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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Croatia)에서 몬테네그로(Montenegro)로 들어가는 국경에서 차는 잠시 멈춰 섰다. 여행 성수기에는 이 국경을 통과하는데 2시간 넘게 걸린다는데 오늘은 밀린 차들이 없어 지체 없이 금방 통과했다. 국경 주변은 마치 한적한 산 속에 들어온 듯 평화로웠다.
 
여름 성수기에는 입국에 2시간이나 걸리지만 다행히 금방 통과했다.
▲ 몬테네그로 입국. 여름 성수기에는 입국에 2시간이나 걸리지만 다행히 금방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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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나라의 이름이 몬테네그로인지는 이 땅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알게 되었다. 갑자기 솟아오르며 눈앞을 가로막는 암벽으로 이어지는 산들이 모두 진한 검은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리어로 '몬테(Monte)'는 산을 뜻하고 '네그로(negro)'는 검다는 뜻이다.
  
검은 산이라는 나라 이름답게 검은 산이 계속 여행길을 따라온다.
▲ 몬테네그로. 검은 산이라는 나라 이름답게 검은 산이 계속 여행길을 따라온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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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 밖으로 펼쳐지는, 숨막히는 자연의 절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산들은 마치 검은 속살을 드러내어 보이는 것 같았다.
 
호수 같이 보이는 코토르 만은 아드리아해의 넓은 바다이다.
▲ 코토르만. 호수 같이 보이는 코토르 만은 아드리아해의 넓은 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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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코토르 만(Bay of Kotor)을 굽이굽이 돌고 돌았다. 시야를 가리던 거대한 산자락이 사라지자 갑자기 호수 같은 바다가 나타났다. 눈 앞에는 숨겨진 아름다운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파도 없이 잔잔한 이 바다는 정녕 코발트 빛이다. 살짝 흐린 듯한 날씨 속의 바다는 더욱 신비스러워 보였다.

차는 나비 날개 모양의 바닷길을 이리저리 돌아 이 바다의 끝, 정말 은밀한 곳에 도착했다. 바다의 끝에 숨은 매혹적인 내항, 코토르(Kotor). 이 도시는 온통 거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서쪽은 바다를 바라다보고 있다. 마치 베일 속에 숨은 듯한 이 도시는 전통 중세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 외곽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코토르의 구시가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평화롭다. 바닷가 옆이어서인지 공기도 상큼했다. 눈 앞에는 푸른 아드리아해가 펼쳐져 있고 조용해 보이는 선착장에는 시야를 압도해버리는 거대한 크루즈 선이 정박해 있다. 저 정도의 크루즈 선이 도시 바로 입구에 정박해 있으니 바다의 깊이도 아주 깊을 것이다.

바다 반대편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높이 1,753m의 로첸(Lovćen) 산이 코토르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바다를 따라 고대로부터 전해진 견고한 성벽이 코토르를 감싸고 있다. 코토르 성벽은 중세시대 세르비아의 네만리치(Nemanjić) 왕가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은 성벽이다.
 
강과 바다,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다.
▲ 코토르 성벽. 강과 바다,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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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20m나 되는 코토르 성벽은 전체 길이가 4.5km나 된다. 북문 성벽을 따라 스쿠르다(Scurda) 강이 흐르는데, 이 스쿠르다 강은 자연스럽게 성의 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코토르 만의 바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로첸 산이 둘러싸고 있으니 중세시대에는 이보다 훌륭한 요새가 없었을 것이다.

나와 아내는 코토르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3개의 문 중 가장 대표적인 서문으로 향했다. 우리는 서문 앞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나눠주는 무료 코토르 지도를 받아 보았다. 코토르에서 서문은 '바다문'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코토르 성의 주출입문인 서문은 과거에 문 앞까지 배를 대야만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에 바다문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지금의 서문 앞은 매립되어 항만 부두까지 야자수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넓은 육지 땅이 된 서문 앞에는 이제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여행자들이 모여서 입장 준비를 하고 있다.

서문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코토르 성의 상세한 내부지도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지도 속, 코토르 구시가의 성벽 안에는 중세시대의 건축물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구시가 전체는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성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려고 보니 성벽에는 '날개 달린 사자'가 새겨져 있다.
 
이 사자는 코토르가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은 역사적 흔적이다.
▲ 날개 달린 사자. 이 사자는 코토르가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은 역사적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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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사자인데?"
"이 사자, 전에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갔을 때, 베네치아에서 숱하게 보았던 베네치아의 상징이지. 이 사자는 코토르가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다는 징표야. 코토르는 특히 베네치아 공화국의 오랜 지배를 받으면서 베네치아 풍의 많은 건축물이 남은 도시이지."


이 코토르는 고대로마시대의 로마인들이 아드리아 해안에 정착해 살면서 최초로 세워졌다. 코토르는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us I, 재위 527년∼565년) 때 요새가 건립되면서 도시로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후 무려 천년의 세월 동안 많은 제국들이 이 아름답고 번영하는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코토르는 불가리아제국, 베네치아공화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은, 복잡다단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통합되었던 코토르는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고슬라비아공화국의 도시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2006년에 독립한, 어엿한 몬테네그로 독립국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서문 입구를 들어서는데 문 위에 '1944.11. 21'이라고 적혀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탈리아로부터 몬테네그로가 독립한 날짜를 표시한 것이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민족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즐거움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성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성벽도시 코토르의 역사적 체취가 짙게 풍기는 골목이 펼쳐졌다. 골목에는 반질반질한 포석이 정연하게 깔려 있었다. 나는 돌바닥을 밟고 걸으며 코토르의 역사 속으로 직접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의 골목길은 기웃거리고 거닐며 중세도시의 무수히 많은 인간의 이야기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골목을 둘러싼 석조건물들은 붉은색 지붕과 하얀 석조 외벽을 가지고 있다. 옛 건축물들은 정연하고 단정하고 고상하다. 코토르는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기품이 있다.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온 코토르에는 시기별로 다양한 건물들이 세워졌다. 코토르의 이 건축물 중 역사가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성 트리푼 대성당(Cathedral of Saint Tryphon)이다. 이 성 트리푼 대성당은 코토르의 상징이자 구시가의 상징이라고 불린다. 이 성당은 외관부터가 묘하게 옛 시대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성당 뒤편의 산세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참 멋진 건축물이다.
 
