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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은 너무나 슬프다.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은 너무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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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7일, 엄마가 돌아가셨다. 부모님의 임종을 중환자실에서 맞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살아왔는데... 마지막 순간, 그래도 끝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중환자실 임종을 맞고 말았다. 의학에 의지하지 아니하고선 하루도 버틸 수 없음을 알기에, 엄마를 병원 내 사망자 중 한 명으로 만들고 말았다. 

어떤 사망이든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은 너무나 슬프다. 더군다나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사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가져온다. 천수를 누리시다 노환으로 돌아가신 경우라도 부재에 대한 상실감으로 오랜 기간 아픔과 슬픔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다고 하는데, 아직 젊으신 나이에 병으로 갑작스레 자녀의 곁을 떠나버린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나 나는 지난 여름 생각하기도 싫은 그 현실을 겪고 말았다. 

사랑하는 부모님과의 사별이든 배우자 간 사별이든 중요한 관계자의 사망은 힘든 애도 기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과 함께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한동안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나 스스로 이겨내지 못해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애도 반응'을 겪으며 슬픔을 치유해 나가는데, 보통 5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① 부인

나도 그랬다. 장례식장에서조차 위로차 온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지 않았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장례식장에 걸려 있는 고인의 이름과 그 옆 엄마 사진을 보면서도 나는 수없이 "아니야"를 외쳤다. 마치 꿈이라도 되는 양 얼굴을 때려보기도 하고 연이어 찾아드는 친인척과 지인들을 보면서도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중환자실에서 심폐소생술 끝에 사망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으면서도 나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부모님을 떠나보낸 자녀나, 배우자를 잃은 남겨진 이 혹은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연인들. 그들 스스로가 이 황망스러운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가 필요하다. 

② 분노

나도 엄마의 사망을 점차 받아들이게 되자 분노하기 시작했다. 왜 엄마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셨는지, 왜 주치의 선생님은 환자의 사망 가능성에 대해 보호자인 나에게 조금 더 일찍 언급해 주지 않으셨는지, 신은 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나의 엄마를 이리도 일찍 데려가셨는지. 세상 모든 것에 마구마구 분노했다.

돌아가신 엄마에게조차 원망을 쏟아낼 정도로 당시 나는 하루하루가 분노에 차 있었다. 그저 애도 반응의 하나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도록 이해해주고 배려해 주는 것이 필요한 단계이다. 

③ 포기
 
 원망하던 주치의 선생님께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이 무렵 드렸다. 49재였다.?
 원망하던 주치의 선생님께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이 무렵 드렸다. 49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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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부인해도, 분노해도 바뀌지 않는 세상. 현실 그리고 세상과 마치 협의를 보는 단계라고 하면 될 듯하다. 나도 그랬다. 자포자기하듯 엄마에게 집착해봤자 엄마는 돌아오지 못하고 무엇 하나 얻어지는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내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났고 청소를 하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와 준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말씀도 드리고 엄마의 물건들도 그즈음 조금씩 정리했다. 이별이라는 상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산 사람인 나는 살아야겠기에 현실을 인식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원망하던 주치의 선생님께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이 무렵 드렸다. 49재였다. 

④ 우울

허망함과 허탈함을 넘은 '우울함'이 찾아온다. 이제는 영원히 만날 수 없고, 다시는 만져볼 수도, 목소리를 들어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저 졸리니 잠을 자고 배고프니 밥을 먹는 내 모습을 보며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그제야 슬픔이 몰아닥치며 우울함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는데 엄마는 차디찬 땅속에서 얼마나 추우실까. 나는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에서 예쁜 옷도 입고 좋은 것도 구경하는데 엄마는 얼마나 갑갑할까. 자책감마저 몰려오며 내가 엄마를 돌아가시게 한 것일까. 나는 왜 사나, 사람은 왜 사나, 사람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근본적인 질문 속에서 일상생활이 마비되며 멍한 상태로 지내기도 했다. 

이즈음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다. 사별 후 겪는 '반응성 우울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항우울제와 함께 "모든 부모님은 다 가십니다"와 "시간이 약입니다"라는 위로를 들었다. 상대적이겠지만 약물조차 도움이 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조금씩 일상으로
 
 엄마가 살아계셨던 지난 시간처럼 활기차고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조금씩 일상생활로 복귀해 가고 있다.?
 엄마가 살아계셨던 지난 시간처럼 활기차고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조금씩 일상생활로 복귀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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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물으니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 후 앞서 언급한 네 단계가 꼭 시간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듯했다. 어떤 친구는 '우울'함이 먼저 찾아온 후 '부인'과 '분노'가 이어 찾아오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단계를 모두 건너뛰고 마지막 회복 단계만 겪은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모든 단계를 시간순으로 겪고 있었다. 엄마의 사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더니 현실을 인식한 후 일종의 자포자기 단계를 거쳐 우울함까지 찾아온 후에는 덤덤해졌다고나 할까.

절대 쳐다보지도 못했던 엄마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다가, 좋았던 지난날 추억이 나오면 미소를 짓기도 하다가, 가족들과 재미있었던 엄마와의 시간을 얘기하며 웃기도 하다가.

아마도 애도 반응 다섯 번째는 '초연'이 아닐까 한다. 엄마가 살아계셨던 지난 시간처럼 활기차고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조금씩 일상생활로 복귀해 가고 있다. 

모든 사람과 마주치기 싫고 혼자 있고만 싶더니, 최근에는 "우리 이제 만날까?"라며 내가 스스로 친구들에게 전화했다. 

사별 후 4개월. 엄마 무덤에 새 꽃을 놓았다. 그렇게 엄마를 마음에서 보내드렸다. 

'이제 좋은 곳에서 아프지 않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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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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