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 대로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불꽃집회가 열렸다.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 대로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불꽃집회가 열렸다.
ⓒ 지유석

관련사진보기

선거제도 개혁이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15일 오전 여야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든 의문이다. 

우선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살펴보자. 이날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선거제도 개편에 합의했다. 특히 5당 원내대표들은 정당득표율에 정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뜻을 모았다. 여야 5당 합의사항은 아래와 같다. 

⓵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⓶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
⓷ 석패율제 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도입을 적극 검토한다.
⓸ 선거제도 개혁 관련법안은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한다.
⓹정개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한다.
⓺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논의를 시작한다.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 대로에서 열린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여의도 불꽃 집회'에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왼쪽)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오른쪽)가 인사하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 대로에서 열린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여의도 불꽃 집회"에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왼쪽)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오른쪽)가 인사하고 있다.
ⓒ 지유석

관련사진보기

여야 합의에 따라, 지난 6일부터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며 단식했던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단식을 풀었다. 

이번 합의는 정부여당과 제1야당이 아닌, 군소정당 대표들이 단식까지 불사하며 도출해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작지 않다. 무엇보다 정의당은 줄곧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해 왔기에, 정의당으로선 의미 있는 정치적 성과를 얻어냈다.  

이 지점에서 나의 '정체성'을 밝혀야겠다. 그간 한 명의 시민으로서 언론행위를 해왔지만, 적어도 이번 만큼은 정의당 당원의 시선에서 생각을 펼치려 한다. 물론 당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당 활동은 아내가 더 열심이다. 

난 결혼 전에는 정당엔 무관심한, 흔히 말하는 '무당파'였다. 반면 아내는 진즉부터 진보정당 활동에 매진해왔고, 지금은 정의당 당직자(충남도당 사무처장)다. 난 아내 '덕분에' 정의당 당원이 됐고, 당의 공식 활동에 간간이 이름을 내밀고 있다. 

앞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합의는 정의당의 성과라고 적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당의 명운을 건 것 같아 보였다. 비단 이정미 대표 등 당 지도부뿐만 아니라 각 지역당 수준에서 당의 의회 내 입지확보와 외연확장을 이끌어 내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는 말이다. 

마침 여야 합의가 있었던 바로 오늘(12/15) 오후 국회 앞 의사당 대로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여의도 불꽃 집회'(아래 불꽃집회)가 예정돼 있었다. 정의당 중앙당은 각 지역 당에게 참여를 독려했다. 실제 불꽃집회 현장은 정의당을 상징하는 노란 깃발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정의당은 15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 대로에서 사전집회를 열었다. 심상정 현 정개특위 위원장과 이정미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의당은 15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 대로에서 사전집회를 열었다. 심상정 현 정개특위 위원장과 이정미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 지유석

관련사진보기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지유석

관련사진보기

정의당은 불꽃집회에 앞서 사전집회를 열었는데, 이때 이정미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단식 탓인지 얼굴에 핏기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얼굴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이 대표는 함께 모인 당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법조문으로 명문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여야 합의에 참여했던 윤소하 원내대표도 같은 의지를 당원들에게 드러냈다. 윤 원내대표는 당원들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이제 이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가 남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 좋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관철될 수 있도록 국민들을 함께 설득해나갑시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의원정수 확대가 논의될 때, 우리 당은 전체 국회의 총 예산을 동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민 여론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핵심은 '구체적인 설계'

분명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행 소선거구제보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더 정확히 드러내줄 제도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정의당 같은 군소정당에게 이 제도의 도입은 원내 입지를 굳힐 최적의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 번 처음 던졌던 질문, 즉 선거제도 개혁이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지난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의제는 대통령 직선제였다. 대통령 직선제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다는 점에서 지난 권위주의 시절 체육관 선거보다 진일보한 제도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의 도입이 직접적인 민주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새로 도입한 제도의 첫 수혜자는 민주화 진영이 그토록 증오했던 신군부의 2인자 노태우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선거 판세는 민의 보다는 선거공학에 따라 요동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하고 '단일화'라는 그럴 듯한 낱말로 포장된 기계적 세 결집이 횡행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고 이런 부작용이 없을까? 쉽사리 단정할 수는 없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도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상투적인 훈수를 두려는 게 아니다. 어떤 제도든 부작용이 없지 않다. 문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민주화를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자는 말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양당제 보다는 다당제에 친화적인 제도다. 최창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 11월 28일 열린 정개특위 자문위원 회의에서 이 같이 지적했다. 
 
