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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아빠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며 살았다. 아빠는 그저 평생 누구보다 성실히 노동을 했을 뿐인데 못난 딸은 그 노동을 창피해 하며 자랐다.

사람들은 그 노동 앞에 '막'이라는 단어를 붙여 불렀다. 막노동. 나는 그 단어가 너무 싫었다. 아빠는 노동을 막 하지 않았는데,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하셨는데, 왜 그 일을 막노동이라 부르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취업준비생 시절 수 백 장의 이력서를 쓰며 나는 자기소개서의 수 십 줄을 채우는 것보다 가족관계란의 아빠의 직업 한 칸을 채우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뭐라고 써야 할까? 건설근로자, 일용직, 노동자, 아빠의 일을 형용하는 그 단어들을 나는 차마 쓰지 못했다.

망설여지는 고민들과 부끄러워했던 못난 생각 사이, 아빠의 직업은 그냥 회사원으로 써질 때도, 건설사 대표로 둔갑될 때도, 또 어떤 날은 자영업이라 채워진 날도 있었다. 이력서를 쓸 때 마다 나는 그 네모 칸을 도려내 휴지통에 버리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 직장체험 시간이 있었다. 아빠 직장에 찾아가 하루 경험을 하고 사진도 찍고 글로 써서 느낀 점을 발표해야 하는 체험 숙제였다. 그 숙제를 받고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친구에게 부탁해 아빠 대신, 은행에 다니셨던 친구 아빠의 직장에 찾아가 숙제를 마쳤다.
 
아빠는 직장이 아닌 현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직장이 아닌 현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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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시간 선생님이 나를 시키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했다. 왜 아빠 직장에 가지 않았냐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가슴 졸였다. 그때의 나는 초등학교 3학년. 10살의 어린 나이에도 막노동이라 불리우던 아빠의 직업이 다른 아빠들과 무언가 다르다 인지했나보다.

아빠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나에게 그런 과제가 있었는지, 내가 그 숙제를 어떻게 했는지. 설령 내가 그때 말씀 드렸다 해도 나는 아빠의 직장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알았다. 아빠는 직장이 아닌 현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새벽 첫차를 타고 공사장에 나가 배당을 기다리고 연장과 자재를 이고 지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을 그 일을, 체험으로라도 아빠와 어린 딸이 함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50년 경력의 건설노동자 아빠.

자식들은 노동하며 살지 않게 하기 위해 평생 노동을 한 아빠. 50년을 넘게 일 했지만 회사 주소도, 내선 전화도, 명함도 없는 아빠. 아빠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부르면 나는 눈물이 난다.

내가 눈물이 나는 건 아빠가 회사원이, 건설사 대표가, 사장님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아빠의 그 긴 경력을, 유일한 직업을, 그 노동을 부끄러워했던 지난 시간들 때문이다.

참회와 반성이 참 많이도 늦었다. 행여 누군가 아빠의 직업을 물어올까, 묻는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망설였던 지난 시간들은 나의 가장 큰 부끄러움이다. 창피한 건 아빠의 직업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이제 나는 아빠의 노동을 글로 쓴다. 50년 치 밀려있던 인정과 존중을 늦게나마 채우기 위해서 아빠의 일을 그리고 삶을 열심히 기록 중이다. 이제 나의 글은 아빠의 이력서가 된다. 먼저 이십대에 도려냈던 아빠 직업란을 다시 붙여 꾹꾹 눌러 적는다.

건설노동자.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노동하느라 기록할 수 없었던 그 삶을 아빠를 대신해 깊게 써내려 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빠의 평생 직업인 막노동 앞에 붙은 '막'이라는 한 글자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앞으로 오랫동안 아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며 살아 갈 것이다.

태그:#삶 , #노동, #근로자,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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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 삶의 면역력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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