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서쪽 필레 게이트(Pile Gate)에 들어서자, 바로 왼편에 육중한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Abbey Church of San Francesco)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오노플리오(Onofrio) 분수 바로 건너편에 있어서 두브로브니크 여행시 항상 만나게 되는 성당이다.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이 성당은 수많은 유물의 보고로서, 두브로브니크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종탑이 돋보이는 이 성당은 가장 돋보이는 건축미를 자랑한다.
▲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성당. 종탑이 돋보이는 이 성당은 가장 돋보이는 건축미를 자랑한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두브로브니크 여행 첫날, 성벽 투어를 하면서 내려다 본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스트라둔(stradun) 대로 변의 큰 종탑이 아주 인상적인 곳이었다. 그 후 두브로브니크에 며칠 있으면서 이 성당 앞을 여러 번 지나갔지만 그때마다 문이 잠겨 있어서 못 들어가다가 오늘은 아침부터 이곳을 찾았다.

14세기에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을 결합한 형태로 건설된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성당은 당시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1667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후 다시 현재와 같은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지어졌다.

나와 아내는 성 사비오르 성당(St. Savior Church)과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성당 사이의 조그만 골목을 통해 성 프란체스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입구 위에 조각된 피에타 상이 물끄러미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구에서 보면 규모가 꽤 작아 보였는데, 막상 내부로 들어오니 회랑, 박물관, 성당 등이 어우러져 매우 웅장했다.
 
초록빛 아름다운 안마당에서는 여행자들의 감탄이 이어진다.
▲ 성당 안마당. 초록빛 아름다운 안마당에서는 여행자들의 감탄이 이어진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아름다운 수도원 회랑과 초록빛 무성한 정원이 눈에 각인되듯이 다가왔다. 이 수도원 회랑은 아름다움에 있어서 유럽 어느 곳의 성당 회랑에 뒤지지 않는다는 곳이다. 혹자는 이 성당 회랑이 유럽 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도 하고, 혹자는 아드리아 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랑이라고도 한다.

회랑 중앙 분수대 위에 자리한 작은 수도자 조각상이 주변의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아침의 천둥과 함께 내린 비로 회랑의 바닥은 짙게 젖어 있었고, 비를 맞은 초록 녹음은 수도원의 백색 벽면을 푸르게 덮고 있었다.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 아내가 이 아름다움에 반하여 오래간만에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따뜻한 아드리아 해변의 도시라서 그런지 야자수도 자라고 있네. 너무 이국적이야. 아침에 비가 와서 그런지 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싱싱한 향내가 너무 좋아."
 
편안하고 포근함이 느껴지는 이 회랑은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회랑이다.
▲ 성당 회랑. 편안하고 포근함이 느껴지는 이 회랑은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회랑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이 회랑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회랑 안 정원의 나무들이 조화롭고 그 나무들을 둘러싼 회랑이 적당히 작아서 포근함을 주기 때문인 것 같아. 회랑 복도에 서서 회랑 안의 정원을 보면 마치 영화의 큰 스크린이 펼쳐지듯이 아름다워."

회랑 주변으로는 오랜 세월이 녹아 있는 프레스코화가 눈길을 잡아당긴다. 색이 바랜 프레스코 그림들은 색이 바래서인지 더 묘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품고 있다. 이 프레스코 그림 중에서는 프란체스코 성인이 받은 다섯 곳의 상처를 묘사한 작품이 대표적인 그림이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받은 다섯 곳의 상처를 묘사한, 대표적인 그림이다.
▲ 회랑의 성화. 프란체스코 성인이 받은 다섯 곳의 상처를 묘사한, 대표적인 그림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이 그림 '오상(五傷)'은 그리스도의 고통과 수난을 상징하는 다섯 곳의 상처를 보여준다. 이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서 받은 다섯 상처, 즉 좌우의 손발과 창에 찔린 옆구리 상처를 의미하고 있다. 하늘 위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상처에서 레이저 같이 연결된 빛이 성 프란체스코의 상처에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회랑을 지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성당의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박물관 입구에는 중세 약국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실제로 이 수도원 성당의 약국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약국이자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고, 이 과거의 약국은 옛모습 그대로 여행객들을 맞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중세 약국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 성당 박물관. 박물관 입구에는 중세 약국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현재에도 운영되고 있는 이 약국의 오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전시실에는 중세시대의 약병과 처방전들이 보관되어 있다. 중세시대부터 제조되기 시작한 약 제조의 역사에 관한 자료들을 보고 있으면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에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

박물관 내부에는 중세시대에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던 보물급 예배용품들과 예수상, 제의(祭衣), 종교화, 그리고 수도원에서 만든 귀중한 단행본 책 등 수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은제 성작(聖爵)과 성체를 모셔두는 성합(聖盒)은 금으로 도금되어 화려하기 그지 없다. 성체가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여주는 성광(聖光)에서는 물결 모양의 여러 광선이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미사 등에 사용되던 예배용품들은 금박으로 화려하기 그지 없다.
▲ 화려한 예배용품. 미사 등에 사용되던 예배용품들은 금박으로 화려하기 그지 없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는 지금까지도 너무 아름다운 금빛을 발하고 있는 예배용품의 화려함에 감탄을 연발했다. 에메랄드 보석까지 박혀 있는 유물 앞에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종교용품들이 이렇게까지 화려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한 마음이 중요할 텐데 박물관의 예배용품들은 너무나 장식성과 화려함에 치중되어 있다.

