, 평양맥주, 봉황맥주가 있다. 오씨는 "보리를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상표의 이름을 서예의 형식만 국한된 게 아닌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내고 있으며, 평양맥주는 디지털화된 서체를 활용하여 표기돼 있다"라며 "이는 북한에서도 컴퓨터 기술이 적극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의 시각예술품에서 보이듯, '묘사 대상을 현실에서 보는 것과 같이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눈으로 직접 보고 형상의 미학 정서적 특성을 감득하게 하는' 특징과 연관 있는 패키지"라며 "진한 색상과 원색을 기본으로 화면 전체의 색조를 맞추어 사진처럼 선명하게 만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오씨는 논문에서 '서울'과 '평양'의 글자를 한글 가로 풀어쓰기를 활용한 디자인을 개발해 선보였다. 그는 이를 우표와 엽서, 달력, 여행노트, 메모지, 만년필, 생수(샘물), 팔찌, 양초에 활용한 디자인 작품을 만들어 논문에 담아 놨다.
 
봉황 맥주 디자인.
 봉황 맥주 디자인.
ⓒ 오혜윤 논문

관련사진보기


태그:#서울, #평양, #시각디자인, #서울대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