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건 정치가 아닌 로큰롤!'이라는 강렬한 캐치프레이즈로 문을 여는 연극 <록앤롤>이 지난 11월 29일 개막했다. 권위 높고 명예로운 연극상인 토니상을 4번 수상한 극작가 톰 스토퍼드 원작으로 자그마치 200분간 체코, 영국을 오가며 불완전한 당대 시대상과 개인의 삶을 돌아본다.
 
 극 중 한 장면. 주인공 얀의 친구 페르디난드의 티셔츠에 비치보이스의 로고가 적혀있다

극 중 한 장면. 주인공 얀의 친구 페르디난드의 티셔츠에 비치보이스의 로고가 적혀있다 ⓒ 국립극단

  
자유와 저항의 상징 로큰롤

때는 1960년 후반 부유층 자제로 영국 공산주의자 막스의 곁에서 수학하던 주인공 얀은 자국 체코의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을 맞이해 귀국한다. 하지만 그는 정치와 거리를 둔 채 열심히 LP를 듣고 음악을 탐닉한다. 고향 친구 페르디난드가 체제 저항을 위한 서명을 요청했을 때에도 선택은 'NO'였다. 그의 손에는 핑크 플로이드가 들려있으며 귀에는 도어즈의 'Light my fire'가 울렸다. 심지어 방 안 가득 프랭크 자파의 포스터가 걸려있었음에도 얀이 바라본 미래는 불행 없는 낙관이었고, 상처 없는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밴드 플라스틱 피플 오브 더 유니버스의 예술 감독이 구속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그들이 원한 것은 단지 음악일 뿐이었으나, 강철의 사회는 자유를 억압하고 이번에는 감독의 해방을 요구하는 얀을 구속한다. 이는 주인공이 처음으로 이상에서 현실을 자각하고 느끼게 되는 발화점이었다. 극은 이후 20여 년의 세월을 짚으며 로큰롤 음악을 통해 한 개인이 어떻게 세상에 맞서고, 조우하는지에 대하여, 또한 공산주의자였던 스승 막스가 얀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하여, 나아가 역사 속에서 어떤 식으로 사랑이, 운명이 움텄는지를 조망한다.
 
 주인공 얀이 독무대를 펼치고 있다

주인공 얀이 독무대를 펼치고 있다 ⓒ 국립극단


곱씹어보게 되는 지적인 즐거움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유행하고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혹은 여타 다른 음악극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를 기대하면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간략한 중심 줄거리 아래서 큰 웃음과 소위 말하는 떼창, 하나 된 박수 소리를 연출하기에는 극이 조명하는 시대가 너무나 많은 역사적 뒤엉킴을 포함하고 있고, 또 굉장히 긴 시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 정극이 담보하는 지적인 즐거움이란 특색을 포착한다. 학창시절 시험을 위해 주야장창 암기하던 그 역사적 상황을 연극이란 제3의 눈을 통해 집중적으로 체감하고 또 그 당시의 인간 군상을 통해 이해하고 함께 호흡하는 시간은 처음의 낯섦과 소화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마침내 깊고 오래가는 감정적 울림을 전달한다.
 
"내 몸이 나한테 말하고 있어. 내 몸이 다 망가져 버리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런데 당신도 결국 나한테 똑같이 말하고 있잖아. (...) 난 내 몸이 아니야! 내 몸도 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야! 내 몸이 없어졌다고 내가 없어진 건 아니야!"
 
유방암으로 신체 일부를 잃은 아내가 인간의 감정을 신경세포인 뉴런이 일으키는 작용으로써 정의하는 유물론자 남편 막스와 다투며 내뱉은 말이다. 여류 시인인 '사포'의 연구학자이자 관념론자인 아내는 명백히 남편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 다툼은 끝내 아내의 승리로 종결된다. "당신을 사랑하는 건 나의 영혼이야"라는 막스의 고백과 함께 말이다.
 
다소 멀게 느껴지는 사상의 충돌을 한 명의 캐릭터 안으로 끌고 와 사랑과 삶을 통해 보여주는 이 같은 구성은 거친 시대적 배경과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극의 끝을 좇게 되는, 값진 여운을 맛보게 되는 특급 장치다.
 
 공연의 마지막 커튼콜의 모습니다. 올해 국립극단의 마지막 연극 <록앤롤> 각 캐릭터들이 선보이는 리얼 연주의 매력까지 놓치지 말자!

공연의 마지막 커튼콜의 모습니다. 올해 국립극단의 마지막 연극 <록앤롤> 각 캐릭터들이 선보이는 리얼 연주의 매력까지 놓치지 말자! ⓒ 국립극단

  
지금, 여기, 다시, 로큰롤으로!

자유와 저항의 상징 로큰롤이 한 개인의 삶에서 역동하는 20년은 정치적 난제와 사회적 군상에 맞물러 얼룩지지만, 그 안에는 모든 우리네 일상이 담겨있다. 민주적 투쟁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얀이 동의 서명을 할 때 울려 퍼지는 비치보이스의 'Wouldn't it be nice', 얀과 스승이 얽히고설킨 갈등의 끝에서 다시 두 손을 맞잡을 때 흘러나오는 건스 앤 로지스의 'Don't cry', 이외에도 U2의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와 롤링 스톤즈의 'You got me rocking'까지. 극의 순간순간에 함께하는 노래를 따라가다 보면 200분의 러닝타임이 어느새 끝이 난다.

3G를 넘어 5G 시대가 개막하고,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오늘날 과거로의 회항이 반갑다. 삶의 굵은 궤적을 지켜주는 노래와 괴팍한 역사 속 개인의 역사를 진중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때보다 벅찬 여운이 뒤따른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끝나간다. 2번의 강산을 다루는 연극 <록앤롤>로 지난 1년간 고생한 내게 섭섭잖은 위로와 힐링을 전해보면 어떨까? 핏기 잃은 일상에 'Light my fire'! 즉, 뜨거운 횃불을 붙여줄 연극 <록앤롤>은 12월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관람정보
일시: 11월 29일 ~ 12월 25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관람일시: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공휴일 오후 3시 (화요일 공연 없음)
사진제공: 국립극단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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