"비례대표제는 사회의 균열과 갈등, 그리고 사회의 다원적 이익과 의사를 대표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대표성을 구현하는 데 분명히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당연히 다당제를 창출한다. (중략)

한국의 양당체제는 그 자체가 사회적 다원성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기득이익화한 결과 사회의 저변으로부터 제기되는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지 못한다. 나아가 그동안 보수-진보, 좌-우의 균열을 대표해온 양당체제의 조건들, 특히 탈냉전이라는 환경 변화는 양당제를 떠받쳐온 기반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또 성장, 분배, 노동과 고용 문제를 둘러싼 영역에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조건에서 탈양극화를 반영하는 정당체제를 필요로 한다. 즉 다당제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다."

최 교수의 지적대로 기존 양당 체제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당제는 바람직한 대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당제는 운영에 따라서는 불안을 더 가중시킬 수 있다. 특히 '대의' 보다는 당장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자주 이합집산하는 한국정치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다당제는 국회라는 배를 아예 산으로 몰고 갈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의당 당원들은 15일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불꽃집회 사전 행사에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종이비행기 날리기 퍼포먼스를 했다.
 정의당 당원들은 15일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불꽃집회 사전 행사에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종이비행기 날리기 퍼포먼스를 했다.
ⓒ 지유석

관련사진보기

 
정의당의 한 당원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의당은 이 제도 도입에 당력을 집중하는 양상이다.
 정의당의 한 당원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의당은 이 제도 도입에 당력을 집중하는 양상이다.
ⓒ 지유석

관련사진보기

이상적인 측면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 민의대로 의석수 배분이 이뤄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도 문제는 없지 않다. 각 정당, 혹은 개별 의원들이 민의를 저버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할 수 있다. 정의당을 예로 들면, 새 제도 도입으로 세가 지금보다 커졌을 때 과연 초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당 지도부가 엄격히 통제해도, 각 지역의 기득권 세력과 야합하는 의원이 안 나온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정의당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권력은 크기가 커질수록 권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속성이 있어서다. 또 사실, 현대 다원주의 민주주의가 국민의 정치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선거 이후 정당이나 의원들이 민심을 저버리는 행태에 제동을 걸 마땅한 장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역시 이 같은 제도적 약점을 안고 있다. 

오해가 있을 수 있어 다시 밝혀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역시 단점이 있으니 도입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 제도의 약점을 인식하자는 말이다. 그래야 새로운 제도도입에 따른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일단 여야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극 검토하기로 한 만큼 국민의 뜻이 제대로 의석수로 나타날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해 주기 바란다. 동시에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선거 '이후' 정당이나 의원들이 선거민심을 저버렸을 때 제동을 걸 수 있는 방안 역시 함께 고민해 반영해 주기 바란다. 

또 정의당에 바란다. 이번의 합의는 그야말로 합의일 뿐, 합의 과정에서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최종안이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 원하는 목적을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않기 바란다. 

정의당이 바라는 바가 온전히 반영된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궁극적인 민주화로 직결되지 않는다. 그보다 제도와 함께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일회성 정치 이벤트로 그칠 것으로 판단한다. 국민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려면 끝없이 제도와 운영의 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1987년의 민주화는 제도적 민주화의 차원에 그쳤다. 2018년 세밑 정치권에서 이뤄진 선거제도 개혁 합의는 1987년을 뛰어넘는, 실질적인 민주화를 정착시키는 첫 걸음으로 역사가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태그:#연동형 비례대표제, #대통령 직선제, #정의당, #이정미 대표, #1987년 6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