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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눈 덮인 구릉지를 저벅저벅 걷는 낭만적인 상상을 한번쯤 해 보셨을 것이다. 가끔 자발적 고립을 꿈꾸기도 한다. 그리고 스스로 숨겨진 고립무원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찾기도 한다. 이번 겨울 여행지로 경주 템플스테이를 추천하고자 한다. 눈 쌓은 경주의 고찰 속에서 도란도란 정을 쌓기도 하고 감춰진 천년의 역사를 구구절절 읊어 보는 건 어떨까.

선의 숨결을 쫓아 간 골굴사 
 
골굴사은 인도의 아잔타나 엘로나도와 비견된다
▲ 겨울이 내려 앉은 골굴사 골굴사은 인도의 아잔타나 엘로나도와 비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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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 년의 향기를 간직한 국내 유일의 석굴 사원, 골굴사(骨窟寺)는 인도의 '아잔타'나 '엘로라도'와 비견 된다. 고대 교역로를 따라 꽃핀 29개의 굴이 있는 절벽 사원 아잔타는 인도의 보물이다. 7세기 중반 돌산을 하나 통째로 깎아낸 신전인 엘로라도도 아잔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보물이다. 이와 비교할 수 없지만, 경주 골굴사의 석굴에 새겨진 마애여래불에서 사뭇 고대의 역사가 느껴진다.

골굴사 일주문 초입부터 선무도 자세를 한 동상들이 맞아 준다. 화려한 단청과 아름다운 기와지붕으로 치장된 골굴사 종무원과 선무대학 건물, 요사채를 지나면 하늘 끝에 마애여래불이 눈에 들어온다. 골굴사는 원효대사의 마지막 열반지로 신라의 호국불교정신과 원효의 정토사상을 계승한 사찰이다.

6세기경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응회암 절벽에 마애여래불을 새기고 12처 천생석굴을 법당과 요사로 사용하면서 골굴사가 시작됐다. 이곳은 시쳇말로 기도발이 잘 받는 성취도량이다. 그 정기를 느끼고자 숨을 헐떡이며 급경사 계단을 올라갔다.

첫 번째 굴인 관음굴에 이르러 아래를 바라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관음굴 외에 굴법당은 지장굴과, 약사굴, 나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이 있다. 지금은 철재난간이라도 잡고 오르지만 옛사람들은 어떻게 천 길 낭떠러지를 올라가 석굴과 불상을 조각했을까. 겨우 마애여래불 앞에 섰다. 어지럼증이 났다.

멀리 대왕암이 있는 동해가 끝없이 펼쳐졌다. 천천히 내려가는 길에 발을 헛디뎌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카메라가 지지해줘서 난간을 잡을 수 있었다. 카메라는 주인을 구한 덕에 흠집이 심하게 났다. 미끄러지며 다친 손바닥보다 카메라의 상처가 마음에 걸렸다.
  
이곳에서 선무도 시범이 펼쳐진다
▲ 골굴사 대적광전 이곳에서 선무도 시범이 펼쳐진다
ⓒ 최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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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내려와 대적광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선무도 시범이 펼쳐진다. 선무도는 명상과, 무술, 요가 등을 포함하는 총체적 수행법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 몸을 아끼지 않고 나선 승병들의 무술이다.

웅장한 음악에 맞춰 시작된 선무도 시범은 발차기부터 시작해 날다람쥐가 하늘을 나는 듯한 동작까지 펼쳐져 탄성을 자아낸다. 전국에서 온 참배객들뿐만 아니라 골굴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외국인들도 많다. 번잡한 도시을 떠나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 들리는 독경소리는 또 다른 마음의 위안이다.

밀교와 호국의 교차점 원원사

경주와 울산의 경계 부근에 있는 원원사(遠願寺)를 찾아가는 길은 수월찮다. 울산과 포항 산업단지를 오가는 대형 화물차들의 주행으로 늘 복잡한 7번 국도가 원원사 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곳 도로 전체가 주차장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주말은 7번 국도를 타야 할 경우 판단을 잘해야 된다.

내비게이션이 오른쪽으로 가라고 말을 반복했지만 버스가 정차해 있어 자칫 진입로를 놓칠 뻔했다. 원원사 진입로 옆은 버스정류장이 있어 정신 반짝 차려야 빙빙 도는 일이 없다. 진입로를 진입했다고 다 끝난 건 아니다. 원원사 방향을 가리키는 알림판을 따라 급좌회전을 한 뒤, 철도교량 아래의 좁은 도로를 지나야 한다.

원원사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교량 아래를 벗어나자 만나는 모화마을. 임도를 따라 불고기 식당들이 즐비하다. 마을 어귀를 지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삼태봉 산자락에 앉은 전원주택단지가 나타난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저수지가 마음까지 탁 트이게 한다.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비포장도로 외길이다. 덜컹거리며 찜질방을 지나면 주차장 공터가 나온다. 주차를 하고 천천히 사철까지 걸었다. 절 진입로에 아담한 키의 금강역사가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노려본다.

원원사 절에 다다르자 여러 금강역사들이 지키고 있다. 호국사찰의 기운이 강하게 풍기는 곳이다. 원원사는 신라가 삼국통일 한 후, 명랑법사의 후계자인 안혜, 낭융 등의 스님들과 김유신 장군이 세운 호국사찰이다. 서라벌 남단의 높은 산 위에서 해안을 바라보며 나라를 지켜 줄 것을 염원하며 지었다고 한다.
  