놀랍게도 이 성당은 유고내전의 상처마저 생생하게 안고 있다. 박물관에 1991년 유고내전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박물관의 벽 한 켠에 포탄이 날아와 박혔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 아래에는 당시 성당 안에 떨어졌던 포탄의 탄피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내전 당시 포탄이 박힌 자국과 함께 포탄들이 전시되어 있다.
▲ 유고 내전의 상처. 내전 당시 포탄이 박힌 자국과 함께 포탄들이 전시되어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불과 30년도 안 된 세월의 저편에서 이런 무자비한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세계문화유산인 도시에 포탄을 퍼부어댔던 사람들은 잔학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크로아티아를 공격했던 세르비아인들이나 몬테네그로인들도 그리스도를 믿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성당까지 포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성당 안에 구유고 연방군의 포탄이 날아들었지만 성당은 큰 피해 없이 지켜졌다. 두브로브니크 인들은 온전히 남은 성당을 보고 감사의 마음과 함께 성스러운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도시가 봉쇄되고 성당에 포탄이 날아들던 참혹한 경험을 딛고 지금의 평화를 유지해가는 두브로브니크인들이 참으로 대단해. 이 곳 두브로브니크 젊은이들은 여유로운 미소를 가지고 있잖아? 그들의 미소를 보면 이 전쟁 후의 현재 평화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져. 일방적으로 공격 당했던 두브로브니크인들이 느끼는 오늘의 평화는 그들이 전쟁 속에서 절실하게 바랐던 그 평화인 거지."

우리는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성당을 나서며 현재도 운영 중인 말라 브라차 약국(Ljekarna Mala Braca)에 들렀다. 이곳에 약국이 생긴 것은 병든 신도를 돌보라는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내부 규칙에 따른 것이었고, 이 규칙이 현실화된 곳이 바로 이 약국이었다.

이 약국은 당시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약초와 꽃을 직접 의료에 사용했던 것이 발전하여 1317년에 문을 열게 되었다. 공공의료 복지의 시초라고 일컬어지는 이 약국은 중세시대 흑사병 환자를 치료하던 당시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병든 신도를 돌보던 이 약국은 공공의료 복지의 시초가 되었다.
▲ 말라 브라차 약국. 병든 신도를 돌보던 이 약국은 공공의료 복지의 시초가 되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말라 브라차'라는 약국 이름은 작은 형제들이라는 의미이다. 특별하고 소중했던 이 약국은 수도사는 물론 당시 일반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 약국이 거리에서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는 것도 시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위치에 약국이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 되었다는 이 약국에는 현재도 외국의 여행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이 약국에는 한국 사람들을 포함하여 동아시아 관광객들이 유독 많이 몰린다. 지금도 옛 제조 방식 그대로 만든 전통의 약제를 만들어 팔고 있기 때문이다. 장미로 만든 수분크림은 두브로브니크 여행자들에게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이 장미크림은 샘플을 직접 발라볼 수도 있다. 크림의 향기에서는 저 중세시대의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는 듯하다. 과거에는 시대를 앞서가는 제품이었겠지만 현대의 크림에 비하면 유분이 많은 편이고, 그 시절 그대로 만든 크림이라서 유통기한도 짧다. 나는 역사적 제품을 만난 것으로 만족하고 장미크림을 사지는 않았다.

나와 아내는 성당을 나와 두브로브니크 여행자들에게 입소문이 자자한 한 바닷가를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성곽 안쪽 길을 따라가면서 바다로 내려가는 작은 문을 찾았다. 바닷가로 뚫린 이 작은 문을 '부자(Buza)'라고 하는데, 크로아티아어로 '부자'는 구멍을 뜻한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구멍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구멍을 통과하면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부자 바(Buza Bar)가 나온다. 낭떠러지 같은 바닷가 절벽 앞에 자리잡은 이곳은 소문난 여행의 명소이다. 이곳에는 관광객들이 워낙 많고 특히 바닷가가 바로 보이는 절벽 가장자리의 전망 좋은 자리는 차지하기도 어렵다.

바닷가를 보며 맥주라도 한잔 하고 싶은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관광객들이 너무나도 많다. 음료수와 술만 파는데 가격도 비싼 편이다. 게다가 유로화는 받지 않고 크로아티아 화폐인 쿠나만 현금으로 받는다. 쉽게 말하면 고객 서비스 정신은 전혀 없는 곳이다. 나는 부자 바를 지나 아예 바닷가까지 내려갔다.

부자 바 아래 바닷가는 싱그러운 젊은이들의 차지가 되어 있다. 이들은 바닷가 절벽 위로 올라가 거리낌 없이 웃통을 벗고 일광욕도 하고 있다. 어떤 친구는 바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다이빙 포인트로 슬금슬금 가더니 바닷물 속으로 다이빙을 한다.

이들은 위험해 보이는 깊은 바다에서도 둥둥 잘 떠서 수영을 하고 있다. 모두 즐거워 보이는 얼굴들이다. 아드리아해에 잠겨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젊은 인생들이 진정한 여행자라는 생각이 든다.
 
일몰을 기다리는 여행자들이 절벽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다.
▲ 아드리아해 감상. 일몰을 기다리는 여행자들이 절벽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는 눈앞에 바닷물이 일렁이는 바위 위까지 내려가 보았다. 탁 트인 바다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이곳의 바람은 참 시원하게 불었다.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면서 만나는 휴식의 시간. 내가 아내와 이곳 아드리아해까지 온 이유는 석양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해질녘의 시간이 가장 예쁘다는 두브로브니크. 평화로운 아드리아해의 풍경 속에 주변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와 절벽에 기대어 해가 떨어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매일 마법같이 반복되는 찰나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탁 트인 바다에 해가 떨어지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다.
▲ 아드리아해 일몰. 탁 트인 바다에 해가 떨어지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빨갛게 달아오른 바다의 해를 향해 작은 배들이 영접하듯이 다가가고 있었다. 꿈 속의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여행기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태그:#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여행,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여행, #성프란체스코성당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