여러 차례 지진 이후 복원되면서 다양한 건축양식을 선보이게 되었다.
▲ 성 트리푼 대성당. 여러 차례 지진 이후 복원되면서 다양한 건축양식을 선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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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제국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트리푼 대성당의 첫 건물은 809년에 처음으로 지어졌다. 안타깝게도 첫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1166년에 옛 성당 터에 성 트리푼(Saint Tryphon, Sveti Tripun)의 유해를 이스탄불에서 가져와 안치하고 새롭게 지으면서 성트리푼 성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성 트리푼은 코토르의 수호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트리푼 대성당도 아드리해 연안 지역 지진 벨트의 피해를 피해가지 못했다. 트리푼 대성당은 1667년에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고 다시 복구되었다. 그러나 또 다시 1979년의 지진을 겪으며 훼손되었고, 200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여러 차례의 개축 과정을 거친 성 트리푼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바로크, 고딕 등 다양한 건축양식을 반영하게 되었다. 그래서 트리푼 대성당을 올려다보면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듯한, 묘한 생소함이 있다.

대성당의 양쪽에는 비슷한 높이의 바로크 양식 종탑이 서 있다. 양탑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지만 탑의 꼭대기 부분이 조금 다르고, 조금 더 높은 종탑에는 성당의 시계가 걸려 있다.

"종탑의 1층에 적혀 있는 저 숫자들은 뭐지? 왼쪽 탑은 1166, 오른쪽 탑은 2016이라는 숫자가 박혀 있는데?"
"1166은 옛 성당 터에 코토르의 수호자로 여겨지는 성 트리푼을 기리는 대성당이 지어진 해이지. 2016은 현재의 년도를 의미하고 있지."


"왜 올해는 2018을 걸어두지 않았을까?"
"년도를 나타내는 이 숫자는 필요에 따라 의미 있는 년도들이 걸리게 되어 있어. 2016년에도 코토르에 의미 있는 일이 있었을 것 같아. 이 고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몬테네그로 독립 10주년이라는 의미인가?"

 
발코니에 올라선 여행객들이 광장을 구경하고 있다.
▲ 대성당 발코니. 발코니에 올라선 여행객들이 광장을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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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종탑 사이 2층에는 파격적인 구조인 발코니가 있었다. 건물의 전면에 화려한 파사드를 만들지 않고, 아치 구조물 위에 아기자기한 발코니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성당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발코니에 올라선 여행객들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보니 자연스럽게 성당 안에 들어가 발코니에 올라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외국 여행자들이 성당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 대성당 내부. 외국 여행자들이 성당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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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스러운 기도의 장소인 성당 내부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코토르의 핵심 명소인 이 성당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다. 우리는 예배당의 예배석에 앉아서 쉬었고, 조금 지친 아내는 예배석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나는 코토르에서 꼭 가보아야 한다는, 성 트리푼 대성당 2층의 박물관으로 올라가 보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복원을 거치면서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인상적인 것은 계단 옆에 지진의 피해로 무너진 벽면 잔해들이 당시 상황을 전해주듯이 현재의 벽면 위에 붙어 있다는 점이다. 지진의 잔해들을 버리지 않고 한 조각이라도 보존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묻어나는 곳이다.

유럽을 통틀어서도 가장 오래된 성당에 속하는 성 트리푼 대성당 박물관 유물들은 다양하면서도 모두가 고색창연하다. 14세기의 프레스코화와 함께 유럽 유명 화가들의 성화들이 모여 있다. 15세기 작품인 성화의 벽은 전시실 내에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다.
 
유럽 유명 화가들의 성화가 가득 모여 있다.
▲ 성당 박물관. 유럽 유명 화가들의 성화가 가득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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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코토르의 금세공인들이 만든 금제 성유물(聖遺物)들은 아직도 화려하게 반짝거린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809년에 이곳에 성당을 최초로 지으면서 베네치아 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의 성당에서 훔쳐온 유물도 보관되어 있다. 훔쳐온 유물이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이 도시의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남은 것이다.

2층의 박물관을 걷다 보면 1층의 예배석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 있다. 아내가 잘 있나 걱정되어 내려다 보았더니 아내는 핸드폰을 보면서 편히 쉬고 있었다. 성당 안이라 별 위험한 일은 없겠지만 간간이 1층을 내려다보면서 박물관을 돌아다 보았다.

나는 결국 종탑 사이의 2층 발코니에 나와 보았다. 발코니에 서서 보니 코토르 이벤트의 중심이라는 성당 앞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동서양의 수많은 나라에서 온 다양한 여행객들이 대성당을 올려다 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객이 드나드는 광장을 구경할 수 있다.
▲ 발코니에서 본 광장.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객이 드나드는 광장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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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지붕들 너머로 보이는 검은 산들이 참으로 이국적인 경치를 연출하고 있었다. 코토르가 내 마음 속에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발코니에서 한참 동안 경치를 구경하다가 실내로 들어가 1층을 내려다 보았다. 아! 그런데 예배석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아내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내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태그:#몬테네그로, #몬네네그로여행, #코토르, #코토르여행, #아드리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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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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