명량법사의 후계자인 안혜, 낭융 등의 스님들과 김유신 장군이 세운 호국사찰이다
▲ 밀교와 호국의 교차점 원원사 명량법사의 후계자인 안혜, 낭융 등의 스님들과 김유신 장군이 세운 호국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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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을 올라 최근 증축된 원원사 본당에 다다라 보물 제1429호로 지정된 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이 찾았다. 본당 옆 시래기가 널려 있는 천막 안을 향해 인기척을 내어본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나왔다. 석탑이 어딘지 묻자 손가락으로 뒷산 쪽을 가리킨다.

천 년 동안 산자락에 앉아 있는 동서삼층석탑은 신라 호국사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오래된 석등이 서 있다. 쌍탑은 2층 기단에 12지신상이 동서남북 방위마다 3개씩 조각돼 있다. 그리고 1층에 조각된 사천왕상은 섬세하다. 오랜 시간 탓인지 서편 석탑의 사천왕상은 부식이 심한 편이다.
 
보물 제1429호로 지정된 쌍탑으로 2층 기단에 12지신상이 동서남북 방위마다 3개씩 조각돼 있다
▲ 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 제1429호로 지정된 쌍탑으로 2층 기단에 12지신상이 동서남북 방위마다 3개씩 조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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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원사는 밀교 의식의 하나인 문두루비법을 행하던 사찰이다. 7세기 인도에서 성립된 밀교로, 부처가 깨우친 진리를 은밀하게 표출시킨 대승불교의 한 교파다. 밀교에서는 부처의 음성을 그대로 발음하는 '다라니' 주문을 활용한다. '옴마니반메홈' 같은 것이 다라니 주문의 일종이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국가의 안녕을 비는 밀교의 대표적 다라니경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옴마니반메홈' 주문을 외우며 나라의 울타리가 되어주던 승려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듯하다. 복잡한 진입로와 달리 나가는 길은 쉽게 느껴졌다. 적들이 신라의 원원사를 공략할 길을 찾지 못하게 한 '옴마니반메홈' 주문 때문인가 보다.

겨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달을 품은 기림사

토함산(吐含山)과 함월산(含月山)을 관통하는 추령터널을 지나면 기림사(祇林寺)를 만날 수 있다. 한때 불국사를 비롯한 인근 30여 개의 절을 말사로 거느리던 거대한 고찰이었다. 지금은 불국사의 말사가 됐다. 기림사가 자리 잡은 함월산의 함월(含月)은 북서쪽에 위치한 토함산(吐含山)이 달의 정기와 빛을 담았다는 뜻이다.

기림사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주차비와 입장료를 받는다. 경주 시내권과 보문 관광단지를 벗어나면 보통 주차비와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남다른 특별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림사라는 사찰 이름의 기원은 석가모니와 연이 깊다.

석가모니가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절 가운데에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기원정사와 죽림정사다. 특히 기원정사는 석가모니가 여름 동안 머물면서 수행에 전념한 하안거(夏安居, 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바깥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몰두하는 일)를 보낸 곳이다. 또한 기림사는 인도 승려 광유성인(光有聖人)이 머물다 간 작은 암자, 임정사(林井寺)가 모태다.

기림사 초입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른다. 절 옆 개울조차 함월산의 정기가 느껴졌다. 잰 발걸음으로 절로 향했다. 함월산과 어우러진 기림사의 맞배지붕은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의 지휘소였다는 진남루의 맞배지붕도 당당하다. 그리고 진남루와 대적광전 사이에 위치한 응진전의 맞배지붕도 멋들러지다. 또 다른 멋스러움은 진남루 앞의 빈 마당과 오른편으로 길게 쌓인 돌담이다.
  
이곳의 가장 큰 미학은 소담한 소슬꽃살문이다
▲ 기림사 대적광전 이곳의 가장 큰 미학은 소담한 소슬꽃살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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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大寂光殿, 보물 833호)은 퇴색한 단청이 오랜 건물임을 알게 한다. 은근함과 단출함의 극치가 느껴지는 멋스러운 당우가 돋보인다. 기림사 대적광전의 가장 큰 미학은 소담한 꽃살문에 있다. 채색되지 않은 채 원형의 테로 둘러쳐진 소슬꽃살문이다. 나뭇결의 요철이 그대로 드러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눈 내린 후, 휘황찬란한 달빛이 꽃살문 사이로 비치는 모습을 본다면 마음이 설렐 듯하다.

응진전 앞이 푸른 이끼가 내려앉은 탑 하나가 있다. 볼품없는 삼층 석탑처럼 보이지만 기림사에서 꼭 봐야 할 유물 중 하나다. 수수한 외모에 비해 탑정상부의 화려한 머리 장식이 눈길을 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워진 탑으로, 기림사의 유물 중 하나이다
▲ 응진전 앞의 탑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워진 탑으로, 기림사의 유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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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빛이 가득한 기림사에서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승려들이 바깥 출입을 삼가하고 수행에 힘쓰는 일)를 자청해 본다. 눈 내린 겨울밤의 교교한 달빛을 쫓을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생각없이 경주> 저자입니다. 이 기사는 책에도 일부 실렸습니다.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경주, #생각없이, #여행책, #겨울여행, #추천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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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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